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변호사 자격 박탈한 재판부의 '충격적인' 판결문
[장순심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리디아 포에트의 법>은 여성의 투표권도 없던 시절, 법정에 선 한 여성의 변호사 분투기를 다루고 있다.
리디아 포에트(마틸다 드 안젤리스, Matklda De Angelis)는 토리노 대학교 법학부에서 수학하고 법학 시험에 합격, 졸업 후 토리노 변호인단의 심사를 거쳐 변호사 자격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모든 행보 앞에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 자격에 의문을 품는 무수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변호사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들고 다녀야 했다.
사건을 수임하는 것도 어렵고 변론을 위해 의뢰인을 만나고 사건 현장을 누비는 것도 그녀에겐 어려운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토리노 법원은 그녀의 변호사 협회 가입을 위법으로 판결하고 법정에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리디아 포에트의 법> 관련 이미지. |
ⓒ 넷플릭스 |
드라마 속 리디아 포에트(1855-1949)는 실존 인물로 1881년 토리노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그 후 2년 동안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정실습을 하고 재판부 어시스트를 했다. 이후 토리노 변호인단의 이론 및 실기 시험을 통과했으며 50표 중 45표를 얻어 변호사 명부에 등재됐다.
1919년이 돼서야 이탈리아는 여성에게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리디아 포에트의 나이 65세가 되던 1920년, 드디어 그녀는 변호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됐다.
본 법정이 명확히 판단하는 바 여성이 변호사협회란 단체에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여성이 법정에서 온순한 성별이 지켜야 할 도를 넘어 논쟁하는 것은 실로 볼썽스럽고 우려스러운 광경이다. 법관의 기운이 여성의 유행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이하고 별난 의상 아래 가려진다면 선고의 신뢰도가 흔들릴 위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성에게 타고난 성정에 적합하지 않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여성에게 보다 적합한 다른 소임, 특히 가정 내의 역할 수행을 방해하는 임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당대 주류였던 남성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반영된 판결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한심하다. 여성이 법정에서 논쟁하는 건 실로 볼썽스럽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선고의 신뢰도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말하며, 여성에게는 가정 내의 역할 수행을 방해하는 임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변호사 자격 박탈 이후 리디아는 변호사인 오빠 엔리코(피에르 루이지 파시)의 대리인으로 활약한다. 드라마는 남성적 권위에 대항하는 그녀의 외로운 투쟁 서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며 흥미를 유발한다.
하지만 법정은 그녀의 활약을 그냥 두지 않는다. 오빠를 방패막 삼아 법정에 드나들자 검사는 보다 강력하게 경고한다.
"포에트양, 당신은 앞으로 그 어떤 자격으로도 법정에 설 수 없을 것이오."
오빠인 엔리코에게도 경고한다.
"여자가 자기 일을 몰래 대신하는 걸 방관하는 남자를 내가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굳이 말 안 하겠소. 집에서야 어떤 굴욕을 당하든 당신 자유지만 사법기관의 본분을 지키는 것에 관한 문제라면 당신의 자유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어야 마땅하오. 당신은 여성을 대리인으로 써서 법원의 판결을 회피해 남성이 전유해야 할 장소에 여성이 출입할 수 있게 했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행위가 허용되지 않을 것이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리디아 포에트의 법> 관련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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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전유해야 할 장소와 직업을 두고 벌이는 싸움에서 리디아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고 동생의 활약을 돕는 오빠 엔리코나, 여성의 제한된 역할이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차츰 리디아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을 긍정하며 응원하는 엔리코의 아내 테레사도 있다.
리디아의 눈빛을 읽고 그녀의 억제되지 않은 분노와 절망, 공허함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신문기자 야코포(에두아르도 스카르페타)와 미국에서라면 여자도 남자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며 함께 미국으로 떠나자고 권유하는 남자친구 안드레아(다리오 아이타)까지 모두 리디아를 응원한다.
그리고 리디아는 변호사 지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뒤집기 위해 상고를 준비한다. 그녀의 변론이 인정되는 순간, 그녀는 행복해한다. 그녀가 상고장에 쓴 완곡하면서도 정확한 지적이 꽤 인상적이다.
"만일 정의가 남성에게 당연히 부여하는 것을 여성에게는 거부한다면 과연 그걸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가 떠오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하다. 편견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갔다는 점에서 <리디아 포에트의 법> 속 리디아와 닮았다.
리디아 포에트로부터 140년,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모든 것이 가능한 '상식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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