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국내 보수 교단 유리천장 여전히 단단… 실금도 못냈다
교황청이 최근 여성(수녀)에게 투표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는 오는 10월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 참석자 300여명 중 13%에 달하는 40명이 여성으로 채워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뿐 아니라 주교가 아닌 일반 신도 70명에게도 투표권을 추가로 부여하기로 했는데 이 중 절반도 여성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시노드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여 교리와 규율, 전례 문제 등을 토의하는 회의체입니다. 특정 주제를 논의한 뒤 투표를 거쳐 건의안을 확정해 교황에게 제출하는 자문기관이죠. 2000년 가까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교황청이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이 쏟아졌습니다. 교황청의 이런 결정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들에도 빠르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교황청의 결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교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나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여성 안수를 허락한 교단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 교단에서는 여성 목사와 장로가 활동하고 있죠. 총회 총대(대의원)가 된 뒤 총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 총회장이나 부총회장이 배출된 사례도 있죠.
반면 여전히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교단도 있습니다. 예장합동과 고신 교단 등입니다.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다 보니 총대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습니다. 교단 정기총회에 가면 오직 남자만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봉사자나 총회 직원뿐이죠.
남성 지도자만 있는 세상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여동문회(여동문회·회장 이주연)가 지난 3월 중순 예장합동 산하 전국 노회에 ‘여성 안수 헌의안을 발의해 달라’는 우편을 발송했습니다. 오는 9월 교단 정기총회 때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뤄 달라고 요청한 셈이죠. 예장합동은 그동안 정기총회에 여성 안수 청원이 일곱 차례나 올라왔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그만큼 교단 내 여성에게 여성안수는 절박한 문제인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니 심각한 인재 유출로 이어집니다.
지난해 여동문회가 총신대 신대원 졸업생 224명을 대상으로 사역 실태를 조사한 결과 18.2%(41명)가 타 교단으로 소속을 옮긴 뒤 목사 안수를 받았거나 안수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 중 71.8%는 예장합동이 여성 안수를 허락해야 한다고 답했죠.
예장고신 총회도 여성의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총회에서 “여성 안수 제도 도입을 연구하자”는 안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성 안수를 허락하자는 것도 아니고 연구하자는 제안조차 폐기해 버렸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오는 9월 교단들의 정기총회에서도 큰 변화는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교황청의 과감한 결정 앞에 초라해질 뿐입니다.
여성안수를 허락한 교단도 갈 길은 멉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여성안수를 허락한 교단은 기감으로, 1955년 전밀라 명화용 등의 여성 전도사를 목사로 안수했습니다. 하지만 68년 동안 여성 목사가 연회 감독이 된 예는 없습니다.
1994년 여성안수를 법제화한 예장통합도 그로부터 29년이나 지났지만 여성 총대가 고작 35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1500명 총대 중 2.3% 수준이죠. 교황청이 13%에서 출발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반면 우리나라 교회 내 여성 교인의 비율은 60%를 웃돕니다. 여성이 대다수인데 남성만 목사·장로가 되는 건 지나친 불평등 아닐까요. 여성 안수를 허락했다 하더라도 여성에게 더욱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더 많은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날까지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교황청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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