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 쓴 한운사, 백석 해금한 정한모…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린다
문화공보부 장관 시절 월북 작가 백석의 작품을 해금한 시인 정한모. 1964년 영화 '빨간 마후라'의 각본을 쓰고 이어령을 발굴한 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 한운사. 청년기에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은 문학인 6명을 재조명하는 문학제가 열린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11·12일 이틀간 공동 개최하는 '2023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행사다. 2001년 시작된 이 문학제는 이름처럼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들을 매년 조명한다. 올해 대상 작가는 1923년에 태어난 박용구·방기환·정한모·한성기·한운사·홍구범이다.
이들은 한창 문학 세계를 구축할 나이인 20대 초반에 해방을 맞았다. 올해 문학제 기획위원장을 맡은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2일 간담회에서 "일제강점기 단절됐던 모국어를 살려 우리 문학을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소명감으로 글을 썼던 분들"이라고 작가 6인을 소개했다.
시인 모윤숙이 1949년에 창간, 1954년 종간된 문학잡지‘문예(文藝)’가 이들의 구심점이었다. 홍구범·박용구가 잡지 실무 편집자로 일했고, 한성기가 이 잡지로 등단했다. 방기환도 주요 필자였다.
시인 정한모(1923∼1991)는 서울대 문리대 교수와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냈다. 주요 시집으로 『카오스의 사족』, 『아가의 방』, 작가론을 묶은 『현대작가연구』등이 있다. 문공부 장관 재임 중이던 1988년 월북 작가들을 해금 조치해 백석·이태준·박태원 등 월북작가 120명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방송문화연구원장, 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등을 지낸 한운사(1923∼2009)는 영화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소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을 남겼다. 한국일보 문화부장 재직 당시 대학생이었던 고 이어령 교수가 당시 문단 기득권을 비판한 글 '우상의 파괴'(1956년)를 게재해 파장을 불렀다.
나머지 네 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박용구(1923∼1999)는 계간 ‘문예’의 편집자를 지낸 소설가다. 소설집 『안개는 아직도』 『만월대』 『진성여왕』 등이 있다.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났지만 분단 이후 대전에 터 잡은 시인 한성기(1923∼1984)는 시집 『실향』, 시선집 『낙향 이후』 등을 남겼다. 사망 연도가 밝혀지지 않은 소설가 홍구범은 단편 '봄이 오면', '농민' 등이 알려져 있고, 소설가 방기환(1923∼1993)은 소설집 『누나를 찾아서』 『소년과 말』 등을 남겼다.
우찬제 교수는 “올해는 기존 문학사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작가들을 다룬다. 이들이 올해 행사를 통해 새롭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학제는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으로 시작한다. 우찬제 교수의 총론을 시작으로 이철호·신은경·조영복·송기한·이명원·김정숙 등 평론가들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근대화로 이어지는 격변기를 살아낸 문인 6명의 세계를 소개한다. 12일에는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문학의 밤’ 행사가 열린다. 김민지·김수온·김호성 등 젊은 문인들이 선배들의 작품을 낭독한다.
한국작가회의 윤정모 이사장은 “살아 계실 때 가르침을 받은 문인들을 다시 뵙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며 “문학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정서적으로 (옛 문인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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