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게 느껴지는 일상을 보내는 내 또래 중년들에게

이지애 2023. 5.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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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

[이지애 기자]

 책 <스토너>
ⓒ RHK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하루는 또 어찌 보내나...'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밋밋한 오늘을 사는 일이 문득 무상해서다. 50을 앞두고부터 종종 이럴 때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슬픔과 고독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낸 한 남자 이야기를 소개받았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이다. 궁금했다. 지난한 삶을 견디는 힘이 무엇인지. 덧없는 일상을 깨뜨릴 힌트도 혹시 찾을까 싶은 일말의 기대와 함께.

작가가 스토너의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말

농부의 아들인 스토너는 농학을 전공하러 대학에 왔다가 뜻하지 않게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중세 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그의 재능과 성실성을 알아본 스승의 권유로 궁핍한 환경에서도 억척같이 학업을 마치고 안정적인 교수의 길을 가게 된다. 첫눈에 반한 은행가의 딸과 결혼까지 하며 이제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리려나 싶은데, 아니다. 얼마 못 가 실패한 결혼이라는 자각이 들며 후회가 쌓인다.

그나마 저술과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는 강의로 힘을 내어 보지만, 풋내기 강사도 마다할 기초과목만 배정하는 동료 학과장 때문에 일도 괴로워진다. 유일하게 친밀감을 나누던 어린 딸마저 부인의 강박적 집착으로 교감할 수 없게 되자 스토너는 40대 초반에 고독의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평생을 큰 사회적 성취나 별다른 보람 없이 그저 우직하게 연구하며 여생을 보낸다.

평생 요령 피울 줄 모르고 고지식해 누군가에겐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스토너의 일생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독자로서 스토너의 생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고독 속에서도 일관되게 그의 삶을 견인했던 힘은 열정으로 보인다. 그 대상은 중세 문학이었다가, 결혼할 여인과 여자 동료였다가 그리고 말년까지 연구와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지난한 삶을 버티는 힘은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과연 열정은 생에 활력을, 때론 희열과 경이마저 가져다준다. 하지만 헌신한 만큼 성취나 성과로 되돌려 받지 못할 때에는 좌절과 공허에 빠지기도 한다. 스토너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열정으로 채웠던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자문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학자적 명망도, 사랑도, 학문적 업적도 빛을 보지 못한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실패한 인생으로 간주되리라 자평하며 같은 질문을 씁쓸하게 되뇐다.

작가의 메시지는 책의 가장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확연히 드러난다. 스토너는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사실 자신이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왔는지 문득 깨닫게 된다. 농학이 아닌 심장을 뛰게 하는 영문학을 용기 있게 선택했고, 사람들의 비난과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징병을 유예하여 자신이 원하는 학업을 계속했다. 승진에 약삭빠르게 연연하지 않았으며 그저 꾸준히 연구하여 저서를 출간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그는 오직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하면 자신으로 살 수 있는지 평생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사실 스토너의 이런 태도는 고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구나 쉽사리 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능과 흥미를 쫓는 일을 철없다 여기며 진실로 원하는 게 뭔지 탐색도, 시도도, 몰입도 못한 채 이익만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씁쓸한 세태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갈등의 고통과 고독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꿋꿋이 살아냈기에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여정이었음을 깨닫는 마지막 순간의 스토너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중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390쪽)

결국 작가가 <스토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세상의 기준을 너무 의식하지 말자고. 실패하면 어떠냐고, 평생 자기 자신으로서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열중하고 심취할 수 있다면 잠시 슬프고 고독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동감한다. 결과야 어떻든 쏟은 열정과 헌신의 가치는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 테니 말이다.

뒤늦은 성공을 거둔 아이러니한 책

1922년생인 작가 존 윌리엄스는 실제로 30년 동안 덴버 대학교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그 덕분인지 <스토너>에도 문학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작가가 직접 겪은 듯한 중년의 고독도 담담한 필치로 잘 묘사되어 있다. <스토너>는 특이하게 출간 후 50년이나 지나 인기를 얻었다. 출간 시에 묻히던 책이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판으로 다시 출간되며 뒤늦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니, 세상사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문득 삶이 공허하거나 고독하다 느끼는 중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공허와 고독의 이유가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점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지난한 일상에 묻혀 싹 틔우지 못한 열정을 응원하는 인생책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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