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의 이코노믹스] 원전 해체 산업, 한국 경제 새 돌파구 될 수 있다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개막 임박
■
「 글로벌 시장 규모 549조원 추산
원전 증가 추세, 해체 물량 늘듯
한국 기술 수준 선진국의 87%
전문 인력 양성·생태계 필요
고리 1호기 해체로 역량 기르고
선도국과 공동참여 적극 나서야
」
영구정지된 원전만 194기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의 본격적인 확대가 임박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에 의하면 2021년 7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전 수는 총 443기, 영구정지된 원전이 194기다. 4개국의 21기 원전이 해체 완료됐는데 미국 16기, 독일 3기, 스위스 1기, 일본 1기다. IAEA는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규모를 총 549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운영 중인 443기의 가동 연수 현황을 보면 30년~40년 된 원전이 298기로 67%를 차지하고 있고, 40년 이상 된 원전은 121기로 27%에 이른다. 따라서 향후 30년간 글로벌 해체 시장 규모는 327조 원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원전이 57기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해체 물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도 착실히 해체 기술을 쌓아가면 원전 해체산업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원전 해체는 최소 15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영구정지 전 준비에 2년, 안전관리 및 연료반출에 최소 5년, 제염(Decontamination, 방사능에 오염된 구조물에서 방사성 물질을 떼어내는 작업)·철거에 최소 6년, 복원·종료에 최소 2년이 걸린다. 한국은 2017년 6월 18일 운영을 영구정지한 고리 1호기와 2019년 12월 24일 영구정지한 월성 1호기가 완전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고리 1호기의 경우 최종 해체계획서를 2021년 5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고 해체승인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 승인이 나야 비로소 원전해체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 해체 결정의 실권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선결 작업
그런데,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원전 건설·운영 과정만큼이나 해체 과정에서도 지역 주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고리 1호기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450여 다발을 습식저장조에 보관하고 있는 상태다. 습식저장조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스테인리스 통에 밀봉하여 보관할 건물(임시저장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하는 2030년께 이후 본격적인 해체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즉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시설 건설이 원전 해체의 선결 작업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시설 건설에 해당 지역 주민이 반대하면 해체작업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하루빨리 고리 1호기 내부의 빈 공간에 저장시설을 짓든지 아니면 그 인근 지역이라도 주민 동의를 얻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무쓰시 사례 참고할 만
원전과 관련된 문제는 대개 지역 주민의 반대에 직면해왔다. 정부는 해당 지역에 재정 지원을 하거나 지역 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협의를 거쳐 문제를 해결해 왔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문제 해결 방안은 한국과 같은 처지에 있었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현재 일본 아오모리(青森)현 무쓰(陸奥)시에선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반지하식 건물로 건설하여 자연풍으로 공기가 드나들게 건식저장을 하고 있다. 이 시설이 만들어지기까지 도쿄전력과 무쓰 시민의 협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한 스기야마 마사시 시장이 신뢰할만한 리더쉽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해냈다.
2000년대 중반 무쓰시는 인구 약 5만여 명의 소도시였다. 시 예산으로 큰 도시 못지않은 병원을 지었는데, 무쓰시뿐만 아니라 인근 시와 촌락 등지에서도 환자가 몰려오는 바람에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다. 그즈음 도쿄전력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장소를 찾고 있었다. 스기야마 시장은 시민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 사용후핵연료와 봉인할 스테인리스 통 등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시설 유치 합의를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스기야마 시장은 141회의 현장 설명회를 했다고 한다. 그 뒤 무쓰시는 사용후핵연료가 반지하 건물에 들어올 때마다 지원금을 받아 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무쓰시는 사용후핵연료 시설과 지역이 윈윈하는 일본 최초의 케이스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원전 해체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원전 업계에 따르면 선진국 대비 한국의 원전 해체 기술 수준은 2015년 약 70%에 불과했으나 2019년 82%, 2021년 87%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구체적인 분야별로 자립도를 평가하면 설계 인허가 기술이 92%로 가장 높고, 제염기술 78%, 절단기술 84%, 폐기물처리기술 83%, 부지복원기술 80%다. 아직은 기술력을 더 쌓아야 한다. 전문기업 인증과 기술 검증 체계 등 제도적 기반 구축과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해체 기술 높이고 국민 신뢰 쌓아야
그럼에도 한국이 단기간에 원전 건설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을 생각하면 원전 해체 강국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이 원전 해체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 우선 시급한 것이 고리1호기 해체 경험을 통해 해체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직 원전 해체가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에선 경험이야말로 기술력을 높이고 외부에 입증하는 길이다. 또한 외국의 원전 해체 프로젝트에 경험 있는 선진국과의 공동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원전 해체의 고도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해 글로벌 시장 단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태양광, 풍력, 석탄, LNG, 원자력 등 전기를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완벽한 전력생산 방안은 없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이지만, 운영과 해체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사고를 막아야 하는 절대적 과제가 있다. 원전 해체 이후에도 방사능 오염물질을 분리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도록 보관해야 한다. 원전 건설·운영과 마찬가지로 원전 해체 역시 국민의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 그것이 글로벌 경쟁력의 기반이 될 것이다.
■ 이승만의 원자력 발전 선택은 옳았다
「 2023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한국의 원자력 발전 선택은 산업 발전을 위해 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철,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등 한국 경제의 주축인 산업들은 엄청난 전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산업을 위한 대량의 신속한 전력 공급이 원자력 발전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원전의 시작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1956년 미국 전력산업계 거물이자 대통령 과학고문인 시슬러 박사로부터 “석탄이 땅에서 삽으로 캐는 연료라면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는 얘기를 듣고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결심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만약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해 주겠다고 하면 반드시 받으라는 시슬러 박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폭탄 투하에서 비롯된 원자력의 나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 For Peace)’이란 기치를 내걸고, 원하는 나라가 있으면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기초가 되는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로는 엄청난 거금인 35만 달러를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 투입했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최빈국 한국이 원자력이란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었다. 상용 원전 건설 시작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였다. 정부는 1967년 경남 양산시 고리에 50만㎾급 원전 2기를 짓기로 결정하고, 1971년 착공했다. 고리 원전은 1978년 가동에 들어갔다. 현재 한국의 원전은 25기이며, 이 중 19기가 운전 중이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래 글로벌 시장에서 원전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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