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바닷가 작은 교회가 더 작은 교회 섬기려 ‘제비뽑기’

글,최경식 2023. 5. 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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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땅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③ 강원도 강릉페아교회
강원도 강릉페아교회 교인들이 한 다문화 사역지에서 후원과 전도 활동을 펼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릉페아교회 제공


강원도 강릉의 경포바닷길을 지나다보면 한 작은 교회를 만날 수 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강릉페아교회(유장열 목사)다. ‘페아’는 ‘밭모퉁이’라는 뜻을 담은 히브리어다. 교회 규모는 비록 왜소했지만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특별한 멋을 뽐내고 있다.

이달 초 방문한 교회에선 유장열 목사와 교인 몇명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나눔과 구제’였다. 농어촌 미자립 교회와 사역자들을 위해 앞으로 언제 어떻게 나눔을 할 지 논의하고 있었다. 유 목사와 교인들의 얼굴에는 나눔에 대한 기대감과 즐거움이 엿보였다.

강릉페아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자신들보다 더 작고 어려운 교회들을 돕는 데 열심이다. 이 교회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제외한 모든 헌금을 나눔에 사용하고 있다. 나름 장학회도 만들었다. 지난 23년동안 약 200회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나눔의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교인들이 각자 돕고 싶은 교회들을 임의로 적어 제출한 뒤 이 가운데 몇 개 교회를 ‘제비뽑기’로 선정했다. 자신이 돕고 싶은 교회가 선정된 교인들은 책임감을 갖고 후속 작업을 주도했고, 그렇지 못한 교인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우선 선정된 교회에 대한 나눔에 적극 동참했다.

교인들이 나눔을 위한 헌금을 낼 때 모두 ‘무명’으로 하는 것도 특이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유 목사만의 남다른 목회 철학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남을 도울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밭모퉁이의 교훈… 나눔의 길로

유 목사가 사역의 방점을 나눔과 구제에 두는 것은 어린 시절 및 대학생때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농촌 구석진 곳에 있는 한 미자립 교회에서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즐거운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순탄하지 못했다. 담당 교역자들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소득이 너무 적거나 자녀들의 학업 문제 등으로 사역자들이 더 이상 해당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 유 목사는 이를 가슴 아프게 생각했고, 훗날 어떤 형태로든 농촌의 미자립 교회들과 사역자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 구약을 연구하다 레위기의 ‘밭모퉁이’ 구절과 유대인들의 나눔 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그가 본 성경구절은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해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23:22)였다.

유 목사는 “구약을 심도있게 연구하다보니 나눔과 구제의 말씀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와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돈 버는 목적이 돕는 데에 있는 유대인들의 문화까지 접하게 됐다”며 “이를 통해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사역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명확히 설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36년 사역의 힘, 동역자들

유 목사가 이와 같은 사역을 36년 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40년 전 대학생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이 지금까지 나눔을 위한 동역자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 설립 초기에 성경공부를 통해 가까워졌던 일부 교인들이 끈끈하게 유 목사 곁을 지키고 있다. 부득이 멀리 떨어지게 된 교인들은 유 목사의 사역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유 목사의 나눔과 구제 사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예배당이 마땅치 않아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는 교회들을 위해, 페아교회가 다른 지역에 갖고 있는 또 다른 예배당을 저렴하게 임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교회의 경우엔 일정 기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강릉을 방문하는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 쉼터’의 외부 모습. 강릉페아교회 제공


페아교회는 강릉을 방문하는 선교사들에게도 희망의 메신저가 될 전망이다. 현재 유 목사와 교인들은 작은 ‘선교 쉼터’를 짓고 있다. 타지에서 고생을 한 선교사들이 강릉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무료로 숙박을 해결하며 잠시나마 쉼을 얻기를 소망하고 있다. 유 목사는 “결국 우리는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며 “초대교회는 교회 자산의 절반을 나눔과 구제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본받아 작지만 큰 사역을 지향한다”고 전했다.

강릉=글 ·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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