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뒤흔든 ‘전세사기’…전세금 지키는 체크 포인트 [스페셜리포트]
“지난해부터 전세 피해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도 불안하더니, 뉴스를 통해 알려진 뒤부터는 전세를 보러 온 손님이 한명도 없어요. 악성 임대인과 전속 중개업자 한 명 때문에 동네 중개사 전체가 피해를 보는 거죠.”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동탄역 인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씨의 토로다. 동탄역 일대는 대중교통과 상권이 잘 갖춰져 있어 젊은 직장인의 오피스텔 수요가 꾸준하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동탄, 병점, 수원 등지에 오피스텔 250채를 보유한 부부가 파산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쏟아졌다. 이 부부의 중개를 전담했던 문제의 중개업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중개업소 대표자명도 다른 공인중개사로 변경된 상태였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이 속속 전해지면서 동탄, 병점, 수원 일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피해자 중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삼성전자 직원도 있다. 동탄역 인근에 전세로 거주 중인 삼성전자 직원 B씨는 “회사가 최근까지 직원들을 상대로 전세사기 피해 여부를 확인했다”며 “지난해부터 사내 게시판에 피해 사실이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피해 규모가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다. 내 전세금은 안전할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전세사기 사태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를 필두로 경기도 화성 동탄, 구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사기 실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피해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전세사기를 근절하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전세사기 근본 대책과 함께 내 전세금을 잘 지키기 위한 체크 포인트도 짚어본다.
인천, 동탄, 부산…전국이 쑥대밭
피해자 급증에 ‘전세포비아’ 확산
20~30대 청년층 3명이 숨지는 이른바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시끌시끌하다.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미추홀구 일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3명은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이다. C씨는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한 뒤 2년 후인 2021년 9월 집주인 요구로 9000만원에 재계약했다. 당시 최우선변제금 적용 보증금은 1억3000만원이었지만, 해당 아파트는 2017년 근저당이 설정돼 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보호받을 수 있었다.
계약 갱신으로 보증금이 최우선변제 기준보다 높아져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셈이다. 하루아침에 거의 전 재산을 날린 이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는 이들이 당시 가파른 집값 상승으로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무리한 전세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전세보증금을 5% 이내로만 올릴 수 있도록 규정하지만, 임대·임차인 간 합의가 있으면 인상률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
인천뿐 아니라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구리시에서도 오피스텔 전세금 피해 의심 사건이 발생했다. 화성 동탄경찰서는 화성, 수원 등에 오피스텔 250여채를 소유한 D씨 부부와 전세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E씨 부부 등 4명을 출국 금지 조치했다.
이들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을 알고도 영리 목적으로 임대 계약을 지속적으로 체결했다. 일이 커지자 임차인에게 ‘세금 체납 등의 문제로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우니 오피스텔 소유권을 이전받아가라’는 통보를 한 뒤 연락을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리에서는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벌인 일당 20여명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깡통주택을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뒤 세입자 요구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전형적 전세사기 수법을 사용했다. 추가 입건된 중개업자들은 법정 수수료율보다 더 높게 중개 수수료를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 사상구, 동구, 부산진구에 위치한 4개 빌라·오피스텔 세입자 90여명은 최근 피해 대책위를 꾸리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사기 피해가 의심된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나섰다. 피해자는 모두 89가구에 전세금은 약 54억원으로 추산된다.
경찰은 전세사기 범죄에 ‘범죄단체 조직 및 활동죄’를 우선적으로 적용해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범죄단체’로 인정돼도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데 그친다.
전세사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임대차법 부작용에 제도 한계 드러나
“사건마다 상황이 다 달라서, 전세사기인지, 사고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올 들어 연달아 발생하는 전세사기 사건을 두고 부동산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야말로 ‘혼돈’이다.
인천, 부산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사고가 터지는데 원인은 다 다르다. 건물주가 공인중개사 등과 손잡고 ‘작정하고’ 사기를 시도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금융 융자가 막혀 어쩔 수 없이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유형이 제각각이다 보니 명확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사기로 규정하고 돈을 정부에서 보증해주기에는 ‘단순 사고’로 볼 만한 사례 또한 적잖다. 당사자 사이 계약에서 발생한 피해를 무조건 정부가 보장할 수 없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1인당 수천만~수억원의 피해를 마냥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연달아 터지는 전세사기 논란의 원인은 크게 3가지다. 현행 전세 제도의 한계, 전세 가격 교란을 가져온 임대차법, 부실한 검증 절차 등이다.
