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오히려 증가했다?… 기후위기 회의론의 진실 [이슈&탐사]

이택현,김지훈,정진영,이경원 2023. 5. 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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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멸종위기종 인간] <5> 음모론이라는 음모론
북극곰이 지난해 9월 16일(현지시간) 프란츠 요제프 군도의 영국해협에 섬처럼 떠 있는 빙하 위에 고립된 듯 서 있다. 기온 상승으로 듬성듬성 녹아내린 빙하 표면이 물에 잠긴 설원처럼 보인다. AFP연합뉴스


수천년 시간을 살핀 과학계의 계산,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자들의 약속, 최고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의한 기후위기 도래를 사실로 인정하는 권위 있는 결론들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 기후위기가 완벽히 입증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는 기후위기 진단을 사기라 부르는 일부의 회의론도 사라지진 않았다.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지구 온도의 상승이 인간 탓이 아니라고 저항하는 것이다.

과학계는 이러한 회의론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과학계는 인간의 역할을 빼고 현재의 지구온난화 속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여러 경로로 입증해 왔다. 과학계는 회의론이 검증되지 않은 부분적 단편을 토대로 전체의 부정을 시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유익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백보 물러나서 현재까지의 과학에 훗날 미세한 오류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지금은 인류가 합의한 ‘예방의 원칙’을 지킬 때라는 게 과학계의 경고다.

지구는 전에도 뜨거웠고, 곧 식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현상의 발생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이다.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 조간대(밀물·썰물 교차지역)에서는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라 바위가 백화(白化)하는 갯녹음 현상이 발견된다. 제주=이한결 기자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은 지구온도 변화는 오직 태양의 영향이며, 오래전부터 지구는 빙하기와 온난기를 번갈아 거치며 그 온도가 주기적으로 변해 왔다고 말한다. 최근 관측되는 온난화도 앞선 온난기들과 마찬가지의 자연적 변동이며 다시 지구가 차가워지는 때도 찾아올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 900~1400년에는 바이킹족의 남하를 부른 온난기가 있었고, 1400~1900년 소빙하기가 있었던 점은 조선시대의 ‘경신 대기근’ 기록과 함께 논해지곤 한다. 추울 때에 비하면 지구온도가 상승하는 국면인 현재는 축복받은 시기라는 주장마저 있다.

이는 부분적인 지역과 시간대에 한정된 정황을 근시안적으로 확대해석, 지구환경 전반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태도다. 남성현 서울대 지구과학부 교수는 “중세 온난기에 현재보다 따뜻했던 지역은 유럽 등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되고 다른 지역은 온도가 낮았다”며 “당시 평균 지구온도는 그 이전에 비해 큰 변화를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과거의 자연적 변화와 산업화 이후 현재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그 폭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남 교수는 “소빙하기에는 지구온도가 0.2도가량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는데, 그 변화는 수백년에서 1000년에 걸쳐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연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온도 상승 국면만 놓고 비교해 보더라도, 과학계가 계산을 마친 산업화 이전의 상승 속도는 ‘1000년에 1도’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대거 태우기 시작한 지 100년 만에 나타난 지구온도의 상승 폭은 1.1도다. 조 전 원장은 “오늘날의 변화는 오직 인간만이 일으킬 수 있고 회의론의 근거는 모두 무너져 있다”고 말했다.

