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 닥친 전쟁… AI화가 vs 그래픽디자이너

정진솔 2023. 5.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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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허락 없이 이미지들 학습
인간 제치고 미술박람회서 우승
AI 진입 장벽 낮아져 종사자 불안
AI가 그리는 그림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 게임사들은 높은 효용성의 AI 화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저작권 침해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AI 화가 ‘미드저니’가 그린 미국 미술 대회 우승작 ‘스페이스 오페라’.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을 대체하는 새 기술의 ‘편의성’과 ‘인간 소외’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게임 산업계는 ‘AI 화가’의 역할을 놓고 대립하는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그림을 머신 러닝(컴퓨터가 데이터를 분석·학습하는 기술)해 창작물을 만드는 AI 화가의 편의성이 게임사들 사이에서 부각되고 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저작권 침해와 일자리 찬탈의 여지가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쓰기 나름’ ‘생계 위협’ 의견 분분

AI 화가는 이미 상용화에 가까운 상태다. 대표적인 AI 화가 ‘미드저니’는 이용자가 몇 문장(프롬프트)을 입력하면 빠른 속도로 그림을 산출한다. 무엇보다 그림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미국의 한 프로그래머는 AI가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를 한 주립미술박람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 제출해 인간이 그린 그림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에선 이 같은 AI 화가 프로그램이 10여개에 달한다.

AI 화가는 게임 그래픽 분야에서 특히 요긴하게 쓰인다. 간단한 삽화부터 메타버스, 게임 콘텐츠 등에 AI 화가가 활용될 여지가 높다. 지난달 25일 위메이드플레이는 자체 개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애니’를 자사 게임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애니는 지난 10년간 아트팀에서 그린 스케치, 원화 등 10여만장의 이미지를 머신 러닝했다.

AI 화가의 활동을 우려하는 삽화. 게티이미지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와 삽화가 등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AI 화가의 활동이 불편하다. 이들은 AI 화가가 원작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기존 이미지를 학습하고 디자이너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AI 이미지 생성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AI 시장이 커져가는 만큼 그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와 윤리적 지침이 필요하단 내용이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A씨는 “AI를 쓰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게 아니라 사용 범위를 한정하도록 규제하자는 것”이라며 “(나의)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지키기 위함이자 생계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업한 작가들의 그림을 동의 없이 무단으로 AI에게 학습시키고 그림을 만들어내 이익을 얻는 사례가 많은데 정작 피해를 보는 작가는 보호받을 장치가 없다”고 호소했다.

반면 원화가 B씨는 “장기적으로 보면 AI가 화가를 대체하긴 어렵다”며 “작업의 막바지에는 결국 전문성 있는 사람이 개입해 선택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게임 프로젝트의 경우 게임의 성격에 맞게 이미지 스타일을 통일시키는 게 관건이기 때문에 후가공이 불가피하다면서 “게임회사에 재직하며 되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디자인 관련 기본기가 모자라도 창의적인 발상으로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오히려 잘 쓰면 야근을 줄이고 편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 규제나 판례 모호하다”

AI 화가에게 "갑옷을 입은 남자 게임 캐릭터가 14세기 중반 시기에 거대한 협곡을 지나고 있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입력한 후 나온 결과물. AI 디자인 툴 캔바 발췌

세계 각국에선 AI 규제에 대한 온도 차가 뚜렷하다. 유럽은 2021년부터 각국의 법률로 저작권 규제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AI 개발에 쓴 모든 저작권 자료를 공개하는 규제안도 추진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기업의 자율 규제를 지향한다. 국내의 경우 AI 규제에 대한 방향성을 뚜렷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섣부른 규제로 산업 발전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단 우려 탓이다. 주호영 의원을 포함한 11명이 2020년 12월 AI 저작물이란 개념을 명시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상임위 심사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재림 한국저작권위원회 전략기획팀 책임연구원은 “현행법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법 35조의5 에서는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지만 AI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인공지능 관련 판례도 없는 실정이다. 전 책임연구원은 “패권 경쟁에 뒤지면 안 되는 것도, 저작권 보호도 모두 중요한 게 맞다”며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저작물에 관해 충분한 보상을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일정한 사용료가 돌아가도록 법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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