우선 현행 전세 제도의 한계다. 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점이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전세사기 문제로 부각된 사기 유형을 살펴보면, 현행 제도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현행 체계에서 작정하고 사기 치려 하면 적발도, 처벌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예로 꼽는 게 임대차보호법의 확정일자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확정일자’를 받은 세입자의 보증금은 채권, 체납 세액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따라서 집주인이 파산해 남은 돈을 청산할 때, 대출금, 밀린 세금보다 먼저 변제된다. 이를 대항력이라고 한다. 단, 확정일자 이후에 발생하는 대출과 저당권에 대해서만 대항력이 있다. 확정일자 이전에 발생한 채권이나 저당권보다는 변제 순위가 밀린다.
문제는 확정일자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효력은 전입신고 다음 날부터 발생한다. 법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다. 전세사기 일당은 이런 사각지대를 악용한다. 세입자의 전입 당일 거액의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 권리를 상실하게 만든다. 결국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순간 세입자는 전세보증금 대부분을 떼이게 된다. 최근 문제가 된 전세사기 유형 대다수가 확정일자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사례다.
최근 전세사기가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배경으로 문재인정부 때 만들어진 임대차법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7월 문재인정부는 세입자 보호를 이유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을 담은 임대차법을 제정했다. 전세 인상률에 상한을 둬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집주인들은 신규 계약 때 금액을 대폭 올리며 응수했다. 법 시행 이후 전세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다. 불어난 전세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더 커졌다. 시장 상황이 아닌 정부 개입에 의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고 그에 맞춰 대출은 비대해졌다.
지난해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문제가 터졌다. 부동산 매매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매매가와 전세가가 비슷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임대차 사이렌’ 정보에 따르면 올 1~3월 전국 시군구에서 연립, 다세대주택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80%를 넘는 곳은 총 25곳으로 집계됐다. 3월 기준 연립, 다세대주택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전 대덕구로 전세가율이 무려 131.8%에 달했다. 매매가가 1억원이면 전셋값이 1억3180만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경기도 평택 연립, 다세대주택 전세가율도 100.4%로 100%를 넘었다.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일대 임차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이 치솟았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평택에 위치한 도시형 생활주택 ‘서정벨루스하임’ 전용 26㎡는 올 1월 9500만원에 매매 거래가 이뤄졌는데 두 달 후인 3월 1억10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전세사기가 벌어진 인천 미추홀구(89.9%)뿐 아니라 전남 광양(90.4%), 충남 당진(83.6%) 전세가율도 높아 불안한 모습이다.
임대차법 제정 이후 2년이 지난 현재, 2년 차 전세 계약이 종료되면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급증하게 됐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매매가가 전세가와 비슷해지거나 낮아지면, 전세보증보험 가입자 외에는 돈을 제대로 돌려받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수억원이 오가는 계약에서 검증 절차 자체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유재벌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는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금융 상품 가입을 할 때도 수십 장의 서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유독 수억원짜리 부동산 계약은 단 한 장의 계약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검증 절차가 부실한 틈을 사기꾼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우선매수권 준다지만
임대차보호법 사각지대 해소 급선무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정부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금감원은 전세사기 대상이 된 건물의 경매를 중단하거나 연기하고 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피해자들이 우선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 중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발의하며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안은 상황별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한다. 경매를 통해 집을 낙찰받기 원하는 피해자에게는 우선매수권을 주되 수수료와 관련 세금은 감면해준다. 임대만 원하는 경우에는 LH가 대신 사들여 최소한의 월세만 받고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보증금 선 보상 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야당 방안은 빠졌다. 정부는 집주인이 고의로 세입자를 속인 경우만 지원할 예정이다. 단순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미납 사고의 경우 별도의 보상을 지원하지 않는다.
