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일인제도 국적이 문제가 아니다
금년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기업집단수는 82개다.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7년 당시에는 32개였고, 작년에는 76개였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 제도를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이라고는 없이 공정위는 점점 일거리를 늘리고 있다. 그만큼 기업의 정력과 비용은 낭비되고 기업환경은 열악해지며, 안 그래도 낮은 한국기업의 생산성은 더 낮아진다.
당초 이 제도 도입 목적은 소위 재벌 총수를 의미하는 동일인과 동일인 관련자가 이해를 같이해 사익 편취·내부 거래 같은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 총수 1인에게 과도한 덤터기를 씌우는 대표적 규제로 자리 잡았다. 공정위는 동일인과 동일인 관련자의 주식 소유 상황 등 기업 기밀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동일인을 형사처벌한다.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에는 혈족 4촌·인척 3촌, 동일인과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 법률상 친생자 관계가 성립된 자녀가 존재하는 경우 해당 사실혼 배우자까지 포함한다. 3촌·4촌이 주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처럼 친족 관계와 무관한 지배구조를 보이는 기업집단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일인에게 과중한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위반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니, 이는 명백히 헌법상 자기책임원칙 위반이며 현대판 연좌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동일인 지정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인데 공정위는 외국인에게까지 이 제도의 확대적용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동일인과 배우자, 동일인 2세의 국적 현황을 발표하면서 외국인 국적자의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핵심은 사익편취·내부거래의 가능성이 있는가 여부이지 국적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예컨대 한국GM, S-Oil, 쿠팡 등은 그 소유지배구조상 사익편취·내부거래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경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동일인을 지정한다면 제도의 취지를 망각하고 공정위의 몸집 불리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 자산 10조원을 돌파해 신규 상호출제제한집단에 들어가게 된 쿠팡을 보자. 널리 알려진바, 모회사 쿠팡 Inc.는 한국 쿠팡 법인을 100% 소유하고 있고, 한국 쿠팡 법인은 여러 국내 자회사를 100% 소유하는 구조다. 복잡하게 상호출자로 엮인 계열사도 없고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도 없다. 사익 편취 가능성은 제로(zero)에 가깝다. 미국 뉴욕 증시 상장 기업인 쿠팡은 아마 한국보다 더 까다로운 수준으로 미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가 요구하는 공시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 터이다.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했지만 한국 시장에서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글로벌 금융사 등 해외 투자자 비중이 높아 동일인 지정이 주가 하락을 촉발하면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으로 이어질 수 있고, 국내에 유입되는 투자금도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쿠팡이 미국 증시에서 조달해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7억 달러(약 8716억)로 미국이 한국에 투자한 전체 금액의 23.4%를 차지했다. 최근 2년간 쿠팡은 ‘미국 자본 유치 1위’ 기업이었다. 이런 기업을 지원하기는커녕 추가 규제의 족쇄를 채운다면 외국인·외국 기업에게 한국 투자를 설득할 염치가 있겠나. 그런데도 공정위는 외국 국적자의 동일인 지정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의해 중장기적으로 제도 마련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일인 지정제도의 폐지랄 정도의 획기적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매년 대기업그룹지정제도의 적용을 받는 기업집단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특히 해외 증시에 상장해 있는 등 기업 지배구조가 국내 대기업 그룹과는 전혀 다른 기업들에게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국가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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