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2막은 의사”…46세 주부의 도전기
20년 만에 신입 레지던트에 도전한 46살 엄마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해.”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고 살아온 차정숙(엄정화)의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고군분투에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15일 4.9%(닐슨, 전국)의 시청률로 출발한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30일 6회 방송에서 13.2%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화제성도 잡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OTT 통합 화제성(4월 3주)에서 ‘닥터 차정숙’은 드라마 부문 1위, 주연 엄정화는 드라마 부문 출연자 화제성에서 역시 1위에 올랐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공감을 격하게 불러일으켰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육아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된 차정숙은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에게 잘하는 현모양처로 살아간다. 옷 한 벌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처지지만, 화목한 가정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지낸다. 5년 만에 드라마 주인공으로 복귀한 엄정화는 지난달 13일 제작발표회에서 “‘차정숙’ 캐릭터는 주변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이라며 “차정숙의 이야기가 나의 인생과도 닮아있어서 뭉클했고 많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차정숙의 변신은 간 이식 수술이라는 인생의 고비를 만나면서다.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화목한 가정 안에 아내·엄마·며느리만 있었을 뿐 인간 ‘차정숙’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잊고 있었던 의사의 꿈을 다시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현실에 치여 꿈을 잊고 살던 전업주부가 각성의 계기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찾는 과정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하게 그려졌다. ‘닥터 차정숙’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차정숙의 경우 다른 남성이나 우연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다시 의사에 도전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면서 이야기는 가팔라진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상황과 구도, 인물 관계 등 드라마 속 장치들은 어쩌면 낡았지만 ‘굵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며 “차정숙이 다시 의사가 되는 이야기 전개는, 시청자 입장에선 현실에서 실행하기 힘든 선택이라는 점에서 대리만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참고만 살던 차정숙이 수술 성공 이후 바람피우는 남편, 자신을 가정부처럼 대하는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잘 나가는 외과 과장인 남편의 무시와 편견에도 차정숙은 보란 듯이 레지던트 시험과 면접에 합격한다. 자신을 억누르던 굴레를 스스로 시원하게 뚫고 나간 것이다. 40~50대 가정주부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층도 그를 응원하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들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사이다 코드’는 요즘 인기 드라마의 필수 요소”라면서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복수극이 아니더라도 가볍고 코믹스럽게 ‘사이다’를 느낄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찰떡 캐스팅’도 인기 요인이다. ‘닥터 차정숙’이 기획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다. 김성수 평론가는 “배우를 선택했다기보다 배우들이 살아온 과정이나 필모그래피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캐스팅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당당함과 도도함의 ‘아이콘’인 엄정화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여성으로 나오면서, 거기서 오는 괴리감과 불편함을 영리하게 사용했다”는 분석이다. 차정숙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동료 의사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명세빈의 경우도 “청순하고 참한, 비련의 여주인공과 같은 배우의 이미지를 적절히 이용해 반전의 포인트를 노렸다”고 짚었다.
무거운 상황도 코믹하게 그리는 특유의 전개 방식 역시 드라마의 강점이다. 차정숙은 끝내 간 이식을 해주지 않은 남편 서인호(김병철)에게 차진 욕설을 던지는가 하면, 같은 병원 의사인 남편과 아들이 모두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남편이 죽었다”며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 병원 안에서 가족 관계를 숨긴다는 설정 자체에서 잔잔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배우 김병철은 겉으론 잘 나가는 외과 의사지만, 마마보이에 허당끼 있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정덕현 평론가는 “복잡하지 않은 인물 구도 안에서 공감과 유머를 담아내 폭넓은 시청층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면서 “기획 단계부터 대중적인 코드를 잘 맞춘 작품으로 보인다”고 흥행 요인을 분석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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