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규제 완화 탓"…올해 파산은행 자산 2008년보다 커

3개 美은행 자산합계 713조원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된 가운데 올해 파산한 미국의 3개 은행의 자산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25개 일반 은행의 자산 합계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계를 인용해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올해 파산한 3개 은행의 자산 합계는 5320억달러(약 713조412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파산한 25개 은행의 전체 자산을 물가 상승을 반영해 현재가치로 환산한 5260억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이번 FDIC의 통계에는 2008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등 예금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IB)의 자산은 제외됐다. 당시 파산한 25개 은행 중 워싱턴뮤추얼은행은 저신용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출로 4300억달러까지 자산을 불렸다.

워싱턴뮤추얼은행은 현재까지 파산한 미국 상업은행 중 가장 큰 규모로 파산한 은행이다. 당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압박으로 JP모건 체이스가 결국 인수했다. 나머지 24개 은행은 대부분 중소·지역은행으로, 자산 규모 합계는 940억달러였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올해 파산한 은행의 경우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2130억 달러로 자산이 가장 많았고, SVB(2090억달러), 시그니처은행(1100억달러) 순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파산 은행인 워싱턴뮤추얼은행보다는 적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다른 일반은행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은행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자산 규모가 비교적 큰 은행이 무너진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이뤄진 은행 규제 완화가 꼽힌다.

2008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해 금융규제를 강화했지만, 트럼프 전 행정부가 2018년 대형은행을 제외한 중소·지역은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이번에 파산한 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 은행들이 규제 감시망에서 벗어나게 됐다.

특히 은행의 건전성을 심사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매년 받아야 하는 자산규모를 5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고, 그 결과 수많은 중소·지역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감시망 밖으로 벗어났다.

자산규모가 2090억달러인 SVB도 이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았고, 이번 SVB 사태의 본질이 해당 규제 완화에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현행법에서도 자산 규모 1000억달러 이상인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등 규제 권한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정부와 규제당국의 분위기다.

Fed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던 은행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마이클 바 Fed 부의장은 SVB 파산의 이유를 부실 경영으로 규정하면서도 Fed의 감독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산 사태는 관리 부실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짚으며 "SVB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지역은행에 대한 규제를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