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오열하는 아들... 스페인 첫날부터 난관입니다

유종선 2023. 5. 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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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여행 1일차, 버벅대는 아빠에게서 아들이 배운 것

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 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편집자말>

[유종선 기자]

어린 아이를 둔 부모가 혼이 나갈 때가 언제일까.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할 때다. 이건 그냥 달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오열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오열이 스페인 여행 첫날 바르셀로나 지하철 3호선 리세우(Liceu) 역에서 터져나왔다. 우르르 사람들이 개찰구를 드나드는 가운데 양 편으로 나뉘어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었던 나와 아들. 그 혼란이 지나고 지하철이 출발하자 아들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빠 너무해! 지하철 너무해! 스페인 너무해!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돕고자 했지만 도대체 내 표는 작동하질 않았다. 왜 표가 안 되는 거야아! "아이고, 우주야, 울지 마. 잠깐만 기다려. 아빠 똑바로 보고 있어! 지금 표 다시 뽑는다!" 한국말로 외치며 결국 표를 다시 사서 뛰어들어왔다. 이번엔 1회권이다. 

길 못 찾는 아빠와 서러운 아들 
 
▲ 첫 10회권을 뽑는 순간 이때까지만 해도 신나서 아들은 기록을 남겼다.
ⓒ 유종선
지하철은 곧 도착했고 우리는 열차에 탔다. 그런데 노선도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반대로 탄 것 같았다. 가야할 역엔 불이 꺼져 있고 지나온 역(으로 추정되는 역들)에는 불들이 켜져 있었다.

"내리자! 반대편인가 봐."
"네?"

아직 울음을 멈춘 지 얼마 되지 않는 아들은 아빠가 이끄는 대로 하릴 없이 열차에서 내려 표를 넣고 개찰구를 나갔다. 반대편에서 나는 10회권을 다시 사서 아들과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리고 한 정거장을 간 후 깨달았다. 아까 거기가 맞았구나.

"우주야, 아까 그 방향이 맞았어. 다시 내리자."

울먹울먹, 오열이 다시 장전되고 있었다. 얼른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지하철 역을 나갔다. 넓은 길이 나왔다. 우주는 아까부터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추정되는)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탄 열차도 우리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대혼란. 우주는 결국 오열을 발사했다. 집결 시간도 지났다. 예약한 가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까지 오셨나요?"
"제가요… 지하철을 잘못 타서요…."
"네? 어디신데요?"
"반대편으로 다시 내려갔는데도 지하철이 거꾸로 가서요, 여기 왜 이런 걸까요...."
"아... 네...."

출근시간이라 택시도 좀체 잡히지 않았다. 우주에겐 하늘이 무너져 있었다. 우아앙 울다가 갑자기 우주가 말한다.

"이거 인종차별 아니에요?"
"에이 그건 아니야. 아무 상관 없어."

어디서 그런 건 읽었니… 차라리 그런 거라면 아빠가 이렇게 창피하진 않겠다. 그런데 제발 좀 그만 울자. 내가 울고 싶다, 야. 오래 기다려 간신히 우버를 탔다. 한 시간 전 숙소를 나설 때는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지를 벗어난 도로에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택시를 탄 아들은 모든 게 서러웠다.

집결 시간을 한참 지나,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가이드 투어에 합류했다. 합류하자마자 우주는 가이드 분께 나의 실수를 고해바쳤다. 사람들이 비교적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민폐일까 봐 가장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방해를 끼친 것 같진 않았다.

여행의 성과? 
 
▲ 구엘공원의 긴 벤치에서 날이 춥고 흐려 사람이 없어서 가이드가 본 이래 이곳에서 가장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 유종선
아들은 지금도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난 또 아빠가 스페인에 가본 적이 있는 줄 알았죠. 아빠가 모를 거라고 생각을 못한 게 제 실수에요!" 그리고 우리는 실수의 이유를 추론했다.

나의 첫 10회권이 개찰구에 넣기 전에 구겨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인식을 못했나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지하철의 전자 노선도는 지나온 길에 불을 켜놓고 앞으로 갈 길에 불을 꺼 놓는다. 서울과 반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대편 플랫폼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지하철 역이 꽤 커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다른 플랫폼으로 내려갔었나 보다. 이 추론이 다 맞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부터 우주는 나 혼자 길을 찾게 두지 않았다. 구글맵 및 다른 앱으로 자기 나름대로 지하철 노선과 걷는 방향을 꼭 확인했다. 나는 로밍, 아들은 유심으로 인터넷을 했는데, 내 폰이 아들폰보다 방향을 더 늦게 찾을 때가 잦았다. 그래서 아들의 길잡이는 그 이후부터 상당히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아마 이번 여행 전체의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는 이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깨달은 것이다. '아빠를 무조건 믿지 마라.' 아들은 한 시간의 오열 끝에 성장했다. '저 사람도 잘 모른다. 내 앞 길은 내가 찾아나서야 한다.' 만 7세의 마음에 싹튼 독립심. 그래, 네가 나를 좀 도와다오.

혼자 여행할 때는 궤도를 좀 이탈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으니 궤도 이탈은 사고였다. 하지만 이날 이후 나도 우주도 궤도 이탈에 대응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아들은 이제 소리쳐 울지 않았고 (울먹울먹 소리지를 뻔까지는 습관적으로 가곤 했지만) 나도 차분히 설명을 했다. 우리의 주문은 '오히려 좋아!'였다. 이렇게 된 김에 다른 걸 보거나 다른 걸 하지 뭐. 오히려 좋아!
 
▲ 구엘공원의 길 <꽃보다 할배>의 출연진도 걸었던
ⓒ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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