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집된 17세 아들, 아버지도 따라나섰다
[원종빈 기자]
▲ <파더 앤 솔저>의 한 장면. |
ⓒ 파더 앤 솔저 |
1917년, '바카리 디알로'(오마르 시)는 강제 징집된 17세 아들 티에르노의 곁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군에 입대한다. 두 사람은 함께 전선에 투입되고, 전쟁에 직면한다. 티에르노가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바카리는 그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평범한 부자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서나 익숙하게 쓰이지만 의외로 오래되지 않은 말이 있다.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에 만들어진 단어, 민족이다. 민족은 'Nation'을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언어나 문화, 국기나 국가(國歌) 같은 상징을 공유한다고 여겨지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민족 개념이 퍼졌다. 한 민족이 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도 널리 퍼졌다. 실제로 새롭게 생겨난 나라도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즉, 민족은 혈통과 관련된 말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존재한 개념도 아니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질 때 생성된 새로운 관념이다.
그런데 민족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거나 대표팀에 내분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정부가 청문회를 연다. 축구에 미쳤기 때문이 아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많은 축구 대표팀은 그 자체로 프랑스의 통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드피에 감독의 <파더 앤 솔저>는 특별하다. <파더 앤 솔저>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한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땅에 뿌려진 피와 땀의 의미도 들려준다.
▲ <파더 앤 솔저>의 한 장면. |
ⓒ 파더 앤 솔저 |
얼핏 보면 <파더 앤 솔저>는 평범하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부성애 이야기는 익숙하다. 물론 그만큼 호소력이 짙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병력이 부족해지자 세네갈 땅에 사는 부족민을 강제로 징집한다. 티에르노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카리는 아들을 빼돌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자원입대한다. 아들을 보호하고, 집으로 보내기 위해서. 방법도 여러 가지다. 티에르노를 후방에 남기기 위해 취사병 보직으로 보내려 로비하고, 은신처를 찾거나 탈영 계획을 짜기도 한다.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자 자기 한몸을 희생한다. 전투 중 독일군 포로가 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독일군 진지에 침투한다. 아들을 구출해서 프랑스군 참호로 돌려보내는 데도 성공한다. 비록 자기는 총 맞아 쓰러지지만.
이처럼 <파더 앤 솔저>는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시점에서 묵직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러니 설사 흔한 스토리라 해도 심금을 울리기에는 충분하다.
세네갈 부족민, 프랑스 군인이 되다
반면에 아들의 시점에서 보면 <파더 앤 솔저>는 전혀 다른 영화다. 원치 않게 프랑스군에 입대한 티에르노. 그도 처음에는 집을 그리워한다. 전선에서 친구가 총에 맞아 죽고, 자기도 죽을 위기를 여럿 넘기면서 귀향을 꿈꾸는 마음은 더 커진다.
그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달라진다. 프랑스군과 독일군 참호 사이에 방치된 친구 시신을 수습해 오는 등 무공을 보여준 결과 상병으로 진급한다. 다른 병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프랑스 지휘관들과 교류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보호 때문인 걸 알면서도 아버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자기를 증명하려는 만용을 부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사춘기 아들의 반항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한 요소가 끼어든다. 바로 프랑스다. 이등병 티에르노가 상병을 거쳐 하사까지 진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공 외의 무기가 있었다. 의사소통 능력이다. 티에르노는 아버지와 달리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안다. 그는 프랑스군 장교와 아프리카 출신 병사들 간의 가교였다. 그 결과 티에르노의 변화에는 전혀 다른 의미가 깃든다. 그는 단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반항하는 게 아니다. 그는 프랑스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따라서 제1차 세계 대전을 두고도 아버지와 아들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바카리는 부족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독일과의 전쟁도 무의미한 살육일 뿐이다.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한 탈영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티에르노는 다르다. 그에게 이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탈영은 하나의 공동체인 프랑스를 배신하는 선택이다. 그가 아버지와 달리 전선으로 복귀하고 프랑스를 위해 싸운 이유다.
민족과 부족, 국가와 가족 사이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바카리의 부성애도 달리 보인다. 그의 죽음은 이제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마냥 가슴 아픈 감동도 아니다. 질문이다. 한 민족이라는 자각도 없이 참호에서 죽어간 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전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족을 잃고, 가족이 찢어진 채로 그들이 지켜낸 국가와 민족은 또 무슨 의미인지. 식민지에서 끌려와 파리 개선문 밑에 묻힌 이름 모를 군인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다른 부자 관계도 바카리가 던지는 질문에 힘을 실어준다. 영화에는 프랑스군 장성 아버지와 중위 아들이 등장한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능력이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푸념한다. 실제로 아버지는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아들 부대를 방문했을 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이 작전 중 전사하니 아버지는 마침내 그를 인정한다. 성대한 장례식을 열고 아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가족 대신 민족과 국가를 선택했다고 칭찬한다. 과연 이 아들은 아버지의 칭찬에 기뻐할까? 의문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파더 앤 솔저>는 얕은 영화일 뻔했다. 이야기는 전형적으로 흐른다. 내용을 예상할 수 있는 제목도 한몫한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였다. 결말의 맥락은 복잡하다. 그만큼 여운은 길다. 2022년 칸영화제 Un Certain Regard 섹션의 개막작답다. 익숙함을 뒤집어 고뇌의 시간을 선사한 바드피에 감독의 재능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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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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