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라 사용 어려운데… 급여 등재 더딘 ‘희귀질환 치료제’

이해림 기자 2023. 5. 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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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주최로 열린 ‘희귀질환 신약 접근성의 실질적 제고를 위한 정책개선 토론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적용 시기를 앞당길 방안이 논의됐다./사진=이해림 기자
치료제가 ‘그림의 떡’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희귀질환 환자들이다. 희귀질환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이 개발돼, 환자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희귀의약품 허가를 받은 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으로부터 희귀질환치료제로 지정돼야 한다. 두 번째 단계가 특히 중요하다. 희귀의약품 허가를 받았더라도 희귀질환치료제로 지정받지 못하면 보험 급여 적용이 불가능해서다. 고가인 희귀의약품 특성상 급여 처리가 되지 않으면 환자 대부분이 약을 사용할 수가 없다.

한국은 희귀의약품의 급여 처리 비율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게 문제다. 2021년 말 기준으로 희귀의약품으로 허가받은 성분은 136개지만, 이 중 52.9%인 72개만이 급여에 등재됐다. 2016년 기준 희귀의약품 허가 대비 급여 등재 비율이 1위인 프랑스(93%), 2위인 독일(81.1%)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전체 의약품 지출액 중 고가 희귀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2019년 기준 한국이 고가 희귀의약품에 지출한 비용은 전체 의약품 지출액의 3.6%로, OECD 평균인 6.8%보다 낮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주최로 ‘희귀질환 신약 접근성의 실질적 제고를 위한 정책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의료계 전문가들과 희귀질환 환자들,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환자들의 ‘치료제 접근성’을 높일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장이었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치료제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척수성근위축증(SMA)의 경우, 생애 한 번만 맞아도 되는 주사제 ‘졸겐스마’와 매일 한 번만 먹으면 되는 경구치료제 ‘에브리스디’가 개발돼 희귀의약품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졸겐스마는 생후 12개월 미만 환자에게만 급여가 적용되며, 에브리스디는 아직 급여 적용 논의 중이다. 이에 SMA 환자 대부분은 경구치료제와 효과가 비슷하지만 척수강 주사로 투여할 수밖에 없는 ‘스핀라자’를 주기적으로 맞는다. 척추에 주삿바늘을 찔러넣는 게 힘들지만 그나마 급여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에브리스디는 스핀라자와의 이해관계 탓에 급여 적용이 계속 밀리고 있다. 정부에서 현재 스핀라자 급여 기준을 개정 중인데, 개정된 스핀라자 급여 기준을 고려해 에브리스디 급여 기준을 정하겠다는 게 방침이라서다. SMA 환자를 치료해온 양산 부산대병원 신경과 신진영 교수는 “급여 기준을 마련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면 환자들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신약이 개발돼도 써볼 수가 없다”며 “현행 스핀라자 급여 기준으로 에브리스디 급여 기준을 만들어 임상 현장에 사용하다, 스핀라자 기준 개정이 되면 에브리스디 급여 기준도 개정하는 식의 융통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염증이 재발할 때마다 신경이 손상되는 희귀질환 ‘시신경척수염’ 치료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시신경척수염 재발 방지 약제로 ▲에쿨리주맙 ▲사트랄리주맙 ▲이네블리주맙 등이 허가받았지만, 셋 다 급여 적용은 아직이다. 시신경척수염 재발 방지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허가받은 약인 ‘허가 초과 약제’가 환자들에게 차선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민주홍 교수는 “시신경척수염이 재발을 반복하면 환자의 62%는 시력 손실을 경험하고, 50%는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운동 기능을 상실한다”며 “환자에게 허가 초과 약제를 사용하는 건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에쿨리주맙 ▲사트랄리주맙 ▲이네블리주맙 등을 사용할 때보다 재발 예방 효과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전문가들과 희귀질환 환자들은 환자가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여 등재를 서둘러야 한단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재정을 고려하면 급여 등재 우선순위를 따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오창현 과장은 “질환의 심각성, 대체 약제 유무, 치료 효과의 임상적 우월성, 비용 효과성 입증 여부 등을 고려해 공단과 협상하다 보니 급여 등재 기간이 길어지곤 한다”며 “소아 구루병처럼 환자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질환의 경우, 급여 등재까지 필요한 일부 절차를 생략하거나 제출해야 하는 자료 가짓수를 줄여주는 식으로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헸다.

사각지대를 줄일 방법에 관한 제언도 있었다. 중앙대학교 약학과 이종혁 교수는 “희귀질환 특성상 환자 수가 많지 않아 고가의 희귀의약품을 급여 등재해도 다른 질환에 비해 재정 부담이 크지 않다”며 “재정영향이 50억 원 미만으로 비교적 적고, 해외에서 급여 등재된 희귀질환치료제라면 급여 등재를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더디긴 하나 척수성근위축증과 시신경척수염 치료제 급여 등재 논의가 진행 중이란 보고 역시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은 “스핀라자가 임상에서 이미 사용되던 약이다 보니, 급여 기준을 개정할 때 고려해야 할 근거자료나 전문가 의견이 많아 개정 속도가 더뎌졌다”며 “이에 스핀라자 급여 개정이 완료되기 전에 에브리스디 급여 기준 논의를 시작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급여 등재를 위한 위험분담제소위원회를 5월 중으로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시신경척수염 재발 방지 약제에 대해서는 “언급된 세 약제 중 하나를 생산하는 제약사가 급여 등재 신청을 취하해 정부로서도 검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하나는 올해 1월에 신청이 들어와 검토를 위해 제약사에 보완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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