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삶의 일부분이 된 자전거

박희종 2023. 5. 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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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청춘이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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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기자]

은퇴 후 친구들과 아내를 동반한 식사 후, 느닷없이 자전거 가게로 들어섰다. 기백만 원은 하니 아내의 힘을 빌려야 해서다. 어쩔 수 없었던 아내, 은퇴하는 남편의 놀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안장에 올라 자전거를 타는 길, 도저히 엉덩이가 아파 탈 수가 없다. 몇 km를 가다 내리고, 다시 타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아내를 설득해 기백만 원을 주고 사들인 자전거, 반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밤새도록 고심하고 일어난 아침,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아픔을 참으며 연습을 하면서 서서히 견딜 만했다. 기어이 10km를 견디고 20km를 참아내면서 서서히 자전거 마니아로 변하게 되었다. 은퇴를 한 직후이니 2015년경의 이야기다. 그후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만난다. 
   
▲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누비다 은퇴후에 만난 자전거,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낙동강을 따라 부산으로 향하고, 섬진강을 따라 광양으로 달려본다. 언제나 친구들이 있고 자전거가 있어 즐거운 삶의 순간들이다.
ⓒ 박희종
이제는 60km 정도는 거뜬하게 타면서 맛있는 집을 찾아나선다. 가끔은 80km를 타기도 하고, 심지어 100km를 견딜 수 있는 늙은 청춘이 되었다. 거칠 것 없는 자전거 마니아가 된 것이었다. 안장에 앉아 바라보는 자연은 신비했다.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주파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길을 해내고 말았다. 그 후, 낙동강 줄기를 따라 부산을 갈 수 있었고, 섬진강을 따라 광양까지 가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친구들이 있고 자전거가 있으니 언제나 즐거운 삶이 되었다. 늙어가는 청춘의 새로운 삶, 자전거가 만들어주었다. 햇살이 가득한 아침,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나섰다. 세월이 변해 농로가 잘 정리되어 자동차가 오고 갈 수 있다. 

새봄이면 널따란 들판 따라 초록이 가득하다. 초록의 물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감히 생각도 못했던 환희가 찾아온다. 더위가 찾아온 도심, 시원한 바람을 타고 강가를 누빈다.

남한강 줄기를 타고 달려가는 자전거길, 춘천 호반을 서성이는 자전거길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거기엔 맛있는 먹거리가 있고, 삶의 이야기가 있었다. 가을이면 황색물결이 굽이치는 들판 속으로 달려간다. 누런 논에서 물결이 친다. 익어가는 곡식이 손을 흔드는 들판에 앉아 도시락을 편다. 김밥이 있고 사과가 한 덩어리, 물이 한 모금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자전거가 아니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을 환희, 늙어가는 청춘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 친구들과의 자전거 길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즐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곳곳의 자전거길을 찾아 나선다. 상주에서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길,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나들이 길이다.
ⓒ 박희종
오늘도 이른 새벽에 자전거 길을 나섰다. 새벽부터 일하는 이웃들이 미안해 서두른 자전거길이다. 일터로 나서기 전에 자전거길에 나서야 해서다. 안개가 자욱한 들판을 달려간다.

긴 언덕이 앞을 보이지만 서서히 근육의 힘을 빌려본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숨소리가 거칠어도 시원한 바람이 있고, 맑은 공기가 있다. 서둘러 고개를 넘으면 맑은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있을 것 같은 세월은 금방 일 년을 삼키고 만다. 언제 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시냇물을 따라 달려가는 길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냇가에 나와 있는 오리 한쌍이 물살을 가른다. 평화롭기만 하던 오리의 물밑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언제나 쉼만 있을 것 같았던 오리의 발길은 쉼이 아니었다.

자전거 길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다시 만난 오리 한쌍은 새끼들을 거느리고 있다. 목을 빼고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옆에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에 관심도 없다. 사람은 다슬기를 잡고, 오리는 먹이를 찾으면 되는가 보다.

자연의 어울림이 너무나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늙어갈 줄 몰랐던 철부지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들판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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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고도는 은퇴후의 삶이다. 언제나 자연과 함께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전거길, 오늘도 파란 들판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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