‘영원한 팬’ 낳았는데, 선수 그만둘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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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 저출산, 엄마선수가 없다 ②

운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오른쪽)과 딸 오규아양. 김현동 기자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저출산으로 위기를 맞은 분야는 한두 개가 아니다. 스포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선수 지원자를 못 구하는 비인기 종목의 경우 경쟁력은커녕 종목 존폐를 걱정하는 처지다. 그렇다면 스포츠계 자체는 어떨까.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결혼한다”는 남자 선수와 달리 여자 선수의 결혼·출산 비율은 일반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엄마 선수’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35)과 여자배구 정대영(42)을 만나 스포츠와 육아를 병행하는 고충을 들어봤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의정부 평화로에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이 딸 오규아양과 함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달 2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인은 딸 오규아(2)양을 유모차에 태워 유아원에 등원시키는 길이었다. 딸을 데려다준 뒤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실내 암장까지 약 8.6㎞, 50분간 뛰어서 출근했다. ‘엄마 국가대표’의 일과 시작이다.

김자인은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 등에서 44차례나 정상에 오른 ‘암벽 여제’다. 결혼 7년 만인 2021년, 33세에 엄마가 됐다. 그는 “바위에 오르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쉬고 있던 2020년 봄이었다. 평소 생리를 일 년에 한 번 할까말까 했는데, 1년 반 동안 소식이 없었다.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기집이 보여 깜짝 놀랐다”고 했다. 키 1m52㎝의 작은 체구인 그는 “종목 특성상 1일 1식을 하다 보니 체중이 40.8㎏ 밖에 안됐다. ‘내 자궁이 건강하지 않아 엄마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자인은 출산으로 2년간 쉬고도 지난달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현동 기자

여자 선수는 임신 기간에 신체 능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김자인은 “8개월 만삭 때 3m 높이의 낮은 암벽에 올랐다. 출산 전후로 4개월간 운동을 아예 쉬었다. 2년 동안은 아예 선수 활동을 못 했다”고 했다.

2021년에 3월 딸을 출산한 김자인은 그해 여름 열린 도쿄올림픽에 선수가 아닌 해설자로 참가했다. 김자인은 “나중에 딸이 ‘엄마 왜 은퇴했어?’라고 물으면 ‘규아가 태어나서 그만뒀어’라고 말하기 싫었다. 집에서 몸무게 11㎏의 딸을 아기띠에 둘러메고 턱걸이를 했다”고 했다.

김자인은 지난달 대표 선발전을 일주일 앞두고 볼더링 훈련 도중 홀드에 부딪혀 손가락 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김자인은 “회복까지 6~8주 걸린다는 말을 듣고 엉엉 울었다. 주사를 맞고 출전을 감행했다. 3위에 올라 3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내년 파리올림픽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건 아이 때문”이라고 했다.

김자인은 서울 강북구 도봉로에 130평짜리 실내암장 락랜드를 오픈해 엄마 사업가로도 활동 중이다. 김현동 기자

그러면서 김자인은 “클라이밍보다 예측불가능한 육아가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다”면서 “다행히 양가 어머니가 집 근처로 이사오셔서 육아를 도와준다. 사정이 좋지 못한 후배 선수들을 위해 정부에서 양육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소방관 출신인 그의 남편 오영환 국회의원은 지난달 아빠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일명 ‘슈돌법’을 발의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앙일보 조사 결과 여자 국가대표와 프로선수 617명 중 아이가 있는 선수는 7명(1.1%)에 불과했다. 1999년부터 23년간 프로선수로 뛰고 있는 여자배구 정대영도 대표적인 ‘엄마 선수’다. 그는 2007년 결혼해 3년 뒤인 29세에 딸 김보민(13) 양을 낳았다.

프로배구 GS칼텍스의 ‘엄마 선수’ 정대영(왼쪽)과 딸 김보민양. [사진 정대영]

2007년 현대건설에서 GS칼텍스로 옮긴 정대영은 출산 이후 한 시즌을 쉬었다. 당시 구단과 언론은 ‘출산 휴가’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정대영은 “2년만 더 하고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구단에서 너무 아깝지 않느냐며 ‘2+1년’ 계약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출산 후 4개월 만에 팀에 합류한 정대영은 “난 운이 좋았다. 당시 감독과 코치가 모두 여성이었다. 장윤희 코치님도 출산 후 돌아와 1년을 더 뛰고 은퇴했기에 내 사정을 잘 이해해줬다”고 했다.

합숙 훈련과 이동이 많은 여자 프로선수가 육아를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대영은 “3개월 정도 모유 수유를 했다. 보민이가 젖병으로는 잘 안 먹어서, 선수로 복귀하기 직전에 분유로 바꾸느라 힘들었다. 보민이가 100일 때부터 친정엄마가 함께 지내면서 돌봐줬다”고 했다.

정대영도 출산 후 1년 휴식했지만, 코트에 복귀해 육아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딸 보민 양도 제천여중 배구선수다. 정대영은 시즌 중에는 3~4일마다 경기를 치른다. 그래서 모녀는 지난 2월 이후 두 달 가까이 못 만났다. 김보민 양은 “운동이 많이 힘들 땐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하루 두 번씩 영상통화를 한다. 엄마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시즌 블로킹 3위에 오르며 도로공사 우승에 기여한 정대영은 다시 FA가 돼 총액 3억원를 받고 GS칼텍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정대영은 “(도로공사에서 같이 뛴) 임명옥(37), 배유나(34) 선수도 결혼은 했지만 출산을 미루고 있다. 프로에선 늘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출산 이후엔 불안감도 크고 자신감도 줄어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김해란 선수는 30대 중반에 출산해 굉장히 힘들어했다. 계획이 있다면 몸이 건강할 때 결혼과 출산하는 게 아이 뿐 아니라 선수에게도 좋은 것 같다. 선수생활의 원동력인 보민이가 없었다면 난 33~34살에 그만두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김효경·박린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