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이 두려운가요? 이제라도 공부하세요

허형식 2023. 5. 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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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영옥 지음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을 읽고

[허형식 기자]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노화의 가속페달을 이제 막 밟기 시작한 필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이다. 누가 감히 늙어감을 사랑할까? 노화는 그저 회피의 대상 아닌가? 심너울 작가의 단편소설 제목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가, 아직 늙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나이듦'의 이미지 아닐까.

추하게 늙는다는 표현이 너무 과하긴 해도 늙어가면서 잃게 되는 것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체력, 총기(聰記), 머리숱, 재력. 급기야 그 모든 걸 다 잃고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어 요양원으로 보내지기도 하는 게 우리 마음속에 스며든 노년에 대한 이미지 아닐까? 그렇다. 먼 옛날, 고려장 당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적어도 이 책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읽게 되기 전까지는.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표지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공동대표인 김영옥 저자가 노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열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현재형 '늙은이'가 아니라, 늙어가는 사람의 곁에서 그들과 교류하며, 돌보며, 관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야기의 처음을 장식한 두물머리 김현숙 농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5년 가까이 이주 노동자 운동을 하다가 두물머리의 '데레사 농민'이 된 그에게는, 양승임 할머니와 이홍표 할머니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양승임 할머니는 김현숙 농부가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밭을 빌려줬을 뿐만 아니라, 초보 농부의 유기농 작물에 행여나 해를 끼칠까 봐 뜨거운 여름날 자신의 비닐하우스 문을 꼭꼭 닫고 그 안에서 제초제를 뿌릴 정도로 현숙씨를 지지했다.

홍표 할머니는 귀농한 청년들이 방을 알아보는 도움부터, 농사지을 때 무엇을 언제 심어야 하는지, 언제 갈무리를 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줘 청년들로부터 '장군'으로 불린다.
 
김현숙 농부도 이제 60대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보다 20년 넘게 인생을 더 산 어르신들과 자신보다 30여 년 어린 청년들 모두와 우정을 쌓으며 다양한 연령대가 서로 호혜적으로 연대하는 삶의 예 하나를 만들고 있다. 꽤 괜찮은 예다. - 39p
 
문득 궁금해진다. 삼대가 어우러져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드라마 '전원일기'가 막을 내리면서, 우리 비노년들의 나라에서 '늙은이'들은 삭제된 것인가. 탑골공원에, 불광천 다리 밑에, 동네 쓰레기 분리수거장 옆에 버젓이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마법은 어떻게 설명할까?

김현숙 농부 외에 서울 성북구 고령 친화 맞춤형 주거관리 서비스 사업단의 김진구, 말기 중증 치매 환자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해온 이은주, 노년의 이야기를 소재로 문화예술 작업을 이어 나가는 '이야기청 프로젝트'의 육끼, 씨앗 지킴이 할머니들과 교류하며 제철 밥상을 누리는 환경운동연구가 김신효정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래도 어디엔가에 존재한다는 희망이 솟는다.

저자는 "지금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30대 청년 김진구 단장의 말을 인용하며 '노인들의 삶에 다른 연령대의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가 구체적으로 될수록 노인들의 삶의 질이 청년인 자신들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 삶의 질과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 모두 알게 되기 때문이다. 2025년이면 총인구의 20퍼센트가 고령자가 될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실용적인 세대 접근이 있을 수 있을까?

한편, 최최최중증 장애인이자 장애여성공감의 공동대표인 조미경,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어쓰, 홈리스행동 활동가 이동현과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 루인, 노년 생애구술사 작가이자 소설가 최현숙과의 인터뷰는 '테두리를 넓히는 사람들'이라는 2부 제목처럼 각종 불평등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애인? 인권운동가? 홈리스행동 활동가? 이들과 '늙어감'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다른 몸들과의 공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골형성부전증으로 골절의 상시적 위험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1975년생 조미경의 파란만장한 삶은 왜 이들이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지 알게 한다.

옹알이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뼈가 부러지는 삶을 사는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지는 이제 왼쪽 팔뿐이다. 통상 나이듦의 상징이라고 알려진 거의 모든 것-휠체어 사용, 틀니 착용, 보청기 장착, 돋보기 사용-을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그의 신체 나이를 동료들은 80대쯤으로 가늠한다. 나이가 들수록 추가되는 '어떤 손상'이 과연 장애의 탓인지, 노화의 탓인지 헷갈릴 정도라 하니, 이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는 노인들을 향한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조미경은 나이가 들수록 심화하는 장애를 '진화'라고 말한다.
 
장애가 심화하면 솔직히 삶이 좀 고달파지는 건 있어요. 삶이 고달파지니까 그것 때문에 우울감이 들 때가 있지만 이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 새로운 경험이 열리기도 해요. 새로운 앎이 생기고 관점이 넓어지고……. 그런 맥락에서 장애 심화가 퇴행만은 아닌 나의 삶이 또 다르게 변화하는, 진화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나이듦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43p
 
책을 덮은 후 나는 나의 나이듦을 돌아본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내 아버지, 어머니를 제외한 그 어떤 노년과의 만남을 일부러 만들어 본 적 없었고, 당연히 관계 맺기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늙음의 과정, 노년의 실생활, 노년의 몸, 그 몸이 매개하는 느낌이나 생각 등'을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상투적이고 표피적인 '노인 이미지'로만 그들을 대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늙어가기에도 선행 학습이 필요'하고 '선행 학습에는 노년과의 만남과 관계 맺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김영옥 저자의 말처럼 이제 나의 인식도 '진화'를 해야 한다. 그럼, 나도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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