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의 신앙으로 세상 읽기] 돈이 신이 되면
‘자존심’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존귀함을 지키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있는 존귀함이 무너질 때 ‘자존심을 잃는다’고 말한다. 처음 목회의 길을 시작할 때 선배 목회자였던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회자는 모래바닥에 코를 처박고 죽어도 교인들에게 돈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다. 그게 목회자의 자존심이다.”
우리 윗세대 신앙인들에게는 ‘목회의 길을 걷다가 너무 가난해서 목회자로서의 자존심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절대적 빈곤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가난함’은 상대적 빈곤이나 비교로 인해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오면 우리가 지키고 붙들어야 하는 ‘자존감’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잠언 30장 8~9절에 지혜자의 기도가 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이 기도는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에게 찾아온 두려움의 감정을 잘 드러낸다. 너무 가난하면 물질로 인해 범죄할 수 있고, 너무 부유해도 하나님을 잊고 제멋대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두 가지의 두려움은 모두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될 가능성에 대한 염려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기저에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록을 쓴 유명한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에 대해 ‘사랑과 질서’가 혼동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만물에는 질서가 있고 우리는 그 질서에 맞게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때 ‘자존심’을 잃어버리는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라틴어의 ‘우티(uti)’와 ‘후루이(frui)’라는 단어를 사용해 ‘사랑의 질서’에 대해 설명한다. 질서가 깨어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비존재로서의 ‘악’을 경험한다.
존재의 질서란 하나님, 인간 자신, 이웃, 그리고 인간 아래 있는 사물의 순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최고의 사랑으로, 그분의 존재를 ‘즐기는 것’(frui)이다. 그 아래 있는 물질은 오로지 제한적인 사랑으로 단지 ‘사용하는 것’(uti)이다. ‘아름다움’은 그 존재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존재가 질서 가운데 있느냐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돈이 본래 악한 것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을 때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가 방영됐다. 세상이 우리를 그들과 동일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부끄럽고 혼란스럽다. ‘은사주의’로 시작해서 이단으로 가는 사람들의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바로 ‘질서의 깨어짐’인데,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자리에 교주가 올라서고, 하나님을 즐거워(frui)해야 하는 자리에 ‘돈’이 대신하는 것이다. ‘돈’이 ‘신’이 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자존심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그 단체들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교회 안에서도 ‘사랑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돈을 ‘사용’하는 것이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은사주의로 시작한 성령의 역사는 치유, 회복, 부유와 같은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은사로 인해 하나님의 자리가 온전히 보이지 않으면 ‘악’을 경험하게 된다. ‘은사’는 있어야 할 자리에 ‘성령의 열매’로 나타날 때 아름답다. 오늘날 교회에 이 분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이것이 세상과의 ‘다름’이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세상을 불쾌하게 하는 이단들과의 차이다.
(만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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