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때 먹는 음식으로 피로를 푸는 직장인들 [직장인의 재미]
퍽퍽한 직장 생활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재미 거리가 분명 있다. 퇴사가 열풍이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 재미 거리가 계속 회사를 다닐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여기에 18년 차 직장인의 재미를 전격 공개한다. <기자말>
[신재호 기자]
"오늘은 뭘 먹을까요?"
갈림길에서 우리 팀 막내 김 대리가 물었다. 식당가는 이대로 직진하냐 아니면 오른쪽으로 꺾느냐로 나뉘었다.
"그냥 아무거나 먹지 뭐."
늘상 그렇듯 박 차장님은 메뉴판에도 없는 '아무거나'를 골랐다. 하지만 그 메뉴가 무언지 안다는 듯 모두의 발걸음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우리가 다다른 곳은 상가 지하에 있는 백반집이었다.
▲ 야근 때 회사 근처에 자주 가는 식당. 다양한 반찬에 생선구이와 찌개도 있어서 한 끼 식사로 푸짐했다. |
ⓒ 신재호 |
"요즘 아이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한마디 하면 두 마디로 답하고, 말만 꺼내면 잔소리한다고 성질을 내니 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밤늦게까지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참나."
물꼬가 터졌다. 옆에서 너도나도 성토대회가 이어졌다. 사무실에서 가장 과묵한 최 과장도 입을 뗐다.
"그건 약과야. 우리 애는 며칠 전에 몇 마디 했다고 아예 밖으로 뛰쳐나가더라고. 어디를 갔다 왔는지 자정이 다 되도록 연락도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제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어."
그러던 중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허기진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 그제야 힘이 났다. 이제 대화는 스포츠를 넘어 정치 이야기로 흘렀다. 박 차장님은 뜨거운 찌개를 식히느라 연신 입김을 불어 넣으면서도 열을 올렸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김 대리도 옆에서 열심히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사무실 안에선 어두운 낯빛으로 모니터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음식점 안에선 이렇게나 활기차게 돌변하니 그 모습이 재밌었다. 먹고, 웃고, 떠들며 우리에게 주어진 1시간이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든든히 배를 채웠지만 복귀하는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3년 전 지금 부서로 전입 후 업무량이 많았다. 최소한 주 2~3회는 야근을 해야했다. 팀 제로 운영되기에 저녁 식사는 대부분 팀원이 함께 먹었다. 처음엔 구내식당도 있는데 굳이 먼 거리를 걸어 나가 외부 식당에서 먹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가까운 구내식당에서 먹고 돌아와 얼른 일 처리 하고 집에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 역시 구내식당보다는 외부식당을 선호하게 되었다. 정해진 메뉴를 벗어나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이유뿐 아니라 종일 좁은 사무실에 갇혀 있는데, 걸으며 바깥 공기도 쐬고 주변 풍경도 눈에 담았다.
특히 야근이라는 슬픈 상황에 보상이 필요했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기대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비록 한 끼 식사이지만 잠시 회사에서 벗어나 삶의 이야기도 나누고 때론 농담으로 피로를 씻어냈다.
최근엔 김 대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일명 '음식 세계 일주'였다. 야근 때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대신 차례대로 각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이게 뭐라고 모여서 회의도 했다. 떠올려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기본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외에 태국 음식, 베트남 쌀국수 등 다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식도락 여행을 떠났다. 하루는 자장면, 다음은 초밥, 파스타, 쌀국수 등등 백반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우리 중 유일한 MZ 세대인 김 대리가 가장 신이 났다. 은근히 백반이 물렸던 모양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두둑한 한 끼 식사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고단한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어 주었다.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이기도 했다.
▲ 야근 때 어느 식당을 갈지 매번 고민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고민 또한 직장의 재미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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