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작전주’ 세력
한국 주식시장에 ‘작전’이란 용어가 등장한 건 1990년 전후다. 하지만 작전이라 부를 수 있는 주가 조작의 시작은 그보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경제에 산업화 바람이 불고, 강남이 대규모로 개발되던 1970년대. 부동산 투기와 기업 대상 사채놀이로 큰돈을 번 세력은 증시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주식·채권과 단기어음을 중개하는 증권·단자회사를 사들이거나 직접 설립해 돈놀이에 나섰다.
많게는 수백억원을 굴렸던 이들 큰손에게 이제 막 태동한 국내 증시는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을 통틀어 1년 매출이 1000억원이 넘는 회사가 30개 남짓(1979년 기준)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이 사면 주가가 올랐고 팔면 내렸다. 건설·제조·식품 등 분야를 넘나들며 주가를 움직였고 막대한 시세 차익을 냈다. 큰손 투자가가 ‘명동 백할머니’나 ‘광화문 곰’ 같은 별칭으로 불리며 증권가에서 이름을 날린 것도 이때부터다. 한국 자본시장이 해외에 개방되기 전이었기에 견제 세력도 없었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의 경계는 모호했다. 서로 미리 가격을 정해놓고 사고팔거나(통정매매), 거짓 정보를 흘려 주식을 띄우는 건 당시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에서도 금지했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미미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주가 조작 세력의 담합을 잡아낼 정도로 금융당국의 감시망이 촘촘하지 않았다.
극소수 큰손의 전유물이었던 시세 조종 범죄는 1990년대 들어 널리 퍼졌다. 한국 증시의 성장과 맞물려서다. ‘작전주’란 은어가 생겨날 만큼 주가 조작이 빈번해졌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외국계 증권사인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이 쏟아낸 매물에 8개 종목 주가가 무너졌다. 며칠 새 수조원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개미투자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 배경에 금융·IT업계 큰손과 연예인, 정·관계 인사 등 대규모 주가 조작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가 허용한 차액거래결제(CFD)는 사태를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문제가 된 종목을 둘러싸고 지난해부터 작전설이 돌았는데도, 금융당국은 이제야 뒷북 대응이다. 허술한 당국의 감시망은 지금이나 수십 년 전이나 다를 게 없다. 그들만의 작전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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