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이 벽지 떨어지듯… 망막박리 방치하면 실명” [헬스조선 명의]
'망막박리 명의' 김안과병원 망막병원 김형석 부원장
눈은 흔히 카메라에 비유되곤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빛을 받아들여서 보는 이가 해석할 수 있는 정보로 변환하는 것. 카메라에서는 필름과 센서, 눈에서는 망막이 담당한다. 망막은 각막과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상으로 맺히는 장소이며 해당 정보가 뇌로 전달되기 전 전기신호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수정체는 고장나도 인공수정체로 교체할 수 있지만 망막은 한 번 망가지면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실명질환은 대부분 망막과 연관 있다. 최근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망막박리도 마찬가지다. 안구 안쪽에 붙어있어야 할 망막이 점점 뜨는 망막박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실명한다. 환자수가 2010년 5만3000여명에서 2020년 9만7000여명으로 증가했다. 망막박리의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해서 김안과병원 망막병원 김형석 부원장에게 물었다.
-망막박리는 어떤 질환인가?
벽에서 벽지가 떨어지듯 망막이 눈 안쪽에서 탈락하는 질환이다. 망막 일부에 발생한 열공(구멍)에 의해 달라붙어 있어야 될 망막이 스르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면 망막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시세포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고 시력이 감소하면서 결국 실명으로 이어진다. 수정체는 망가졌더라도 인공수정체로 교체할 수 있다. 그런데 망막은 한 번 손상돼서 장애가 남을 경우 교체 할 수 없다.
-방치했을 때 실명으로 이어질 확률은 어떤가?
퍼센트로 말하기는 어렵다. 망막박리 환자를 방치한 다음 얼마나 실명했는지 알아본 연구를 한 적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험상 대부분의 망막박리는 방치할 경우 실명한다.
-3대 실명 질환(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녹내장)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은데?
유병률이 높지 않아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3대 실명 질환은 연령대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국민적인 질환이라 부를 정도로 유병률이 높다. 그런데 망막박리는 만 명에 한 명 정도에 그친다. 소위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충수염에 비유할 수 있다. 유병률이 높지 않아 건강보험에서 위험한 질환에 속하진 않지만 막상 발병하면 수술해야 하는 질환 말이다. 수술하지 않았을 경우 결과가 안 좋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위험 요인은?
가장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근시다. 근시는 안구의 길이가 길어지게 만드는 데 이러면 망막은 얇아져 망막열공, 박리 위험이 높아진다. 최근 10년간 망막박리 환자가 2배 가까이 증가한 원인으로 근시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초등학생의 근시 유병률은 10%대였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80%, 최근에는 90%에 육박한다.
망막박리 유병률이 늘어나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백내장 수술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망막박리는 백내장수술의 합병증 중 하나다. 백내장은 기본적으로 노인성 질환이므로 수명이 늘어나면 환자도 증가한다. 수술 횟수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사용한 노안 수술로 홍보되면서 굳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망막박리 환자들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망막에 열공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열공성 망막박리다. 나머지 하나는 당뇨망막병증으로 인한 견인성 망막박리다. 당뇨망막병증이 증식성으로 바뀌면 눈 안쪽에서 자란 섬유혈관막이 눈을 우그러뜨리고 망막이 기계적으로 당겨지며 망막박리가 발생한다. 그런데 견인성 망막박리는 당뇨망막병증이 정말 말기까지 진행됐을 때 나타나므로 일반적인 망막박리에 포함시키진 않는다.
-병의 진행 단계에 따른 증상은 어떤가?
일단 망막박리 전 단계로 ‘후유리체박리’가 있다. 젊었을 때 안구는 유리체가 꽉 채우고 있다. 나이가 들면 유리체가 액화하고 수축하면서 망막과 맞닿았던 부분도 떨어지게 된다. 이 과정이 부드럽게 진행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어느 한 군데의 유착이 강하다면 유리체가 수축하는 과정에 망막을 잡아뜯게 된다. 이게 후유리체박리에 의한 망막박리로 망막박리의 가장 기본적인 병리 상태다.
