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투어’ 눈독 들이는 LIV 골프…“테니스가 좋은 모델”
올해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유럽여자골프(LET) 투어 정규대회가 열렸다. 이름은 아람코 사우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 사우디의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막대한 상금을 걸었다. 그래서인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현역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 리디아 고와 렉시 톰슨, 전인지, 김효주 등 LET 투어와 거리가 있는 톱랭커들이 앞 다퉈 나왔다. 스프링캠프 기간임에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의 얼굴 역시 많이 보였다. 임희정과, 유해란, 이소미 등 최근 우승 경력이 있는 실력자들이 사우디로 건너갔다. 이들 모두 LET 투어 시드는 없지만, 세계랭킹 등의 자격요건을 내세워 출전권을 확보했다.
골프계는 이 대회 개최를 사실상 LIV 골프의 여자 투어 신설을 위한 교두보로 해석하고 있다. 아직 공식발표는 없지만, LIV 출범이 처음 논의됐다고 알려진 로열 그린 골프장에서 여자 대회를 연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상징성은 컸다. 당시 LIV는 여자 투어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LIV의 움직임도 조금씩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수장인 그렉 노먼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자 투어 신설을 ‘재차’ 시사했다. LPGA 투어와 LET 투어에서 뛰고 있는 일부 선수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LIV 레이디스 시리즈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 6월 LIV가 출범하면서 여자 투어 신설이란 화두는 늘 따라다녔다. 문제는 시점이었는데 일단 지난해와 올해 시즌이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세를 확대하려는 조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싱가포르 대회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최종라운드가 열린 30일 센토사 골프장에서 만난 LIV 고위 실무진은 “테니스가 좋은 모델이라고 본다. 남녀 선수들이 같은 대회장에서 경기를 한다고 생각해보라. 하루는 남자 선수들이 오전, 여자 선수들이 오후 라운드를 하고, 다음날에는 시간대를 바꾸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우리 계획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실현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LIV는 아직 구체적인 공표는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현장 취재진에게 거듭 당부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메일까지 보내 실명 대신 ‘LIV 중역’이라고 표현해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여자 투어를 대하는 LIV의 현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LIV 레이디스 시리즈는 결국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대회장에서 만난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는 “LIV에서 여자 투어를 만드는 쪽으로 알고 있다. 상금이 막대한 투어가 새로 생긴다면 결국 선수들도 넘어오게 돼있다고 본다”고 했다.
관건은 LPGA 투어와 LIV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느냐다. PGA 투어처럼 적대적으로 맞설 것인지, LET 투어처럼 공생 관계로 갈 것인지가 문제다. 일단 LPGA 투어의 자세는 그리 차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7월 LPGA 몰리 마르쿠스 사마안 커미셔너는 “노먼이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언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다”면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LPGA 투어의 입장은 현재까지 큰 변함이 없다고 한다. 협력 관계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내부 기류도 감지된다.
선수들의 이적 규모도 관심사다. PGA 투어의 경우 필 미켈슨을 필두로 더스틴 존슨과 브룩스 켑카, 브라이슨 디섐보 등 쟁쟁한 이름값의 스타들이 LIV로 이적했다. LPGA 투어가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이를 두고 국내 대형 골프 에이전시 관계자는 “사우디 대회 때 많은 여자 선수들이 차원이 다른 상금 규모를 보고 만족스러워했다.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나름 상위권 안으로만 들면 국내 대회 우승상금 정도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결국 프로는 돈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PGA 투어는 그 장벽이 나름 견고하다고 할 수 있지만, LPGA 투어는 충성도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국 LIV 레이디스 시리즈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들고 나온다면 상황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센토사(싱가포르)=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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