당장 피해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근본 원인인 전세 제도 개혁이 없다면 전세사기 문제는 또 터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체크가 필요하다. 이후 제도적 보완점을 발견해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재벌 변호사는 “확정일자 효력이 익일이 아닌 당일 발생하게 하는 방법, 최우선변제금액을 상향하거나 금액에 따라 단계별로 적용하게 하는 방법, 종합부동산세를 보증금에 우선하는 국세에서 제외하는 방법 등을 정책 단계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전세보증보험을 담당하는 HUG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어볼 만하다. HUG에 조사 권한을 부여해 임대인의 권리 관계, 세금 체납 여부 등을 살펴보게 하라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HUG 차원에서 계약을 파기시킬 수 있도록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세입자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임대인 정보를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고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가담했을 경우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어서다. 개인 한계가 뚜렷한 만큼 공공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부동산 거래 전반에 개입하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공인중개사 거래 시 임차인의 권리 관계, 권리상 위험성, 최후 경매 진행 가능성과 임차인의 보증금 배당 순위 등을 설명한 후 임대인과 임차인이 공동 확인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동안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 기재 시 사실 관계만 적시해왔다. 최후 경매 시 권리 순위 등을 기재하는 등의 실무적인 내용은 설명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임차인이 제대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의 관리, 감독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윤재호 대표 주장은 눈길을 끈다.
전세금 지키는 체크 포인트는
선순위 확인하고, 전세보증보험 가입
전세사기 사태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소중한 전세보증금을 지킬 방법은 꼭 숙지하는 것이 좋다.
우선 애초에 전세가율이 80%를 넘겨 깡통주택 가능성이 있는 집은 아예 계약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전세가율이 과도하게 높으면 계약 종료 시점에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율이 낮더라도 등기부등본상 선순위인 근저당 금액 등이 과도하게 있는지도 꼼꼼히 살피자. 선순위 근저당 금액이 있으면 세입자는 후순위로 밀리고 만약의 경우에도 전세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여지가 크다.
즉 굳이 비싼 등기비용을 들여 전세권을 설정하기보다는 확정일자만 받아도 충분하다. 대신 선순위를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다. 그다음 일대 주택 시세가 얼마고, 경매에 넘어갔을 땐 얼마에 낙찰되는지, 이때 내 전세금은 얼마나 돌려받을지를 계산하는 것이 좋다. 이 두 가지만 확인해도 내 전세금은 충분히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절대 계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전세 계약을 마쳤다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다. 전세보증보험이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보증기관에서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주고 보증기관은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대표적인 전세보증보험으로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과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전세지킴보증을 들 수 있다. 아파트, 단독, 연립, 다세대, 다가구, 주거용 오피스텔에 전세로 입주하면 가입할 수 있다.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여기에 노인복지주택도 포함하며 SGI와 HF의 전세보증보험은 도시형 생활주택도 가입 가능하다.
단, 전세보증보험 상품별로 가입 요건, 보증료율, 보증 금액 등 특징이 다른 만큼 나에게 맞는 상품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예컨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경우 수도권 7억원 이하, 지방 5억원 이하의 전셋집만 가입할 수 있다. 해당 요건을 충족하면 신청한 금액만큼 보증받을 수 있지만 보증 한도가 제한돼 있다. 보증 한도는 주택 가격에서 선순위 채권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HF의 전세지킴보증은 HUG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7억원 이하, 지방 5억원 이하의 전세를 대상으로 하지만 HF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경우에만 해당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은 일반 주택의 경우 10억원 이내, 아파트에 대해서는 보증금 제한이 없다. 대신 보험료율이 아파트 기준 연 0.183%로 전세보증보험 중 가장 높다.
이삿날 당일에는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실거주하지 않으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사 당일부터 실거주를 증명해야 한다. 즉 등기부등본 주소와 주민등록등본 주소가 일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삿날 당일 전입신고 후 등기부등본에 적힌 주소를 정확히 적어 전입하는 것이 필수다. 확정일자를 받아두면 세입자는 ‘우선변제권’을 갖게 된다. 때문에 임대인에게 문제가 발생해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보증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항력을 갖출 수 있다.
