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은행권 위기 거의 마무리"...퍼스트리퍼블릭 인수(종합)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과 주가 급락에 시달려온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결국 파산절차를 밟으며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된다. 미 역사상 두 번째 규모의 은행 파산이자, 올 들어서만 네 번째 은행 실패 사례다. 다만 JP모건이 또 한번 은행위기 사태의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당장 글로벌 금융 불안을 가중시켜온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의 평가가 나온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이번 인수로 은행권 위기가 거의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내놨다.
'위기설' 퍼스트리퍼블릭, JP모건에 인수...美 증시 개장 전 긴급 발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일(현지시간) 새벽 보도자료를 통해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부가 퍼스트리퍼블릭을 폐쇄하고 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했다면서 "예금자보호를 위해 JP모건과 자산·부채이전(P&A) 방식의 인수 계약을 맺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오후까지 진행한 경쟁 입찰에는 JP모건, PNC파이낸셜그룹, 시티즌스파이낸셜 그룹 등이 참여했고 최종적으로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 인수자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JP모건은 퍼스트리퍼블릭의 예금 1039억달러(약 139조3300억달러)를 모두 인수하고 자산 2291억달러 중 대부분을 매입하게 된다. 미국 내 8개 주에 위치한 퍼스트리퍼블릭의 84개 지점 역시 1일부터 JP모건체이스 은행 지점으로 영업을 재개한다. 구체적인 인수가격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파산관재인인 FDIC는 이번 인수계약의 일환으로 약 130억달러가량 퍼스트리퍼블릭의 미실현 손실 일부를 부담하고 JP모건에 500억달러 상당의 자금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이먼 회장은 즉각 성명을 통해 “정부가 우리와 다른 기업들에 나서도록 권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며 “우리의 재무 건전성, 역량 및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예금보험기금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실행하기 위한 입찰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인수는 우리 회사 전반에도 어느 정도 이익을 가져다주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며, 우리의 자산전략을 더욱 발전 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기존 프랜차이즈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퍼스트리퍼블릭의 자산은 3월 말 기준으로 2330억달러(약 312조4500억원)다. 리먼브라더스 등 투자은행을 제외할 경우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워싱턴 뮤추얼에 이어 미 역사상 두번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올 들어서는 지난 3월 폐쇄된 실버게이트, SVB,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미국에서 네 번째로 문을 닫은 은행이 됐다.
미국 내 14위권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 지난 3월 SVB 파산 이후 줄곧 위기설에 시달려왔다. SVB처럼 예금보험으로 보호되지 않는 예금이 많은데다 저금리 대출에 노출된 탓이다. 퍼스트리퍼블릭마저 무너질 경우 은행권 위기가 한층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지난 3월에는 JP모건을 비롯한 미국 11개 대형은행이 총 300억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긴급 조치로 한숨 돌리는가 했던 퍼스트리퍼블릭은 지난주 실적발표에서 1분기에만 무려 1000억달러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재차 위기설의 중심에 섰다. 3월 초만해도 120달러 수준이었던 주가가 98% 폭락하자 결국 은행권 전반의 위기로 번질 것을 우려한 당국은 퍼스트리퍼블릭의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 개입을 결정하게 됐다.
당국은 지난 주말동안 인수자를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현행법 상 미국 내 예금의 10% 이상을 보유한 은행은 다른 은행을 인수하지 못하지만 이 또한 예외를 뒀다. 미국 증시와 은행 영업이 시작되기 전인 이날 새벽 긴급 조치를 발표한 것 역시 시장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다. 미 재무부 대변인은 이날 JP모건체이스 은행의 인수와 관련해 "재무부는 예금보험기금이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모든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기관(퍼스트리퍼블릭)이 해결돼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또 구원투수로 나선 JP모건...상업용 부동산 등 우려도 여전
미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이번에도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JP모건은 워싱턴 뮤추얼, 베어스턴스 등을 인수하며 금융시스템 우려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었다. 자칫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막아서는 것이 JP모건으로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을 인수하며 최근 은행 위기를 재점화해온 혼란스러운 붕괴를 막았다"면서 "미 역사상 최대 은행 파산인 워싱턴뮤추얼, 두 번째 규모 파산인 퍼스트리퍼블릭 모두 JP모건이 실질적으로 소유중"이라고 보도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다이먼 회장은 SVB 파산 직후 퍼스트리퍼블릭을 지원하기 위한 대형은행들의 초기 논의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현지 언론들을 종합하면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당시 다이먼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간 은행들의 지원 논의를 주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후 다이먼 회장은 대형은행 CEO들과 일일이 통화해 이들을 설득해냈다. 이에 현지에서는 1907년 공황 발생 당시 JP모건 설립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이 해결사로 활동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JP모건의 역할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JP모건의 인수 결정으로 당장 퍼스트리퍼블릭의 위기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은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이먼 회장은 이날 오전 애널리스트들과의 통화에서 "더 작은 은행들에서도 (문제가) 더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인수로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며 "위기의 이 부분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스티븐 캘리 예일대 경영대학원 선임연구원 역시 “초기 패닉의 마지막 단계다. 퍼스트리퍼블릭의 문제는 SVB, 시그니처은행으로 인해 시작됐다"면서 "지금은 한 은행이 무너지면 투자자들이 그 다음 흔들리는 은행에 집중했던 2008년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우려도 여전하다. 당장 상업용 부동산담보대출 등 자산 부실화가 또 다른 은행권 위기의 불씨로 손꼽힌다. 워런 버핏의 멘토로 꼽히는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전날 공개된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은행들이 대규모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화로 위기에 몰리면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업용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나쁜 대출'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MF)은 총자산 2500억달러 미만인 미 은행들이 전체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은행 대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4분의3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상당한 여파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실시한 4월 글로벌 펀드 매니저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절반 가량이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향후 광범위한 신용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시장에서는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 연체율이 최근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큰 폭 하락한 가운데 자본조달 비용은 급증했고 리파이낸싱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 4위 은행인 웰스파고의 올 1분기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은 1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에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총 4500억달러다. 여기에 신용경색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 언제든 은행권 위기가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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