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오열하는 아들... 스페인 첫날부터 난관입니다
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 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편집자말>
[유종선 기자]
어린 아이를 둔 부모가 혼이 나갈 때가 언제일까.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할 때다. 이건 그냥 달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오열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오열이 스페인 여행 첫날 바르셀로나 지하철 3호선 리세우(Liceu) 역에서 터져나왔다. 우르르 사람들이 개찰구를 드나드는 가운데 양 편으로 나뉘어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었던 나와 아들. 그 혼란이 지나고 지하철이 출발하자 아들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빠 너무해! 지하철 너무해! 스페인 너무해!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돕고자 했지만 도대체 내 표는 작동하질 않았다. 왜 표가 안 되는 거야아! "아이고, 우주야, 울지 마. 잠깐만 기다려. 아빠 똑바로 보고 있어! 지금 표 다시 뽑는다!" 한국말로 외치며 결국 표를 다시 사서 뛰어들어왔다. 이번엔 1회권이다.
▲ 첫 10회권을 뽑는 순간 이때까지만 해도 신나서 아들은 기록을 남겼다. |
ⓒ 유종선 |
"내리자! 반대편인가 봐."
"네?"
아직 울음을 멈춘 지 얼마 되지 않는 아들은 아빠가 이끄는 대로 하릴 없이 열차에서 내려 표를 넣고 개찰구를 나갔다. 반대편에서 나는 10회권을 다시 사서 아들과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리고 한 정거장을 간 후 깨달았다. 아까 거기가 맞았구나.
"우주야, 아까 그 방향이 맞았어. 다시 내리자."
울먹울먹, 오열이 다시 장전되고 있었다. 얼른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지하철 역을 나갔다. 넓은 길이 나왔다. 우주는 아까부터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추정되는)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탄 열차도 우리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대혼란. 우주는 결국 오열을 발사했다. 집결 시간도 지났다. 예약한 가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까지 오셨나요?"
"제가요… 지하철을 잘못 타서요…."
"네? 어디신데요?"
"반대편으로 다시 내려갔는데도 지하철이 거꾸로 가서요, 여기 왜 이런 걸까요...."
"아... 네...."
출근시간이라 택시도 좀체 잡히지 않았다. 우주에겐 하늘이 무너져 있었다. 우아앙 울다가 갑자기 우주가 말한다.
"이거 인종차별 아니에요?"
"에이 그건 아니야. 아무 상관 없어."
어디서 그런 건 읽었니… 차라리 그런 거라면 아빠가 이렇게 창피하진 않겠다. 그런데 제발 좀 그만 울자. 내가 울고 싶다, 야. 오래 기다려 간신히 우버를 탔다. 한 시간 전 숙소를 나설 때는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지를 벗어난 도로에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택시를 탄 아들은 모든 게 서러웠다.
집결 시간을 한참 지나,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가이드 투어에 합류했다. 합류하자마자 우주는 가이드 분께 나의 실수를 고해바쳤다. 사람들이 비교적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민폐일까 봐 가장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방해를 끼친 것 같진 않았다.
▲ 구엘공원의 긴 벤치에서 날이 춥고 흐려 사람이 없어서 가이드가 본 이래 이곳에서 가장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
ⓒ 유종선 |
나의 첫 10회권이 개찰구에 넣기 전에 구겨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인식을 못했나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지하철의 전자 노선도는 지나온 길에 불을 켜놓고 앞으로 갈 길에 불을 꺼 놓는다. 서울과 반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대편 플랫폼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지하철 역이 꽤 커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다른 플랫폼으로 내려갔었나 보다. 이 추론이 다 맞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부터 우주는 나 혼자 길을 찾게 두지 않았다. 구글맵 및 다른 앱으로 자기 나름대로 지하철 노선과 걷는 방향을 꼭 확인했다. 나는 로밍, 아들은 유심으로 인터넷을 했는데, 내 폰이 아들폰보다 방향을 더 늦게 찾을 때가 잦았다. 그래서 아들의 길잡이는 그 이후부터 상당히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아마 이번 여행 전체의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는 이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깨달은 것이다. '아빠를 무조건 믿지 마라.' 아들은 한 시간의 오열 끝에 성장했다. '저 사람도 잘 모른다. 내 앞 길은 내가 찾아나서야 한다.' 만 7세의 마음에 싹튼 독립심. 그래, 네가 나를 좀 도와다오.
혼자 여행할 때는 궤도를 좀 이탈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으니 궤도 이탈은 사고였다. 하지만 이날 이후 나도 우주도 궤도 이탈에 대응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 구엘공원의 길 <꽃보다 할배>의 출연진도 걸었던 |
ⓒ 유종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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