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그리지 않아 즐겁다" 선비가 남긴 풀벌레 그림 [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이상헌 2023. 5. 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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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 인재를 키우고 노년에 이름을 떨친 표암 강세황

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이상헌 기자]

문인이자 화가, 평론가로서 거문고를 타며 당대를 주름잡았던 표암 강세황은 환갑이 넘어서야 영조의 배려로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었다. 도총관을 비롯한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일을 맡아 만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70대에는 사절로서 청나라를 방문하여 한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된다. 당시 청나라 사람들이 강세황의 글씨와 그림을 얻고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젊은날 30년은 초야에 묻혀 살아야 했으니 아버지가 저지른 과거 부정 사건 때문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가진 자의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른다. 예조판서였던 아버지 강현(姜鋧)은 장남인 강세윤(姜世胤)을 과거에 합격시키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가 발각되어 가문이 기울기 시작한다.

진부하게도 심익창이 쓴 수법과 똑같이 시험지를 바꿔쳤다가 들통이 나서 강현은 파직되고 강세윤은 변방으로 귀양을 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 시절에도 회전문 인사는 계속된다. 수 년이 지나 영조가 등극하고 강세윤은 이천부사에 임명되며 때마침 일어난 이인좌의 난(영조의 즉위를 반대하며 소론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는 공을 세우나, 취조 중 생긴 혼선으로 또 다시 유배된다.
 
▲ 표암 강세황 초상. 작자 미상의 강세황 초상으로 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훗날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정세윤과 이름이 같아서 벌어진 오해였음이 밝혀져 사면되지만 집안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벼슬길이 막혀버린 강세황은 가난을 견디지 못하여 처가가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간다. 지독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가 거문고와 벗하며 학문과 그림에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유씨 덕분이었다.

빈곤한 살림살이에도 처남 유경종(柳慶種)의 도움으로 여러 문인과 교류를 하며 높은 안목과 학식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의 그림 중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가 바로 당시의 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거문고 옆에 앉아 있는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훗날 당대 조선에서는 유래가 없는 자화상을 그리게 만든 원동력으로 진화한다.

어려운 시절에 능력을 기르고 사람을 키우다

강세황은 32세부터 환갑에 이르기까지 안산에서 생활하며 눈부신 업적을 쌓는다. 그의 명성이 드높아지면서 여러 문인과 화가 등이 찾아와 작품에 대한 평을 듣고자 했다. 이때 자주 교류했던 인물들이 제자로 받아들인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현재 심사정, 성호(星湖) 이익, 호생관(毫生館) 최북 등이다.

친구로 지낸 심사정과는 서로의 그림에 평을 하는 사이였으며 각자의 그림을 모아 <표현연화첩(豹玄聯畵帖)>을 펴낸다. 당시 안산 모임은 처남 유경종의 활약이 컸으며 성호와 함께 표암이 주축을 이루어 한껏 풍류를 즐겼다. 연객 허필이 발문을 적은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에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 균와아집도 속의 표암, 김덕형, 심사정, 최북, 허필. 김홍도. 당대 조선에서 한 가락씩 하는 인물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다.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책상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이다. 곁에 앉은 아이는 김덕형이다. 담뱃대를 물고 곁에 앉은 사람은 현재이다. 치건을 쓰고 바둑 두는 사람은 호생관이다... 구석에 앉아 바둑 두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연객이다... 퉁소를 부는 사람은 김홍도이다. 인물을 그린 사람은 또한 홍도이고, 소나무와 돌을 그린 사람은 곧 현재이다. 표암은 그림의 위치를 배열하고, 호생관은 색을 입히고, 모임의 장소는 곧 균와이다." - <시대를 앞서간 예술혼, 표암 강세황>(전시도록)

표암은 어떻게 하면 우리네 산수를 더 깊이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서양화법을 도입하여 <송도기행첩>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화훼도를 통해 여러 풀벌레를 담백한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초충도는 무를 넣어 우려낸 맑은 황태장국을 먹는 느낌이다. 단순하고 심심한 느낌이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무의식에 남아 계속 떠오르게 만든다.

떼창을 하는 여치 무리

<패랭이와 방아깨비>, <벼와 방아깨비>, <모란과 나비> 등의 작품으로 메뚜기 무리와 나비류를 자주 그렸다. <맨드라미와 여치>라는 작품을 남기면서 적은 글을 보면 누군가의 "주문으로 억지로 그리지 않아서 즐겁다"고 썼다. 맨드라미의 묘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여치는 일부러 부각시켜 강약의 리듬감을 화폭에 담고 있다.

여칫과에는 여치를 비롯하여 베짱이, 쌕쌔기, 매부리 등이 속해있다. 여치가 비교적 똥똥한 몸통에 겉날개가 배끝까지 자란다면 베짱이는 날렵한 체구에 날개가 몸집의 두 배 정도로 길어서 잘 날아다닌다. 덩치는 여치가 조금 커서 40mm를 넘으며 베짱이는 35mm 내외다.
 
▲ 날베짱이. 여칫과 곤충으로서 비행 솜씨가 뛰어나다.
ⓒ 이상헌
여치류는 암컷을 불러들여 짝짓기를 하기 위해 양쪽 날개를 비벼서 운치있는 소리를 낸다. 가장 크고 우렁차게 우는 수컷이 교미에 성공할 확률이 높으므로 수놈끼리는 경쟁이 심하다. 하워드 에번스(Howard E. Evans)가 쓴 <곤충의 행성>에는 여치가 이웃들과 합창을 하는 얘기가 나온다.

두 마리가 서로 가까이 붙어서 울때면 각각 찌르륵 거리는 소리를 절반으로 줄여서 번갈아가며 운다고 적고 있다. 더우기 타자기를 두드리는 속도에 맞춰서 4~6음절 사이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고 한다. 한 장소에 가둬두면 서로를 잡아먹는 여치가 이런 떼창을 할 수 있다니 알면 알수록 별스러운 풀벌레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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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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