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구멍난 모니터링 시스템, 근본 대책 세워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빗대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사기꾼들 전성시대’다. 주식사기 전세사기 코인사기에 보이스피싱까지 다중피해사기 사건이 특히 급증하고 있다. 피해가 복구되는 경우는 드물다.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릴 때, 가해자는 ‘투자의 귀재’ ‘신흥 자산가’로 대접받는다. 어쩌다 적발돼도 운이 없었다고 치부한다. 몇 년 징역 살고 나오면, 숨겨 놓은 범죄수익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투자 전문가나 성공한 자산가를 자처하는 이들 중엔 재산 형성 과정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의심으로 그칠 뿐이다.
다중피해사기는 피해자가 많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모니터링에 쉽게 포착될 것 같은데 정반대다. 수백 수천 명의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 후에야 당국은 “현실적으로 적발하기 어려웠다”는 변명을 내놓곤 한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로 드러난 주가조작 의혹이 대표적인 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종목의 주가가 단기간 5배 이상 급등했는데도 금융 당국은 범죄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리스크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차액결제거래(CFD)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는데도, 이상거래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는데도 신속한 조치와 대응은 없었다. 피해자 명의로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증권계좌를 개설한 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주식 거래를 하는 등 지능화된 수법이 동원된 것은 맞지만, 그래서 적발이 어려웠다는 건 당국의 변명치곤 좀스럽다. 범죄 수법의 지능화·첨단화를 왜 따라잡지 못했는지 반성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전국적으로 피해자를 낳은 전세사기도 마찬가지다. 국민일보가 2년 전에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을 단독 보도하는 등 언론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올해 들어 세입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진 뒤에야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다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피해가 이렇게 커지도록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물론이고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뭘 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납치살해 사건으로 이어진 코인사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론화된 사이비종교집단 JMS의 종교빙자사기와 성폭력 행각도 다르지 않다. 범죄의 징후는 끊이지 않았는데 이를 감지하고 위기 경보를 내려야 할 국가 모니터링 시스템은 먹통이었다.
그 허점을 노려 사후에도 적발되지 않고 범죄수익을 온전히 챙긴 이들은 사업가나 투자가로 변신해 더 큰 한탕을 노린다. 조직폭력배 출신이 대기업을 인수해 재벌 회장 행세를 하고 정관계 로비로 돈과 권력을 탐하며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고용하는 누아르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당국에 적발돼 사기 행각이 실패로 돌아가도 포기하지 않는다. 더 진화한 수법으로 더 치밀하게 새로운 범죄를 ‘설계’한다.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 범죄수익 환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의 철저한 점검과 개선이다. 다중피해사기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대형 사건사고 중에는 모니터링의 실패에서 비롯된 게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도 관제실의 모니터링 기능만 정상 작동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인재였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도 현장 CCTV만 제대로 지켜봤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한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제할 수는 없고 규제해서도 안 된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이자 강점이지만, 통제사회에 비해 불의의 사고를 유발할 위험을 높인다.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모니터링이 필수인 이유다.
오늘날 범죄는 복합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관계 당국이 따로 대응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장과 사회 각 부문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서로 보완하게 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국가안전시스템처럼 범정부 차원의 범죄예방시스템 구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기꾼과 두뇌싸움에서 지는 일이 없도록 기존 제도의 허점을 찾아 봉쇄하고 개선하는 동시에 첨단기술도 도입해야 한다.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용하는 조직과 구성원이 지닌 인간적 한계를 보완하도록 인공지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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