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뜻미지근한 반도체 합의…구체적 해법 서둘러야
진일보된 협력 끌어내려면 다양한 채널로 우리 입장 적극 어필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 방미 일정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은 반도체법을 둘러싼 불확실성 해소였다. 독소조항 등 반도체 리스크가 해소해야만 기업들도 마음놓고 투자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과 이어진 장관급 회의 모두 "긴밀히 협의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에만 그쳤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실무 협상에서 진전된 안이 나오지 않는 한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다 개선된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 때까지는 상당한 속앓이가 예상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가진 공동성명과 이어진 27일(현지시간) 장관 공동선언문에는 반도체법(CHIPS Act)과 관련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장관 공동선언문은 좀 더 구체적이지만 "기업 투자 불확실성과 경영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점에는 동일하다. 국내 반도체업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보조금 독소조항 완화, 중국 반도체 장비 반입 유예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패권을 자국 영토로 끌어들이고자하는 미 정부의 의도 아래 여러차례 과도한 요구에 시달려왔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대신 수율, 고정비 등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요구하며 국내 업체들을 곤혹에 빠뜨렸다.
여기에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조항'을 통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반도체 생산장비는 중국에 반입시키지 않도록 하는 추가 규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당혹스럽게 했다.
미·중 갈등에 낀 한국 업체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건 기대는 컸다. 우리 정부가 반도체법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대답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보조금을 무기로 내건 독소조항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등 구체적이고 실리적인 성과가 요구됐었다.
반도체법 우려, 원칙적 합의 그쳐…산관협력 채널로 우리 입장 적극 어필해야
그러나 5박 7일 방미 기간 성과가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불확실성도 그대로 이어지게 됐다. 향후 세부 실무 협의에서 진일보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미국에는 영업기밀 공개 리스크를, 중국에는 투자 제한에 따른 반도체 장악력 축소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정상 간 합의가 있었고, 이창양 산업부 장관과 러몬드 미 상무장관이 관련 세부사항을 논의했기에 경제안보 성과가 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정상회의의 실익을 거양하기 위해 앞으로 한미 당국간 논의와 협력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의 이해관계가 크게 걸린 사안이므로 국내에서 산관협력 채널을 조직하고, 미국과 정기적인 논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반도체법 실무 협의에서 당장 10월 종료 예정인 장비 반입 규제 완화를 우선적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장비 유예가 우리에게 제일 큰 영향을 줄 사안"이라며 "중국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뿐 아니라 한국 장비 업체들의 대중국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보다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유예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향후 협상에서 잘 나와야 할 부분"이라며 "보조금 문제도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지급 조건을 축소하거나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반도체법은 실무협상에서 중국 내 반입 1년 유예를 연장해주거나, 미국 내 공장 신설 시 기업 기밀 제출 등 독소조항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기업들의 경우, 반도체 생산·연구시설까지 공개해야 하는 기술 안보 리스크 뿐 아니라 10년간 중국 반도체 투자 제한 등 '이중고'가 예상되는 만큼 대미 '투자 보류' 등 강경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가 수요 위축으로 유례없는 한파를 겪고 있는데다 인플레이션으로 투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라며 "민간기업도 이 같은 애로를 적극적으로 어필해 받아낼 것은 받아낼 수 있도록 협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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