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때 먹는 음식으로 피로를 푸는 직장인들 [직장인의 재미]

신재호 2023. 5. 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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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보다는 외부식당을 선호하게 된 이유

퍽퍽한 직장 생활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재미 거리가 분명 있다. 퇴사가 열풍이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 재미 거리가 계속 회사를 다닐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여기에 18년 차 직장인의 재미를 전격 공개한다. <기자말>

[신재호 기자]

"오늘은 뭘 먹을까요?" 

갈림길에서 우리 팀 막내 김 대리가 물었다. 식당가는 이대로 직진하냐 아니면 오른쪽으로 꺾느냐로 나뉘었다.  

"그냥 아무거나 먹지 뭐." 

늘상 그렇듯 박 차장님은 메뉴판에도 없는 '아무거나'를 골랐다. 하지만 그 메뉴가 무언지 안다는 듯 모두의 발걸음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우리가 다다른 곳은 상가 지하에 있는 백반집이었다.

이곳은 요일별로 주메뉴가 바뀌었다. 기본 반찬에, 찌개와 생선구이 혹은 찌개와 돼지고기볶음의 조합이었다. 음식도 푸짐했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찌개와 생선구이를 맛볼 수 있었다. 백반이 아니면 주로 순대국, 추어탕, 자장면을 번갈아 먹었다.
   
 야근 때 회사 근처에 자주 가는 식당. 다양한 반찬에 생선구이와 찌개도 있어서 한 끼 식사로 푸짐했다.
ⓒ 신재호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제야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피로를 벗어낼 준비가 되었다. 무거운 회사 이야기는 잠시 내려놓고 가족, 스포츠, 주식, 정치 등등 개인적인 주제에 몰입했다. 김 과장은 요즘 한창 사춘기에 돌입한 첫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아이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한마디 하면 두 마디로 답하고, 말만 꺼내면 잔소리한다고 성질을 내니 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밤늦게까지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참나." 
 

물꼬가 터졌다. 옆에서 너도나도 성토대회가 이어졌다. 사무실에서 가장 과묵한 최 과장도 입을 뗐다.  
 
"그건 약과야. 우리 애는 며칠 전에 몇 마디 했다고 아예 밖으로 뛰쳐나가더라고. 어디를 갔다 왔는지 자정이 다 되도록 연락도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제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어." 

그러던 중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허기진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 그제야 힘이 났다. 이제 대화는 스포츠를 넘어 정치 이야기로 흘렀다. 박 차장님은 뜨거운 찌개를 식히느라 연신 입김을 불어 넣으면서도 열을 올렸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김 대리도 옆에서 열심히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사무실 안에선 어두운 낯빛으로 모니터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음식점 안에선 이렇게나 활기차게 돌변하니 그 모습이 재밌었다. 먹고, 웃고, 떠들며 우리에게 주어진 1시간이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든든히 배를 채웠지만 복귀하는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3년 전 지금 부서로 전입 후 업무량이 많았다. 최소한 주 2~3회는 야근을 해야했다. 팀 제로 운영되기에 저녁 식사는 대부분 팀원이 함께 먹었다. 처음엔 구내식당도 있는데 굳이 먼 거리를 걸어 나가 외부 식당에서 먹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가까운 구내식당에서 먹고 돌아와 얼른 일 처리 하고 집에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 역시 구내식당보다는 외부식당을 선호하게 되었다. 정해진 메뉴를 벗어나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이유뿐 아니라 종일 좁은 사무실에 갇혀 있는데, 걸으며 바깥 공기도 쐬고 주변 풍경도 눈에 담았다. 

특히 야근이라는 슬픈 상황에 보상이 필요했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기대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비록 한 끼 식사이지만 잠시 회사에서 벗어나 삶의 이야기도 나누고 때론 농담으로 피로를 씻어냈다.           

최근엔 김 대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일명 '음식 세계 일주'였다. 야근 때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대신 차례대로 각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이게 뭐라고 모여서 회의도 했다. 떠올려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기본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외에 태국 음식, 베트남 쌀국수 등 다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식도락 여행을 떠났다. 하루는 자장면, 다음은 초밥, 파스타, 쌀국수 등등 백반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우리 중 유일한 MZ 세대인 김 대리가 가장 신이 났다. 은근히 백반이 물렸던 모양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두둑한 한 끼 식사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고단한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어 주었다.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이기도 했다. 

글을 쓰며 다음 식도락 여행의 종착지는 어딜지 궁금해졌다. 지난 번엔 돈가스였으니 날도 쌀쌀하니 쌀국수가 어떨까 싶다. 김 대리의 "오늘은 무얼 먹을까요?"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야근 때 어느 식당을 갈지 매번 고민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고민 또한 직장의 재미 중 하나였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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