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1) 사회 무질서와 부패 잡으려 ‘새생활운동’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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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회의 무질서와 부패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생활운동에 동의한 수백 명 학생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더니 모두 흥분해서 "커피 한 방울, 피 한 방울"이라고 조잡하게 쓴 플래카드를 들고 길거리에 나섰다.
하루는 새생활운동 학생들이 서울 시내 큰길에 흩어져서 기다리다 그런 차가 나타나면 그 앞에 드러누워 차를 정지시키고 강제로 서울시청 뒷마당으로 몰고 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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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생원 3인방과 문리대 동기생들 모여
다방·댄스홀 습격, 커피·양담배 빼앗아
4·19 혁명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회의 무질서와 부패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것에 용기를 얻은 학생들은 사회도 좀 제대로 바꿔야겠다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우리 영문과 꽁생원 3인방과 종교학과 김상복, 이영기, 역사학과 김명혁 등 문리대 동기생들이 모여서 새생활운동이란 것을 시작하자고 결의했다. 그때 서울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모두 밀수된 커피를 팔았고, 성인 남자 대부분은 담배를 피웠는데 거의 다 밀수된 양담배였다. 실상을 알아보란 임무를 받고 재무부에 가서 조사해 봤더니 일 년간 커피와 양담배 밀수로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대전시 인구의 일 년 치 식량값과 같았다.
새생활운동에 동의한 수백 명 학생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더니 모두 흥분해서 “커피 한 방울, 피 한 방울”이라고 조잡하게 쓴 플래카드를 들고 길거리에 나섰다. 다방에 쳐들어가서 커피를 엎지르고 입에 물고 있는 양담배를 빼앗는 등 온갖 난동을 다 부렸다. 여기저기 생겨난 댄스홀에 무더기로 들이닥쳐 “푹푹 썩은 자들”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미군들 전용 댄스홀을 습격한 적도 있는데 한국 공무원들이 공무 차량을 몰고 가서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김상복(할렐루야교회 은퇴 목사) 군이 유창한 영어로 우리 의도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더니 박수갈채로 반응해 주었다.
자유당 정부는 자동차가 늘어나지 못하게 번호를 한정해 놓았다. 허용된 자동차 수가 다 차버렸기 때문에 4·19 이후에 치러진 선거에 당선한 국회의원들은 자동차를 갖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상당수 의원이 군용 지프차를 불법으로 후송시켜 소위 ‘가’ 번호판을 붙여서 타고 다녔다.
하루는 새생활운동 학생들이 서울 시내 큰길에 흩어져서 기다리다 그런 차가 나타나면 그 앞에 드러누워 차를 정지시키고 강제로 서울시청 뒷마당으로 몰고 가도록 했다. 오후가 되니 그렇게 끌려온 차가 백 대가 넘었는데 해체해 버리자니, 불태우자니 옥신각신하다가 학생 수보다 4배나 되는 경찰이 기사들과 함께 몰려와서 다 몰고 가버렸다. 학생들은 불법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겠다고 경찰 구치소로 몰려갔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시작돼 새생활운동을 마감하는 날 우리는 그동안 빼앗은 양담배를 서울 세종로 한가운데 쌓아놓고 유치하게 애국가를 부르면서 불을 질렀다.
돌이켜 보면 좀 지나치기도 했고 순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4·19 못지않게 나라와 사회를 위한 젊은이들의 순수한 충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때는 내무부 장관, 국회의장, 언론, 일반 시민들, 심지어 경찰조차도 난동에 가까운 우리 활동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 주었다. 그리고 그 활동을 주동한 우리도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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