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목욕탕이었던 곳, 이제는 마음 씻고 가세요
[김영동 기자]
▲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강수희 작가 |
ⓒ 강수희 |
제주에 사는 강수희 작가는 자신 앞에 사고처럼 나타난 우울의 늪을 파란 바다로 바꾸고 그 안에 붓을 담가 파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주, 강 작가의 개인전 <Sweet, Blue Feeling>이 열리고 있는 서귀포 복합문화공간 <라바르>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 강수희 개인전 <Sweet, Blue Feeling>이 열리고 있는 라바르 공간 |
ⓒ 라바르 |
그렇게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려낸 제주에서의 작품에 강 작가의 분신 같은 파란 사람이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파란 사람은 때론 파란 말이 되기도 하고, 제주에 바람처럼 흔한 길고양이가 되기도 하다가, 제주에 돌처럼 많은 까마귀로도 등장한다.
▲ 강수희 작품 <1월의 새벽>(2022) |
ⓒ 강수희 |
강 작가는 2020년에 제주로 이주해 파란 물결이 가득한 판포포구 바로 옆 작은 골방에 작업 공간을 마련하여 생활하고 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의 일상은 단순하다. 그림을 그리다가 빵을 굽거나 캔버스 같은 몸을 뒤뚱거리는 고양이를 따라 동네를 산책한다. 단순한 생활은 '나'를 찾는 시간이 되고 있다.
마들렌은 반드시 반죽을 냉장고에 삼십분 보관하였다가 오븐으로 구워야 한다. 냉장고 반죽을 보관하는 과정을 '휴지'라 한다. 휴지 과정을 거쳐야만 가루와 버터가 잘 섞이고 구웠을 때 '마들렌의 배꼽'이 잘 나온다. 마들렌을 자주 굽게 된 이유가 몇 개 있다. 재료가 단순해서. 빵인데 조개모양인 게 웃겨서. '휴지', '배꼽'이라는 말이 좋아서. 반죽을 휴지시키며 불현듯 생각했다. 나에게도 휴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나와 나의 휴전 선언이었다. 제주도에서도 시골마을 낡은 집: 골방은 나를 휴지하기 좋은 장소였다. - 강수희 작가노트 <골방 : 숨고 싶은 건 아닌데>에서 발췌
강 작가는 자신이 헤엄치고 있는 현재의 우울이 혼자만의 발버둥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우울 안에 위치하는 건 아닌가라는 탐문으로 최근의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요즘 그리는 파란 사람들은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르게 그렸어요. 저만의 파란 사람이 아니라 모두의 파란 사람이죠. 모두가 자신의 파란 사람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제가 그랬듯이 위트와 시니컬로 우울과 친구가 될 수도 있길 바라면서요."
세상에 만연한 우울로 아파하는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강 작가의 작업은 제주 예술계에서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이 제주의 젊은 화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개최하고 있는 <2022 제주 청년 작가>에 선정되어 제주 문예회관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
ⓒ 라바르 |
라바르(Lavare)는 '씻다, 정화하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인데, '바르'는 제주어로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 이중섭 거리 바로 옆, 새섬과 문섬이 눈앞에 보이는 서귀포 항구 근처 목욕탕이던 건물에게 어울리는 작명이다. 현재 라바르는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며 서귀포의 새로운 문화 중추로 발돋움하고 있다.
강 작가는 치유를 의미하는 공간인 라바르에서 본인의 치유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을 전시하게 되어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담을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해가고 싶다는 그의 앞에 파란 무지개가 피어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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