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도 부족하다는 세상, 김사부가 말한 낭만
[이정희 기자]
▲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 |
ⓒ SBS |
복수의 시대이다.
아니 미 서부 시대도 아니고, '복수'의 시대라니,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겠다. 그런데 TV 드라마로 보면 '복수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2023년 가장 화제작이라 치자면 <더 글로리>가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를 통해 2시즌 나누어 공개된 <더 글로리>는 고등학교 시절 학폭을 경험한 이가 선생님이 되어 가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은숙 작가와 안길호 피디, 수식어 없이 그 이름만으로도 드라마 콘텐츠를 앞서 이끌었던 이들이 2023년에 내세운 코드는 '복수', '응징'이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TV 드라마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로 종영한 <모범택시2> 역시 '응징과 복수'를 주제로 내세웠다. '정의가 실종된 시대,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라는 무지개 운수는 파렴치한 악인들에게 그대로 '악'을 돌려둔다. 어디 인기 드라마뿐인가, 주중 일일 드라마와 아침 드라마에 '복수'가 없으면 드라마가 진행이 안 된다.
사람들 마음에 쌓인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드라마가 속시원하게 풀어내려 한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낭만'이 통할까? 김사부의 오래된 테이프 속 가요들처럼 오랜만에 돌아온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 말이다. 2016년부터 시즌 1이 시작되어, 2020년 시즌 2에 이어, 2023년 시즌 3로 찾아왔다.
▲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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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즌 3로 돌아온 <낭만닥터 김사부>는 2023년의 낭만이란 화두를 어떻게 풀어내고자 할까?
모처럼 한가롭게 강가에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김사부(한석규 분), 그런데 가방 옆에 끼워 둔 그의 핸드폰이 연신 울린다. 그 시각, 연안 해경 선박에 헬기 한 대가 착륙한다. 그곳에서 내리는 서우진(안효섭 분), 박은탁(김민재 분), 돌담 병원 식구들이다.
연안에 의문의 배 한 척이 표류한다는 정보에 따라 해경이 조사에 나서고, 많은 이들이 이미 숨진 채 있는 선박에서 아이를 포함한 네 명을 구조했다. 그중 한 명은 총을 맞은 채 죽어가고 있는 중, 아직 의식이 있는 여성은 울부짖는다. 자신의 아버지라고, 살기 위해 북에서 내려왔다고.
해경 선박 조촐한 의무실에서 응급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밤길을 달려간 차은재(이성경 분)가 찾아낸 김사부가 합류해서 총상으로 인한 출혈은 겨우 멈췄지만, 돌담 병원으로 이송해서 2차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환자를 옮길 수 없단다.
드라마 속에서는 바야흐로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해빙 무드가 한참이다. 그로 인한 무역 흑자가 몇 십억이 예상되는 상황, 그런데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내려온 이들이라니! 회담이 끝나는 시각까지 공해상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회담장을 찾은 남측 대표, 그런데 북측 대표단이 흔적도 없다. 이렇게 드라마는 '현실'과 마찰을 빚는 돌담 병원의 '낭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며 문을 연다. 모처럼 화해 무드를 맞이한 남과 북의 해빙 모드는 물론, 그로 인한 경제적 가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못 본 채 해야 하나?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의 목숨을 우선 생각하는 김사부는 '궁즉통'을 생각해 낸다. 나뭇잎들이 감싼 오래된 돌담 병원, 그 옆에 '으리번쩍'하게 등장한 '돌담 외상 센터', 아직 준공 전이라, 그곳에 환자들을 옮겨 진료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담당 공무원들이 알게 되면 준공 검사에 차질을 줄 거라며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장기태 행정실장(임원희 분)을 뒤로 하고 비닐도 뜯지않은 첨단 의료기기들이 있는 돌담 외상 센터에 첫 환자가 도착한다. 김사부는 말한다. '돌담 외상 센터의 첫 환자니 꼭 살리자'고. 드라마는 말한다. 이 시대의 낭만이란, 오래된 옛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는 '이타'라는 것에 여전히 천착하는 것이라고.
▲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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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의 단골,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한 술 더 떠서 아버지를 살려달라던 딸은 항생제가 듣지 않는 폐결핵에, 의문스럽던 남자는 알고보니 총상을 입힌 주범으로, 국정원 요원을 죽이려 하고, 장동화 선생(이신영 분)을 볼모로 잡아 북으로 자신을 보내라며 협박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를 비롯한 환자들 모두에 대한 '송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김사부는 폐결핵을 앓는 딸의 폐절제술 수술을 감행한다. 박민국 원장도, 장기태 행정실장의 만류도 소용없다. 자신을 말리러 온 박민국에게 김사부는 말한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그냥 '월드&피스(World & peace)'하면 안 되겠냐고.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원장과 달리, 왜 김사부는 송환될지도 모를 환자에게 수술을 하는 걸까?
피를 토하며 쓰러진 젊은 여성은 폐결핵을 앓으며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상태, 그 상태로 송환이 되거나 하면 약을 쓴다해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사부는 망가진 폐 일부를 절제해서, 김사부가 치료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해도 환자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송환'되었을까? 환자가 있던, 하지만 이제는 텅 비어버린 중환자실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김사부, 그런 그의 앞에 허탈한 얼굴로 나타난 서우진, 그들이 변칙을 마다하지 않고 살리려 했던 환자들은 그렇게 떠나고 만 걸까? 잠시 후 김사부는 한 통의 전화를 한다. 북과의 대화에 나섰던 우리 측 장관, 그는 김사부에게 묘한 여운이 남기는 한 마디를 전한다. 이제 당신에게 빚진 게 없노라고. TV에서는 해상에서 발견된 이들 중 단 한 명만 살아 북송되고, 나머지는 사망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냉엄한 남과 북의 현실, 그 속에서 위기를 맞이한 생명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김사부로 시작된 시즌 3, 그렇게 2023년의 '낭만'에 말문을 연다. '눈에는 눈'이어도 성에 안 찬다는 시대에 김사부 식의 낭만이 이번에도 통할까? 전작 <모범택시> 시즌 2 반토막에 가까운 시청률이지만, 그래도 13.1%라는 호조를 보이며 김사부 시즌 3는 출발했다. (닐슨 코리아 기준)
<더 글로리>는 59회 백상 예술 대상 작품상과 최우수 연기상과 조연상을 휩쓸며 2023년의 위너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건 연출상을 받은 유인식 감독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이었다. '복수와 응징'이 범람하는 시대에 한 줄기 빛이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과연 오랜만에 돌아온 김사부의 '낭만'도 그런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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