회의론자들은 기준 시점을 자의적으로 택해 “이제는 온난화가 멈췄다”고도 주장한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는 지구 온도가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온난화 종료’ 주장의 주된 근거다. 하지만 기후과학은 10여년의 기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지구온도의 경향을 말하려면 해수 흐름과 화산폭발 등 부수적인 요인까지 고려, 장기간에 걸친 복잡하고도 신중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0년간은 온도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30~50년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지구는 기계가 아니다. 솥에 물을 넣고 끓이면 물 온도가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구름·강수·화산 등 요인이 비선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회의론자들은 기후위기 경각심을 위해 언급되던 사실들의 부분적 변화를 공격하기도 한다. “위협받는다던 북극곰 개체 수가 정작 1950년대 이후 늘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북극곰 사냥 금지 등의 보호조치 영향을 간과한 주장이다. 진경 극지연구소 빙하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북극곰은 애초 기후위기의 ‘대표 주자’로 홍보돼 보호가 빨리 이뤄졌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멸종위기종 존재가 검증된 상황에서 한 특정 종을 근거로 전체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현재 기온이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은 이상고온 현상을 겪고 있는데, 북동부 라베일스 저수지에는 희미한 물줄기만 남았다. AP연합뉴스

무엇이 후회 없는 선택인가

회의론자들은 온난화 경고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다며 기후위기를 ‘사기’라고까지 주장한다. 과학계는 이런 주장은 애써 바로잡아줄 시간조차 아깝다는 반응이다. 손 교수는 “반대로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들은 이득을 보는 게 없는데 누가 과연 실제로 이득을 보느냐”고 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기후위기 회의론자 단체인 ‘클린텔’은 거대 석유기업들의 후원 의혹을 받아 왔다. 거론된 석유기업들은 이 단체에의 자금 지원 의혹을 해명한 적이 없다. 기후위기 회의론을 골자로 한 클린텔의 ‘세계기후선언’ 발표에 참여한 다수는 실제 석유산업에 몸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각국 지도자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약속하고 최고법원이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사실로 인정하는 데서 볼 수 있듯, 과학적 결함을 가진 기후위기 회의론은 현실 세계 속에서 큰 권위가 없다. 그럼에도 회의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과 게으름이다. 과학계가 확인한 기후위기는 기업의 경영, 정부의 정책, 각자의 일상생활 속 변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온 인류가 전에 없던 과제를 부여받은 셈이다. 진 책임연구원은 “탄소중립의 경제적인 여파가 다가오면서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실린 문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읽어 달라고 했다. 1992년 처음 발간된 IPCC 1차 보고서는 인간의 온난화 영향을 말하면서도 “강화된 온실효과를 명확히 감지하는 데에는 10년 이상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1995년 2차 보고서가 “인간의 영향력을 시사한다(suggest)”고 한 뒤 2001년 3차 보고서는 “더 강력한 증거(stronger evidence)”를 말했다. 2007년 4차 보고서에 있던 “개연성이 높다(very likely)”는 2014년 5차 보고서에서 “개연성이 극도로 높다(extremely likely)”로 바뀌었다. 지난 3월 6차 보고서에는 기어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unequivocal)”는 표현이 담겼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6차 보고서에 대해 “인간에 의해 기후변화가 진행됐다는 점을 99~100%의 확신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PCC 보고서는 회원국이 협의해 초안을 작성할 과학자들을 추천·선정하고 또 다른 과학자들이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작성된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할 과학자는 학계 전문성은 물론 지리적 대표성, 선진국·개발도상국 출신 여부, 성별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선정된다. 최종적인 보고서 승인은 전체회의에서 과학자들이 작성자에게 질문을 던져 가며 ‘한줄 한줄’ 넘기는 식으로 이뤄진다. 6차 보고서 승인 회의에 정부 대표 자문단으로 참석한 김형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 예측운영과장은 “용어 하나하나의 뉘앙스가 괜히 매번 바뀌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일부가 논쟁 중인 사안인 것처럼 호도하기도 하지만, 이미 주류 과학계에서는 논쟁이 끝났다”고 말했다.

백보 양보해 후일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지금은 인류가 회의론을 버리고 기후위기에 대비해야 옳다는 게 과학계의 고언이다. 1992년 리우 선언부터 2021년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예방의 원칙’을 되새겨 왔다. 예방이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자각이었다. 손 교수는 “‘만에 하나’의 확률로 지금 학계의 얘기가 틀렸다 할지라도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대비 2도를 넘어설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디스토피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택현 김지훈 정진영 이경원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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