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어느 비디오 가게 사장님의 전성시대
예전에는 ‘비디오 가게 주인’을 꿈꾸는 회사원들이 드물지 않았다.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으로 치면 ‘덕업일치’를 꿈꿨던 셈이다.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할리우드 유명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젊은 시절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수많은 작품을 갖춘 비디오 가게는 때로는 필름 아카이브나 영화 학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중에도 미국 뉴욕의 ‘킴스 비디오’는 보통 비디오 가게가 아니었다. 재미교포 김용만씨가 1980년대 중반 창업한 곳인데, 예술영화와 B급영화를 아우르며 희귀본 비디오를 잔뜩 구비해 뉴욕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소문을 들은 한국 영화광들도 뉴욕에 갈 기회가 있으면 일부러 들릴 정도였다. 1996년 8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는 “소장 테이프의 양과 질에서 미국 최고 수준”이라며 회원 중에 뉴욕의 유명 감독들과 배우들, 뉴욕대 영화학과 교수들도 있다고 전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다큐멘터리 ‘킴스비디오’(원제 Kim’s Video)는 그 화려한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다큐에 등장하는 예전 직원들은 이 유명한 가게의 대표적 지점이 2009년 문을 닫을 당시, 25만 회원 가운데 영화감독 코엔 형제는 연체료가 600달러나 됐다는 등의 얘기로 그 명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 다큐의 공동 감독 데이비드 레드먼 역시 왕년의 회원이자 영화광. 그는 지점이 문을 닫은 뒤 5만점이 훌쩍 넘는 소장 비디오의 행방을 추적한다. 뜻밖에도 이를 보관 중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작은 도시 살레미, 예전에 만난 적 없는 창업주 김용만 사장이 사는 미국 뉴저지 등을 오가며 결국 그 비디오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사실 흥미로운 건 이 다큐만이 아니었다. 지난 주말 이 다큐의 상영장 열기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다큐의 주인공 격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김용만씨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은 단연 이채로웠다. 대부분 비디오 세대로는 보이지 않는 젊은 관객들이었다.
디지털의 시대, 영화관 대신 OTT 서비스 등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김 사장의 말마따나 비디오 가게의 “건방진” 점원들이, 웬만한 손님보다 아는 게 많은 점원들이 아니라 이용자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영화를 추천하는 시대다. 『도시의 승리』를 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사람과 재능과 아이디어가 모이는 것을 도시의 강점으로 예찬한 바 있다. 비디오라는 물리적 매체와 비디오 가게라는 물리적 공간은 영화광을 불러 모으는 도시 속의 영화 도시이기도 했다. 그 열기가 영화제라는 한시적 물리적 공간, 일시적인 영화 도시에서 재현되는 걸 목격하는 건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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