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조이는 전세보증…빌라 시장 역전세 ‘빨간불’

정진호 2023. 5. 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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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됐다. 보증보험은 임대인(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HUG가 임차인(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지급해준다. 가입 기준 강화는 반환을 보장하는 금액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앞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공시가격의 150%까지 가입이 가능했던 보증보험을 공시가격의 126%까지만 가입할 수 있게끔 제도를 수정한다고 밝혔다. 보증보험 비율이 높아 ‘빌라왕’ 등이 높은 전셋값으로 임차인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보면서다.

이달부터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면, 예컨대 공시가격 2억원의 빌라는 보증 한도가 3억원에서 2억5200만원으로 낮아진다. 올해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8.6% 떨어진 만큼 실질적은 보증 한도 하락은 더 크다.


일시에 낮아진 전세금에 역전세 속출


정부 취지와 달리 전세시장에선 대규모 역전세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선 수년 전부터 ‘보증보험 한도=전셋값’이란 공식이 작용하고 있다. 주택임대사업자는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다. 또 임차인도 보증금 미반환 우려를 덜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을 선호해서다. 결국 보증보험 한도가 내려가는 만큼 전셋값도 떨어지게 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택임대사업자인 최모(43)씨는 중앙일보에 개인파산을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최씨는 서울 강서구에 전세보증금이 각각 2억8000만원인 신축 빌라 3세대를 갖고 있다. 2020년 세입자를 받았는데 2억8000만원은 당시 공시가(1억8700만원)의 150%다. 이 중 빌라 2세대의 전세계약이 7월이면 끝난다. 세입자 중 한 명이 이사를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최씨는 올해 공시가(1억8700만원)의 126%인 2억3500만원 내에서 새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 임대인 입장에선 한 번에 전세금을 공시가의 24%만큼 낮춰야 하는 셈이다.
그는 “빌라 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세입자가 들어온다고 해도 5000만원은 신용대출로 빌려 기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3세대를 모두 합하면 1억5000만원이 필요한데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은 버티더라도 임대인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계속되면 손해가 불어날 것 같아 차라리 개인파산을 해버릴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피해가 커진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에 걸린 빌라 전세 정보. 연합뉴스


가격·수요 이미 하락세인 전세 시장


전세사기의 빌미를 준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해선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 시장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이전에 없던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며 “반전세로의 전환 등 시장에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빌라 전세 거래량과 가격의 동시 하락은 보증보험 가입 기준 강화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연립·다세대주택의 평균 전셋값은 1억3394만원으로, 8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서울지역 빌라 전세 거래량은 1만5928건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2만2751건)보다 30% 줄었다. 고금리 여파로 전셋값이 하락했고, 이후 빌라 전세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대하면서 새 임차인을 구하긴 어려워졌다.


대출은 안 되는데 팔면 과태료


전국임대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과 임대차 3법 등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서 보증금을 돌려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임대 의무기간 중 주택을 양도할 경우 과태료 3000만원이 부과된다. 빌라시장 침체로 매매수요가 많지 않을뿐더러 손해 보고 팔더라도 한 집당 30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보증금 반환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에도 한계가 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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