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대생이 도시 관광 대신 찾아간 곳
한국의 유기농 농장에서 농사 체험하며 일손 돕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듣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조계환 기자]
나는 울주군에서 유기농 채소 꾸러미 농사를 짓는 농부다. 올해로 2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중이다. 하루 종일 밭에서 흙 만지고 작물들 돌보고 하는 일상은 다른 농장과 다를 바 없지만, 조금 다른 풍경이 있다면 우리 부부 외에 늘 외국인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골 농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것쯤이야 요즘 흔한 풍경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외국인들은 돈을 받고 일하지 않는다. 숙식만 제공해주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땀 흘리며 농사 일을 돕는다.
세계여행자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에 여행을 온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기 때문이다.이들은 도시나 관광지를 다니는 대신, 가장 가까운 마트가 차로 30분 걸릴 만큼 시골인 우리 농장에 한 달 이상 머물며 농사일을 돕는다.
주 5일 근무에 하루 다섯 시간만 일하는 조건이긴 하지만, 하루 다섯 시간 농사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차로 30분을 나가야 겨우 작은 마트 하나가 나올 만큼 시골인 이곳에 외국인 봉사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
ⓒ 조계환 |
10년째 외국인 봉사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양한 친구들이 찾아오다 보니 새로운 것도 많이 알게 되고, 특히 밖에서 보는 한국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 들어 더 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다.
외국인 봉사자들과 일하면서 우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특히 한국인의 삶이 다른 나라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듣게 되어 흥미로웠다. 보통 한 달 정도 함께 지내는데, 속내를 털어놓고 친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외국인이 이런 산골에까지 찾아온다고? 도대체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오는데? 시골이 뭐가 좋다고?"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우리 농장에 오는 한국인 손님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보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우리 농장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봉사자에게 직접 물어봤다.
▲ 알렉시아는 프랑스 Grenoble 대학에서 공부하는 의대생이다. |
ⓒ 조계환 |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에서 온 알렉시아(Alexia)라고 합니다. Grenoble Alpes 대학에서 공부하는 5년차 의대생이고, 의학과 생물의학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도 일하고 있고요. 6년차 대학 생활을 앞두고 여행도 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싶어 1년 동안 휴학 중이에요.
한국어는 7개월 전부터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알렉시아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할 만큼 꽤 한국어를 말할 수 있다). 한글은 쉽게 뗐는데, 한국어 문법은 유럽 언어와 많이 다르고 존댓말이 있어서 배우면서 스트레스 좀 받았어요.
한국어는 존댓말을 조금만 잘못 써도 굉장히 무례한 말이 될 수 있잖아요. 현지인들에게 무례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존댓말을 올바르게 배우려고 굉장히 노력했죠. 그래도 한국말은 참 아름답게 들려서 배우는 게 좋았어요.
왜 한국을 선택했냐고요? 요즘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좋잖아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래도 제가 한국에 여행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인데?"였어요.
일본 요리라든지 망가 등 일본 문화는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문화니까요. 그에 비해 한국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만큼 더 새로운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저는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고,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편도 아니에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드라마 몇 편을 본 게 다죠. 케이팝은 그래도 많이 들었어요. 요즘 워낙 인기잖아요.
아,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을 하잖아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2년차 때 해부학 실습을 하게 되는데, 선배들이 들어가서 가르쳐주고 도와주곤 해요.
저는 해부학 실습을 할 때 케이팝을 틀어놓곤 해요. 물론 시신을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한 신입생들은 중간에 기절하거나 쓰러져서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밝은 케이팝 음악을 틀어놓고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면 한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는 한국이 가진 이중적인 면에 흥미를 느꼈어요. 첨단기술이 굉장히 발달한 측면이 있고, 동시에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 점을 직접 가서 보고 탐험해보고 싶었어요. 한국 음식도 궁금했고요.
속초, 설악산, 대구, 안동, 경주, 부산 등을 여행하고 이곳 농장에 왔어요. 사실 농장에 머물기로 한 일정은 한국에 오기 8개월 전에 예약했을 만큼 일찌감치 결심한 일이었죠.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떻게 사는지 진짜 모습을 보고 느끼고 싶었어요. 또 뭔가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식물을 심고 흙을 만지고 싶었어요. 밭에서 바로 수확해 먹는 음식의 맛도 궁금했고요. 한국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래서 환경적인 농사를 짓는 유기농 농장에 가고 싶었어요.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 위기는 프랑스에서도 심각한 문제인데요. 농부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농업은 그야말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문제이고, 음식이 없으면 우리는 살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농업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복잡했던 생각이 단순해지고, 일하는 손끝에만 정신을 집중하면서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어요.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요. 바로 채취해서 먹는 산나물이나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한국 요리도 맛있었어요. 먹으면 정말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한 번은 마을 사람들과 같이 못자리 내는 일을 했는데, 온 마을 사람이 모여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일하는 모습에서 예전 한국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았어요.
▲ 알렉시아와 고추를 같이 심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
ⓒ 조계환 |
이곳 농장의 소개로 불교수행공동체인 정토회 분들과도 며칠 같이 농사일을 했는데, 정말 특별한 체험이었어요. 환경을 위해 유기농사를 짓고 채식을 하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수행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주변 사람이나 사회, 환경을 생각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행복해지는 길에 대해 꾸밈없이 자기 경험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요. 승객들이 오가는 구조와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더라고요. 화장실도 아주 크고 깨끗했고요.
그리고 한국의 자연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제가 사는 곳은 알프스 산 바로 아래인데요, 그곳은 고지대라 나무 종류도 별로 다양하지 않고, 조금만 올라가도 바위만 나오거든요. 한국의 산들은 풍요로운 녹색이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전공이 의학이다 보니 한국 의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의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한의사 분의 침놓는 손놀림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프랑스에는 이런 대체의학이 별로 없어요. 한의학의 세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참, 길거리에 보이는 한국 커플들도 재미있어요. 일단 서로 엄청나게 다정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남자친구 노릇을 하려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계속 여자친구 사진 찍어줘야 되고, 짐도 들어주고, 춥다고 하면 옷도 벗어줘야 되고, 심지어 여자친구에게 피자를 먹여주는 남자도 봤어요!
▲ 벚꽃이 아름답게 피던 날 프랑스,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일했다. 사진 가운데가 알렉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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