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혈액 부족한데 수혈 부작용 고통… 신약 나왔지만 높은 벽
수혈 횟수 합병증 낮추는 신약 나와
환자 접근성 강화 위해 급여화 절실
43세 여성 K씨는 3~4주마다 대학병원 외래를 찾아 적혈구 수혈을 받는다. 3년 전 희귀 혈액질환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적혈구 생성을 돕는 약제를 썼으나 빈혈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지금은 주기적 적혈구 수혈 외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수혈을 받을 때마다 힘겨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2주간은 거의 정상 생활이 가능하지만 수혈 3주 뒤부터는 여러 부작용에 시달린다. 업무에 지장 있을 정도의 피로와 호흡곤란, 잠자면서 겪는 다리의 불편함이 점차 심해지다가 다음 병원 방문 직전에는 거의 쓰러질 상황에 처하기 일쑤. 게다가 적혈구제제에 함유된 과량의 철이 몸에 쌓이기 때문에 이를 빼내는 약도 복용 중인데, 매번 복통 구토 설사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나 환우회 카페 등에는 이처럼 반복 수혈을 받아야 하는 혈액질환자들의 고충과 수혈 부작용을 호소하는 상담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근래 고령화·저출생, 코로나19 유행 등에 따른 헌혈 감소로 혈액 부족 문제가 국가·사회적 정책 이슈로 급부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 실적은 264만건으로 2019년 대비 5% 감소했고 수혈용 혈액 공급은 3% 줄었다. 헌혈 인구는 줄어드는데 반해 수혈이 필요한 고령층은 급증하고 있어 향후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의료 현장에서 혈액의 적정한 사용과 함께 수혈 대체 약제의 신속한 도입 및 환자 접근성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과수술 시 수혈 요구량을 줄이는 ‘환자혈액관리(PBM)’가 일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다. 또 수술 환자나 K씨 같은 혈액질환자에게 부작용 많은 수혈을 피하게 해 주는 조혈 촉진제, 대체 약제의 개발도 혈액 부족 사태의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수술 전 빈혈 교정을 위한 수혈의 대안적 치료로 고용량철분제제 사용이 권고되고 있으나 아직 외과영역에 국한된다. 또 일각에서 수혈용 ‘인공 혈액’ 개발 및 대량 생산 연구도 진행중이지만 상용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성적 수혈 부담이 큰 혈액질환자들에게 수혈 횟수를 줄여주는 신약이 최근 국내에 허가됐다. MDS 같은 악성 혈액질환이나 급성백혈병 등 혈액암, 일반 암 환자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빈혈이 초래된다. 특히 골수에서 성숙한 혈액세포를 만들지 못하는 MDS는 잦은 빈혈 감염 출혈로 환자 고통이 크다. 전체 환자의 약 89%가 빈혈을 겪고, 50~90% 환자는 질병이 진행되는 동안 적혈구 수혈을 받아야 한다. 많은 환자가 결국 수혈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 달에 최소 한번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수혈의 부작용과 그에 따른 삶의 질 저하가 크다는 점이다. 수혈을 받으면 빈혈 증상이 일시 좋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난다. 또 수혈을 지속할 경우 철을 포함한 적혈구가 간이나 심장에 쌓이는 ‘철 과잉증’이 발생한다. 장기간에 걸쳐 철분이 몸에 쌓이면 심부전, 부정맥, 간비대, 간경화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체내 철분 배출을 돕는 약물(철 킬레이션제) 치료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위장·콩팥·간 등에 추가적인 이상반응이 초래돼 환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더구나 수혈 의존성을 보이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약 37% 높은 것으로 보고돼 수혈이 환자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혈액 공급량 감소로 인해 수혈에 의존하는 혈액질환자들은 유일한 지지요법인 수혈 치료마저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지속 수혈이 필요한 대표 혈액질환인 MDS의 경우 적혈구 수혈 횟수와 합병증 빈도를 낮추는 세계 최초의 신약(루스파터셉트)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데도, 건강보험 비급여로 환자 접근성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는 6000여명의 MDS 환자들이 있다. 2019년 기준 전체 환자의 60% 이상이 60대 이상고령층이다. 한국혈액암협회 박정숙 사무국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수혈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MDS 환자들에게 수혈 부담을 줄여주는 고가 약제에 대한 조속한 급여화가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적혈구 생산 과정에 생기는 문제를 차단함으로써 적혈구의 성숙을 돕는 이 신약은 전체 MDS 환자의 77% 가량을 차지하는 저위험군을 치료 대상으로 하며 임상연구를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받았다. 나머지 23% 고위험군 환자들은 암인 급성백혈병으로 진행되는 만큼 조혈모세포이식이나 항암치료 등 보다 공격적 치료가 필요하다.
저위험 MDS의 경우도 1차적으론 적혈구 생산을 조절하는 ‘적혈구형성자극제(ESA)’를 사용하지만, 이에 반응하는 환자는 40~60%에 불과하다. 또 초기 ESA에 효과있는 환자라도 이후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며 결국 수혈로 적혈구를 보충해야 하며 반복되면 수혈 의존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홍준식 교수는 1일 “ESA는 또 혈전증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과거 정맥혈전증 병력이 있는 등의 환자인 경우 사용하기 어렵다. 반응이 좋은 환자들도 1년6개월~2년 후에는 반응을 잃고 다시 수혈 의존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제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크다”고 설명했다.
신약인 적혈구성숙제제는 4주에 한번 수혈받아야 했던 환자 3명 중 1명이 8주 혹은 12주에 한번 수혈로 횟수를 크게 줄여준다. 즉 가짜약 대비 3배 정도 MDS 환자의 빈혈을 교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위험 MDS 환자들에서 급성백혈병으로 진행되기 전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홍 교수는 “신약 등 현재 사용 가능한 옵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수혈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 방법이며 무엇보다 빠른 치료 접근성 개선이 요구된다”며 “MDS 같은 혈액질환자의 수가 다빈도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총 생존기간이 짧지 않다는 이유로 급여 심사에서 지나치게 외면받고 후순위로 밀리면 해당 환자들은 긴 시간 많은 불편을 겪고 합병증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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