후유리체박리 단계일 땐 보통 비문증이 생긴다. 환자들은 실, 거미줄, 구름 같은 것들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한다고 호소한다. 일반적으로 어두운 곳보다는 파란 하늘이나 하얀 벽을 응시할 때 더 잘 나타난다. 후유리체박리 단계를 넘어 망막이 박리되면 일부가 어둡게 보이며 시야가 감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구석부터 안 보이게 된다. 망막박리가 더 진행돼 눈의 중심에 있는 황반부까지 침범하게 되면 시력이 떨어진다.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표현 자체가 없다. 다만,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종종 주변 부위에 국한돼서 발생한 망막박리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주 드문 사례고 일반적으로는 시력이 떨어지고 실명할 때까지 박리된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망막박리의 진단 과정은?
망막은 우리 몸 기관 중에서 실제로 의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덕분에 망막박리를 진단하는 데 혈액검사라든지 엑스레이, mri 등은 필요 없다. 현미경으로 안저를 보는 것만으로도 확진이 가능하다. 요즈음에는 어느 안과를 가도 진단받을 수 있다.
-치료 옵션엔 무엇이 있나?
망막열공만 있거나 망막박리의 범위가 주변부에 국한된다면 레이저 망막 광응고술을 고려할 수 있다. 찢어진 부분에 레이저를 쐈을 때 생기는 상처가 치유되면서 더 이상의 박리를 막는 원리다. 레이저로 치료가 어렵다면 남은 건 수술밖에 없다.
수술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눈 바깥에 실리콘 스펀지나 밴드를 대서 열공을 막고 눈을 눌러줌으로써 망막이 벽에 가깝도록 하는 공막돌륭술이 있다. 다른 옵션은 유리체 절제술이다. 눈에 세 개 이상의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서 기구를 집어넣은 뒤 유리체를 제거하고 가스나 실리콘 오일을 채워 넣음으로써 망막을 재유착시키는 수술이다.
둘 중에 어느 게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환자의 연령과 직업, 망막박리가 발생한 위치와 정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판단한다.
-합병증 위험은 없나?
먼저 후유증으로는 변시증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완벽하게 붙어 있던 망막은 떨어졌다 재유착되는 과정에서 쭈글쭈글해진다. 이러면 사물을 봤을 때 휘어져 보이는 변시증이 나타난다.
문제는 합병증이다. 망막박리로 수술 받은 환자 약 10%에게서 증식유리체망막병증이라는 게 발생한다. 망막주변에 고정 주름이 생기는 상태인데 이러면 망막박리가 재발하게 된다. 재수술을 해서 망막을 재유착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지만 예후는 좋지 않다. 아직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의료진들이 도전해야 할 분야로 남아 있다.
-망막박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정기검진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근시인 사람, 특히 안경알이 조금 두껍다 하는 사람은 증상이 없더라도 1년에 한 번 안과 검진을 받는 게 좋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근시 치료를 권한다. 드림렌즈나 아트로핀 점안액이 근시 진행을 억제했다는 보고가 많다. 또 해당 치료를 적용하려면 의사를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망막의 위험 병변을 빨리 발견하면 망막박리 발생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일상에서 망막 건강에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눈 비비기다. 인위적으로 눈에 압력을 가하면 후유리체박리가 강제로 발생한다. 더 세게 비비면 실제 망막열공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장기간, 강하게 눈을 비비는 아토피 환자들의 망막박리 유병률이 높은 까닭이다. 가려워서 비비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눈 마사지가 좋다며 멀쩡한 눈을 꾹꾹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마사지 효과에 대해서는 말하긴 어렵지만 눈을 꾹꾹 누르는 행위가 망막에 위험하다는 건 분명하다.
-망막박리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단받고 자책하는 환자들이 많다. 눈 관리 습관이나 식습관, 심지어는 자신의 직업이 잘못됐는지 따져보곤 한다. 그런데 망막박리는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망막박리의 원인을 환자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았으면 한다. 또 치료를 받은 후에 질환이 재발할까봐 불안해하는 환자들도 많다. 망막박리는 치료가 잘 됐다면 일반인에 비해서 특별히 조심해야 될 부분이 없으므로 원래의 일상을 영위했으면 한다.
고대 의대를 졸업하고 건양대병원 안과 교수를 거쳐 현재 김안과병원 망막병원의 부원장이다. 망막은 시신경을 건드리는 고난도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형석 원장은 망막 관련 질환 수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만 240여건, 지금까지 약 4천건의 망막수술을 시행했다.
망막 관련 질환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김안과병원에서 SCI 급 논문을 매년 발표하는 데에 일조했다. 현재 한국망막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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