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자료 안낸 한국노총…정부, 26억 국고보조금 다 끊었다
정부가 국내 최대 노동단체인 한국노총에 대한 20억원대 국고보조금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회계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총은 즉각 ‘노동 탄압’이라고 반발하면서 노정갈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올해 노동단체 지원사업 1차 모집 신청에서 탈락했다. 고용부 측은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국고 지원 사업에 있어 정부는 지원 대상의 재정‧회계 운영상 투명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이번 심사에서 (회계 자료 제출)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노조를 제한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한국노총, 올해 26억원 예산 신청…전체 예산의 58%
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2021년 기준 123만8000명으로, 국내 상급 노동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정부는 매년 노사 상생 및 협력 증진 명목으로 노동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한국노총은 전체 예산의 과반을 받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해왔다. 올해도 노동단체에 배정된 예산 44억7200만원 가운데 한국노총은 약 26억원(58.1%)을 신청했다. 민주노총은 총연맹 차원에선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올해 한국노총에 대한 지원 중단은 예견된 수순이다. 앞서 정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34곳에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14조와 17조에 따른 재정 관련 장부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율점검결과서(체크리스트)와 표지 및 속지 1쪽씩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지나친 노조 간섭이라며 본부 차원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정부는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맞대응했다. 그럼에도 한국노총 본부를 포함한 52개 노조가 끝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부 “자료 제출시 지원” vs 한국노총 “노동 탄압”
정부는 한국노총이 지금이라도 자료를 제출하면 추가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1차 모집을 통해 23개 노동단체에 예산 8억원이 배정됐고, 남은 예산 36억원에 대한 2차 모집은 이달 중 공고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보조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노총이 올해 빠지다 보니 예산이 많이 남은 상태”라며 “2차 모집 전까지 한국노총이 회계 자료를 제출한다면 추가 지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양대노총 산하라도 정부 요구 자료를 제출했다면 보조금 지원이 이뤄졌다. 올해 1차 모집에서 한국노총 소속은 전국연대노조 플랫폼운전자 지부와 가사돌봄서비스 지부 등이, 민주노총 소속은 배달플랫폼 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 지부 등이 신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외에 한국장애인노총, SK매직 현장중심 노조, 경기도 중고차딜러협회 등도 올해 새롭게 지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노동 탄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자료 제출 의사가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정부가 노조에 회계 관련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노조법 제14조는) 조합원에 대한 의무이지, 정부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라며 “명백한 한국노총 탄압이며 노조를 돈으로 길들이려는 치졸한 수작”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1일 진행된 정부의 현장조사도 거부한 바 있다.
이번 지원 중단으로 올해 한국노총 활동은 적잖은 제약이 생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보조금 26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억7000만원이 전국 19개 지역노동교육상담소 인건비로 활용됐다. 한국노총은 “상담소 실적을 보면 조합원보다 비조합원이 월등히 높다”며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업인데,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상담소 30여명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법률 취약 노동자와 국민의 법률구조 서비스 이용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무너진 노정 파트너 관계…“서로 한 발짝 물러서야”
다만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의 노정 파트너 역할을 해온 한국노총과의 관계마저 무너진다면 향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정 대화가 사실상 차단된 채 극단적인 대립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정 관계가 파행을 반복하게 되면 우리 경제나 사회 안정에 주는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한국노총은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면서 필요한 사안을 요구해야 하고, 정부도 중요한 대화 파트너를 너무 막다른 길로 몰아가선 안 된다. 서로 한 발짝 물러나 어디서부터 막힌 곳을 뚫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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