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KBS라디오 점령했다'는 박대출, 질문 받자 "기자들 예의가 없다"
[곽우신, 남소연 기자]
▲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예의가 없다." -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
국민의힘이 "대한민국 여론 왜곡의 진원지가 공영방송이라는 현실이 확인됐다"라며 공영 방송 라디오 출연 패널의 편향성을 연일 문제 삼고 나섰다. 공영 방송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를 잡는 패널들이 좌편향이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취지이다. 이같이 주장하던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그러나 기자의 관련한 질문에는 "예의가 없다"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박대출 의장은 2일 오전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어제 KBS 라디오 패널의 편파성을 지적했다"라면서 "대한민국 여론 왜곡의 진원지가 공영방송이라는 현실이 확인됐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널리즘의 제1원칙은 사실과 논평의 구분"이라며 "공영방송이, 이 원칙을 어기고 대통령의 방미성과를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로 뒤범벅으로 만들어버렸다"라고 지적했다.
박대출, 전날 회의서도 "몇몇 좌파 매체가 KBS라디오 가지고 논다고 해도 과언 아냐"
▲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24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 환송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
ⓒ 연합뉴스 |
박대출 정책위 의장은 전날(1일)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의장은 최고위원회 회의 공개발언에서 "좌파 매체에게 점령당한 KBS1 라디오의 실상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KBS 내부에서 나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거는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와 KBS방송인연합회가 만들어 배포한, '대통령 방미 기간 KBS 라디오출연진 현황' 분류표가 담긴 보도자료였다. 박 의장은 "5개 시사 프로그램에서 좌파 또는 야당 친화적 견해를 주로 피력하는 출연자가 80명인데 비해, 우파 혹은 여당 정부 친화적 견해를 피력하는 출연자는 11명에 불과했다"라고 해당 자료를 인용했다.
이어 "특히 <최영일의 시사본부>와 <주진우 라이브>에서 5일간 42명이 나와서 좌파 또는 야당 친화적 견해를 제시하는 동안, 우파 혹은 여당 정부 친화적 견해 출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라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도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해당 표를 보면, 윤 대통령 방미 기간에도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이 몇몇 방송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나와 있다.
박대출 의장은 "몇몇 좌파 매체들이 KBS1 라디오를 가지고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아침 출근길에는 전 뉴스타파 기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오마이뉴스> 출신이 나와서 뉴스를 전한다. 점심 무렵에는 <오마이뉴스> <국민TV> 출신들이 출연한다"라고 꼬집었다. "지금 KBS 라디오는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가 없으면 방송을 못 하는 지경으로 드러나고 있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공영방송 KBS는 이렇게 대립되는 견해를 균형 있게 보도할 책무가 있다"라며 "대통령 방미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일수록 더 그렇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KBS는 정치적 이슈에 있어서 좌우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보수 정권 아래서는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편파방송을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에 안 들면 '좌파 딱지' 붙여놓은 것"
하지만 박대출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 의장이 발언 근거로 삼은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와 KBS방송인연합회의 패널 분류부터가 다소 자의적인 탓이다. 이들은 자신들 기준에 따라 '보수우파'라고 생각되면 빨간색, '진보좌파' 쪽으로 보이면 파란색, 중립적이라 보이는 패널은 검은색으로 표기했다. 여기엔 보수정당 출신 시사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물론, 현 국민의힘 소속인 이언주 전 국회의원도 '중립적' 인사로 분류되어 있다. <오마이뉴스>를 포함해 <미디어오늘> <시사IN> <한겨레> 같은 매체 소속 기자를 '진보좌파' '야당 친화적 견해'로 분류한 반면, <경향신문>뿐 아니라 <문화일보> 소속 기자는 '중립적'으로 분류했다.
해당 분류표에서 '진보좌파'로 구분된 김준일 <뉴스톱> 수석에디터는 2일 오전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대 교수는 파란색, 보수언론 출신 문일현 전 중앙일보 북경특파원도 파란색"이라며 "도대체 기준을 종잡을 수 없다. 본인들 마음에 안 들면 좌파 딱지를 붙여놓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김준일 에디터는 과거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 '국민 면접관'과 대변인 선발 오디션이었던 '나는 국대다'에서 심사위원도 맡은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해당 패널들이 외교 순방의 성과를 폄훼했다는 게 문제제기의 요지인데, 이 역시 다소 어폐가 있다. 진보좌파로 분류된 패널 중 상당수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외교 순방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너별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발언한 인물들인데, 의견이나 해석 없이 단순히 뉴스 브리핑만 한 경우에도 해당 기자의 소속 매체 성향이 '진보좌파'라서 문제라는 투이다.
김준일 에디터 역시 "(본인의) 지난 4월 26일 주제는 '수단 교민 구출로 본 한국 정부의 교민 구출 일대기'였다. 28명 교민을 안전하게 구출한 정부를 칭찬하는 내용"이라며 "그런데 김준일에겐 파란색 좌파 딱지가, 박대기 기자에겐 검은색 중립 딱지가 붙어 있다. 나말고도 좌파딱지가 붙은 상당수는 한미정상회담과 관련이 없는 이슈를 다뤘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정권에서는 편파방송을 한 적이 없다'라는 박 의장의 주장 역시, 과거 보수정권에서 시사 라디오 진행자가 교체되며 외압 논란을 겪었던 사건들을 고려해보면 잘 들어맞지 않는다.
관련 질문하자 "예의 없다" 답변만... 기자 소속 묻고는 반말로 "빼, 그거 빼라고"
한편, 이처럼 공식회의석상에서 공개발언을 한 박대출 정책위 의장은 막상 기자의 취재는 거부했다. 박 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후 <오마이뉴스>로부터 해당 발언의 배경, 분류표의 부적절성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그는 기자가 어디 소속인지 되물은 뒤 답변을 거부했다. 휴대전화로 질의응답을 녹취하는 기자에게 그는 "빼" "그거 빼라고"라며 낮춤말로 녹음을 끌 것을 요구했다.
기자가 "녹음을 끄면 답변을 해주실 건가"라고 물었으나, 그는 정책위 의장실로 들어가면서 "기자들 그렇게 예의 없이 하면 안 돼"라고만 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이후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 도중 자리를 떠나는 박대출 의장에게 재차 질문했으나, 그는 "취재에 대한 기본 예의부터 배우고 오시라"라며 역시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정책위 의장실에서는 "공식적으로 취재 요청을 해주면 검토해보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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