전세 매력 떨어져 vs 아파트 수요 여전
전세 제도 역사는 조선시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총독부의 1910년 ‘관습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월세를 이용한 임대차는 영업용 가옥의 임차 방법으로만 사용했고 주택은 전세 제도가 대부분 활용됐다. 이 무렵 시작된 전세 제도는 6·25 전쟁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 최소 100년 동안 유지돼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집값이 요동칠 때마다 전세 제도가 없어질 거라는 예측이 쏟아지고는 했다. 2010년쯤에는 ‘반전세’라는 말도 등장했다. 부동산 침체기에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집주인들이 월세 수입에 눈을 돌리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서다. 2014년에는 전국 월세 가구 비율이 전세 가구를 처음 앞지르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됐다. 2020년에는 다주택자를 겨냥한 징벌적 정책과 ‘임대차법’으로 전세 물량이 급감한 탓에 월세 시대가 더욱 가속화되는 듯했다.
지난해부터는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전세자금대출로 매달 나가는 돈(이자)이 월세보다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전세 수요가 급감했다. 지난해 말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아파트 전세 비중은 57.5%를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 주택 전세 거래량은 25만8529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대비 7.7% 감소한 수준이다.
거래가 쪼그라들며 가격 역시 크게 떨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9.36% 하락했다. 2021년 가격 상승분(5.31%)을 모두 반납했다. 올 들어서도 4월 셋째 주까지 전세가격지수(95 → 87.8)가 16주 연속 떨어지는 등 가격 급락이 지속되고 있다.
전세 수요는 감소하고 전세 가격 하락폭이 매매 가격 하락폭보다 더 크다 보니 일각에서는 ‘전세 소멸론’까지 제기된다. 마침 부동산 상승기 때는 보기 힘든 ‘역전세’ ‘역월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서다.
역전세·역월세는 전월세 시세가 기존 계약보다 하락했을 때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떨어진 보증금 차액만큼 이자를 세입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2년 전과 같은 조건으로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진 탓으로 풀이된다. 역전세를 우려한 세입자가 전세를 구하면서 ‘집주인 면접’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가려 받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역전세가 아니더라도 집주인이 내린 보증금 차액을 돌려주거나 임대료를 낮춰주는 일도 흔하다. 부동산 중개 업체 집토스가 올 1분기 전국 국토교통부 전월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전월세 갱신 계약 중 종전 계약보다 감액한 계약 비율이 25%에 달했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갱신 계약 데이터를 공개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최고치다. 지난 4분기의 수도권 감액 갱신 비율 13%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 감액 갱신 비율은 대구(65%)가 가장 높았다. 이어 세종(48%), 울산(35%) 등이 뒤를 이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월세가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상품이 됐다”며 “당분간 월세 거래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 전세 가격 하락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전세가 쉽게 사라지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최근 전세 감소 현상은 아파트보다는 연립·다세대(빌라)나 오피스텔 시장에서 두드러졌는데, 상대적으로 매매 가격이 높고 전세가율은 낮은 아파트는 전세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파트는 빌라나 오피스텔에 비해 대규모 전세사기 가능성이 낮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대단지에 거래가 많아 시세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데다 전세가율도 50~60%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3%다. 빌라 전세가율이 70%를 웃도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서울 강남권의 경우 아파트 전세가율이 강남구 46.6%, 서초구 50.6%, 송파구 46.3%로 서울 평균보다 낮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값이 크게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반 토막 나지 않는 이상 보증금 떼일 우려가 적은 이유다.
함영진 랩장은 “무자본 갭투자를 하려고 해도 전세가율이 높아야 하는데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전세가율이 낮은 편이다. 조직적 전세사기에 대한 위험성은 빌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월세에 밀려 소멸 위기론까지 나왔던 전세는 봄 이사철을 맞아 다시 거래가 늘면서 ‘전세 소멸론’은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이 7개월 만에 60%를 넘어섰다. 이자 부담에 월세 시장으로 옮겨 갔던 임차인들이 역전세난으로 전셋값이 하락하자 전세 시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총 1만8359건 중 전세가 1만1499건으로 전체의 62.6%를 차지했다. 월별 서울 아파트 전세 비중이 60%를 넘은 것은 지난해 8월(60.4%) 이후 7개월 만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7호 (2023.05.03~2023.05.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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