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랑했지만 외면 받은 소설가, 30년 만에 부활 움직임

남해시대 한중봉 2023. 5. 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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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도서관 정을병 인문학 포럼 열려... 지역문인들 참여 성황

[남해시대 한중봉]

ⓒ 남해시대
경남 남해 이동면 금평마을 출신 소설가 정을병은 다작 작가와 고발문학의 기수로 알려진 문인이다. 기자가 살펴본 몇몇 그의 소설 표지 뒷면의 작가 소개에는 언제나 `경남 남해 출생(신)`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편 소설 <가면 올빼미>를 쓴 공애린 작가는 "정을병 작가는 서울의 한 집에서 40년 넘게 살았다. 왜 이사를 안 가느냐고 하니 마당에 심어둔 고향에서 옮겨심은 황매화 나무 때문이라고 했다"며 정을병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김용엽 시인도 이 황매화 이야기를 페이스북을 통해 전하고 있다. 정을병 작가와 동향인 백시종 작가도 "고향이라면, 고향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소리를 들어도 앞장섰던 분"이라 회고했다.

이렇듯 고향 사랑이 유별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정을병은 30년 가까이 고향으로부터 외면받은 유배객이다. 아니 스스로 유배를 자처했다는 말이 맞다.

정을병 작가는 지난 1993년 중앙일보 5월호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남해를 교두보로 삼아 활동했으며 다수 부녀자를 겁탈한 기록이 있다. 남해군민 중에는 이와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후손도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게재해 고향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고향 사람들의 분노는 오래갔다. 소설가 정을병은 훗날 자신의 기고문에 대해 후회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화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의 남해군민들의 사과 요구에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일관했다고 한다.

지난 2009년 2월 정을병 선생은 3년 동안 간암으로 투병하다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한국 고발문학의 대가로 평가받고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고향으로부터 외면받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문인들이 2015년 `정을병 문학비`를 남해에 세우려 했지만, 군민들의 반발을 우려한 행정당국으로부터 외면받았다고 한다. 1993년의 앙금이 20년 넘게 계속된 것이다.

30년 만에 '다시 정을병'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 포럼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임헌영 문학평론가, 박상률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백시종 소설가, 김성철 남해문학회장,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서영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장.
ⓒ 남해시대
이후 2023년 4월 남해가 낳은 소설가 정을병을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을병을 다시 부른 것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던 남해사람들과 류지앵 남해도서관장이었다. 류 관장은 지난해 남해도서관 지역인문학센터 초청 강연을 온 삼동면 출신 수필가 박소현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로부터 '남해가 낳은 소설가 정을병'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인문학 포럼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를 생각하게 됐다. 

이후 류 관장은 이 구상을 남해도서관 행사에 적극 참여해 오고 있는 정현태 시인과 공유했고 평소 문학계와도 적잖은 인연을 맺어 온 정현태 시인이 임헌영 문학평론가와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인문학 포럼에 살을 붙였다.

여기에 2015년 정을병 문학비 건립을 추진했던 백시종 작가와 김성철 회장을 비롯한 남해문학회 사람들이 힘을 보태고 나섰다. 남해군에서도 이날 포럼에 참가한 한국소설가협회와 한국산문협회 회원들에게 노도 문학기행 경비를 지원하며 마음을 보탰다.
 
ⓒ 남해시대
지난 21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남해도서관 인문학 포럼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의 시작은 동서대 교수인 이숙례 시인과 시 낭송인 김향자씨의 '남해 노도, 그의 흔적을 찾아서'란 주제의 시 낭송으로 시작됐다.

두 낭송가는 시인 고두현의 '남해 가는 길', 서포 김만중의 '사친시', '봄풀을 보면서' , '유허지 중', '모춘', 정현태 시인의 '나의 유배'를 애절하게 읊었다. 삼동 내동천 출신인 이숙례 시인과 김향자 씨가 낭송한 시들에는 고향과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배객의 아픔과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고향으로 오고 싶으나 오지 못하는 정을병의 아픔과 절망과도  맞닿아 있었다.

포럼 인사말에 나선 이춘호 남해교육지원청 교육과장은 "오늘 이 자리가 정을병 작가의 참모습을 조명하고 남해군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조 시인인 이처기 남해문학회 고문은 축사를 통해 "한국자생란보존회장을 지내기도 한 정을병 선생은 풍란의 향기로 가득찬 남해를 만들기 위해 애쓴 애향인이자 당당한 문체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큰 작가인 만큼 오늘 이 자리가 그의 고향사랑과 문학을 전파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인문학 포럼을 주최한 남해도서관 류지앵 관장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란 백범 김 구 선생의 글귀를 내세우며 "정을병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남해 문화의 힘이 계승되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인문학 포럼의 의미를 전했다.

이날 포럼은 남해 문학인들과 한국소설가협회와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리에 끝났다. 1시 30분에 시작된 포럼은 오후 5시 30분께 마무리됐다.

남해가 낳은 소설가 정을병

김성달 소설가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은 크게 소설가 정을병과 남해사람 정을병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가 '소설가 정을병을 말한다'라는 주제발표를 했고, 박상률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이에 대한 토론을 했다. 이어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정을병 문학의 매력' 주제발표를 했고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서영 수필가가 토론을 했다.

당초 이 토론은 오봉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맡았으나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아 박 이사장이 대신했다. 마지막으로 백시종 소설가와 김성철 남해문학회 회장이 '정을병의 삶과 문학'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정을병의 삶과 문학'을 조명했다. 

다음 기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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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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