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도 보호해야" 전기차 충돌기준 새로 나온다
당국·제작사, 충돌안전평가 새 기준 머리 맞대
전기차 안전백서도 8월 최종본 공개
"지하 완속충전도 80% 충전상태 제한 필요"
전기차 특성을 감안한 새로운 충돌평가 기준이 마련된다. 수백㎏짜리 배터리가 들어가 차량 중량이 무거운 데다, 충돌 시 승객은 물론 배터리도 보호할 필요가 있는 만큼 전기차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난 데 발맞춘 안전백서도 올해 안에 대중에 공개된다.
백창인 현대차 통합안전개발실장은 2일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전기차 보급확대와 안전’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백 실장은 "배터리 등 전기차 고전원장치의 경우 강한 충격과 같은 직접 충돌 시 위험 메커니즘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신규 충돌평가법을 개발하기 위해 자동차안전연구원과 킥오프 미팅을 최근 가졌다"라고 말했다.
석주식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은 "충돌사고에 의한 사고 비율은 전기차가 오히려 낮은 편이지만 화재 이슈 등으로 소비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새로운 평가 방법에 대해 (전기차 제작사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차량 설계나 구조상 기존 내연기관차에 견줘 안전한 편이나 소비자 사이에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 기존 엔진이 있던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충돌공간이 유리하고 무거운 배터리가 주로 차체 아래쪽에 깔려 있어 구를 위험도 더 적은 편이다. 다만 고전압 배터리 탓에 화재 시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내연기관차보다 불이 더 자주 나진 않더라도 한 번 불이 붙으면 끄기 어렵고, 주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이 나는 사고도 뉴스로 접한 영향이 크다.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당국이나 전기차를 개발하는 민간 제작사에서도 안전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백 실장은 "유럽 내 차량 전문가 모임과 함께 만든 전기차 안전백서 최종본을 오는 8월께 공개할 예정"이라며 "소비자나 (사고·화재 시 필요한) 응급구조원을 위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고전압 부품이나 배터리 보호 개념을 재점검하고 개선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과거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됐다가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충전 인프라가 나아지고 국산·수입차 업체에서도 잇따라 상품성을 강화하고 있다. 안전기준에 관해선 우리 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편이다. 배터리에 관한 안전시험은 유럽이 9개, UN이 10개인데 우리나라는 12개다. 배터리 침수시험이나 낙하시험은 우리나라에서만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전승인 제도에 대해서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각 제작사 자체적으로 안전기준을 맞춰 판매한 후 문제가 있을 경우 사후에 리콜·무상수리 등으로 대처하는데, 배터리에 대해선 미리 당국이 안전기준을 정해두고 미리 승인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배터리 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정부는 이력관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석 부원장은 "자동차 이력관리 항목에 배터리를 포함해 수리·교환 이력을 살펴 안전관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전기차 주행거리에 따른 성능 기준을 신설해 배터리 내구성과 성능을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별 셀 단위의 배터리를 관리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충전상태를 80~90% 수준에서 제한하는 걸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광범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과거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빈번했다가 잦아들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가 충전상태에 대해 규제기준을 신설했기 때문"이라며 "급속충전은 80~85%에서 자동으로 충전되나 완속충전은 여전히 100%까지 가능한데, 아파트나 건물 지하 충전시설도 제한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전기차는 사용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시스템이 없고 사고유형에 따라 다양한 부처에 나누어져 있어 피드백 루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양한 이슈나 현안을 반영해 구체적인 안전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한편 전기차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에 보조금을 지급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경 이비올 대표는 "전기차 사고에 대한 유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능한 조치는 교육이나 홍보 등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고 단기간 내 조치가 어려운 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에선 가이드를 마련하고 법제화하는 한편 제작사에서도 외부기관과 공조하고 긴급조치 가이드를 국내에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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