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ANTS NO PROBLEM! 2023년 버전 하의 실종 룩
사실 ‘바지 위기설’은 이미 몇 달 전 제기된 바 있다. ‘바지를 깜빡한 슈퍼모델.jpg’ 같은 제목으로 각종 커뮤니티를 뒤덮었던 켄달 제너의 팬츠리스 룩이 그 신호탄이다. 지극히 평범한 네이비 니트 톱을 입고 꽃 한 송이를 품에 안은 켄달의 하의는? 검은색 팬티에 시어한 스타킹, 끝! 몇 달 후 그의 룩은 F/W 시즌 보테가 베네타 런웨이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동생인 카일리 제너도 바지 없이 세상을 활보한 적 있다. 로에베 런웨이에 참석할 때 스타킹 위에 로에베 로고 브리프와 러닝 톱을 매치하고, 발끝까지 오는 헤링본 코트를 걸치고 한껏 카리스마를 뽐냈던 것. 런웨이보다 먼저 리얼웨이에서 바지의 존재를 지운 제너 패밀리의 자신감이란! 세계적 ‘관종’, 아니 트렌드 리더인 두 자매가 바지 없이 세상을 활보할 때 눈치챘어야 했다. 팬티는 숨겨야 하는 것이라는 상식이 깨지려 한다는 걸.
심지어 이번 하의 실종 붐은 남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 모델이 ‘쫄사각’ 드로어즈와 진배없는 마이크로 쇼츠를 입은 룩이 다수 등장해 이 시대의 대명제인 젠더 뉴트럴을 강조했다. ‘패션 진보파’ 봉태규가 선보인 페라가모의 레더 쇼츠 룩을 보라. 다소 충격적이지만, 모델이 아니어도 핫팬츠 룩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구자적 행보였다. 그가 포문을 열었으니, 올여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더 많은 ‘핫팬츠 가이’가 나타날 전망!
그러나 올해는 바지가 없다는 것 외에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2023년 버전의 하의 실종은 오히려 여성의 자율성과 주체성에 포커스를 맞췄으니까! 우선, 2010년경 셀렙 패션의 화두는 건강한 각선미였다. 당시 브아걸, 미쓰에이 등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셀렙들의 각선미가 ‘손타킹’, ‘꿀벅지’ 같은 말로 추앙받았다. 포토월 같은 공식 행사에서도 〈섹스 앤 더 시티〉 캐리의 것 같은 셔츠 원피스 룩이 자주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은? 아슬아슬할 바에는 시원하게 드러내는 화끈함이 포인트다. 보일 듯 말 듯한 핫팬츠로 공연한 상상력을 자극하느니 삼각형 비키니 쇼츠를 입는다. 속옷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바에는 로고 밴드가 보이도록 브리프를 레이어드한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노출로 타인의 관음적 시선을 유도해 스스로를 성적 존재로 어필하는 것이 2010년 방식이라면, 2023년은 나의 선택에 따라 대담한 노출을 연출하고 스스로 즐김으로써 온전한 주체성을 가지는 것. 팬티만 입은 미우미우 모델들의 표정이 수줍거나 야릇한 것이 아닌, 무심하고 나른했던 것을 기억하라.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신념을 꾸준히 표현해온 미우치아 프라다가 몇 시즌째 런웨이를 통해 주장한 것은 ‘여성 신체의 자유와 주체성’이었던 거다.
바지 없이 외출했다는 ‘격식 없는 느낌’을 줄이려면 코페르니가 제안한 포멀함의 트릭을 사용하자. 상의와 하의를 같은 소재로 통일해 슈트의 정갈한 인상을 훔치거나, 목까지 꽉 채운 드레스 셔츠를 단정하게 넣어 입는 방법이다. 다리를 다 드러냄으로써 발생하는 ‘연약한 섹슈얼리티’를 제거하는 데는 터프한 실루엣이 필요하다. 우아하고 시크한 무드를 추구한다면 생 로랑 2023 F/W 시즌 런웨이를 점령한 아우터를 참고할 것. 과장된 어깨, 맥시한 길이의 코트와 가죽 재킷이 가느다란 다리와 극단적 대조를 이룬다. 데일리 룩 버전은 헤일리 비버를 참고하면 알맞다. 트렌드와 상관없이 항상 다리를 드러내는 편인데, 마이크로 레깅스 또는 스커트에 풍성한 봄버를 즐겨 매치하는 모습이다.
하의 실종 룩에 필요한 아이템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 우선 하의는 실크, 코튼 같은 연약한 것보다 울, 가죽처럼 단단하고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켄달 & 카일리 제너의 픽인 검정 스타킹도 ‘꿀템’. 노출된 하체를 한 겹 감싸 노출 면적을 축소돼 보이게 한다. 카일리처럼 스타킹 위에 로고 브리프를 레이어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 미우미우 런웨이 룩처럼 마이크로 스커트나 쇼츠 위로 덧입으면 댄서들처럼 쿨한 매력이 배가된다. 로고 브리프는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으니 좋아하는 브랜드의 것은 눈에 띌 때 구매해둘 것! 좀 더 대담한 방식을 선호한다면 시어한 드레스나 스커트를 추천한다. 안정적으로 힙을 감싸는 브리프나 보디 슈트 위에 은은하게 비치는 소재를 레이어드한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2023 S/S 룩을 참고하자. 비즈나 프린트 같은 화려한 장식의 스커트라면 파티 무드에도 잘 어울린다.
담백한 액세서리는 이번 하의 실종 룩의 키포인트다. 심플한 안경, 로퍼, 책가방 같은 데일리 아이템이 짧디짧은 하의를 덜 야하게 만들어주니까. 스틸레토보다는 키튼 힐, 가느다란 스트랩 슈즈보다는 스니커즈가 추천템! 기억하자. 이번 트렌드의 핵심은 애티튜드에 있다. ‘잘 뻗은 내 다리를 봐’ 같은 것이 아닌, ‘입고 싶어 입었다’는 주체성과 담담함이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러니 내가 입을 수 있는 룩을 잘 고르고, 입은 후에는 천연덕스러움을 견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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