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떠나도 세금은 따라간다… 주요국 ‘국적포기세’ 도입
美, 年 1600억 달러 규모 탈세 저지
OECD· EU 중심 규제 확산 추세
2011년 9월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세버린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인터넷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를 앞둔 시점에서 미국을 떠난 이유는 세금 때문이었다. 미국 국민은 세계 어느 곳에 거주하든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 현재 미국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은 39.6%에 달한다. 당시 세버린이 보유한 페이스북 주식 4%는 38억4000만 달러 규모였다. 세버린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 국세청(IRS)에 내야 할 세금 6700만 달러를 면제받게 됐다. 대신 미국 정부는 세버린에게 국적포기세(Exit Tax)를 적용했다. 세버린이 가진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간주해 금융소득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는 국적포기세의 존재감이 드러난 사례다. 미국은 2008년부터 시민권자 또는 국적포기일 직전 15년 가운데 8년 이상 미국에 거주한 영주권자가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포기할 경우 전 세계 모든 자산을 양도한 것으로 가정해 국적포기세를 과세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소한 국적포기세가 알려진 건 국회 인사청문회 때였다. 박근혜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됐던 김종훈 전 미국 벨연구소 소장은 1조원대 자산가였다. 15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유리시스템즈라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성공한 재미동포였던 김 전 소장이 한국의 장관 후보에 오르자 이중국적이 문제가 됐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대신 1000억원에 달하는 국적포기세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겠다고 밝혔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진사퇴했다.
거액의 국적포기세는 미국이 자본이득에 대한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에서 비롯됐다. 소득세 부과 대상은 순자산액 200만 달러 이상인 대재산가나 국적포기일 이전 5년간 평균 소득세 신고액이 약 16만 달러를 넘는 고소득자다. 면세금액(69만 달러)를 넘는 액수에 10~39.6%(보유 1년 이하 재산), 20%(1년 초과) 세율이 적용된다.
미국이 국적포기세를 도입한 것은 높은 세금을 피해 미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1998년 398명에 불과했던 미국 시민권 포기자는 2016년 처음으로 5000명을 넘긴 뒤 증가 추세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 부채가 늘자 추가 세수 확보에 돌입했다. 이런 기조 하에 2010년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을 제정했다. FACTA에 따라 해외 금융 계좌에 5만 달러 이상을 예치해 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정보는 현지 금융기관을 통해 의무적으로 IRS에 통보된다.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이자 소득의 최대 30%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 법을 통해 미국은 매년 16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유층 역외 탈세를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적포기자도 덩달아 늘게 됐다. 결국 국적포기세는 수천 명의 해외 이탈로 인한 세수 부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도 국적 포기자에 대한 과세 제도를 두고 있다. 세금 부과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국적 포기자의 모든 재산을 시가로 양도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일본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은 미국 등과 비교해 세금 적용 범위가 좁은 ‘국외전출세’를 채택하고 있다. 국적 포기자의 재산 가운데 유가 증권 등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캐나다는 국외이주 직전 10년 가운데 5년 이상 본국에 거주했던 사람을 대상으로 국적포기세를 적용한다. 거주자 지위를 포기하는 시점에 보유한 재산을 시장가치로 처분한 것으로 간주해 과세하는 식이다. 일본은 2015년 7월부터 국외전출 과세제도를 시행했다. 일본에 5년 이상 거주한 사람 가운데 유가 증권 등의 합계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가 대상이다. 이들이 국적을 포기할 시 손익이 실현된 것으로 보고 산정한 소득세를 과세한다.
국적포기세나 국외전출세와 같은 외국 전출 시 규제를 두는 국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 관련 규제 도입을 제안했고, 유럽연합(EU)도 2016년 회원국을 대상으로 출국세 시행을 권고했다. 2016년 기준 관련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OECD 35개국 중 20개국에 그쳤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후발 국가들도 잇따라 국외전출세 도입에 나선 상황이다. 세계화 시대에 해외 이주를 통한 부자들의 세금 회피는 사실상 모든 나라가 겪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국외전출세를 두고 내홍을 겪었다. 프랑스는 80만 유로 이상의 주식·채권이나 한 기업의 주식 중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거주자가 해외로 자본소득을 옮길 경우 최대 30%의 세금을 물리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 때인 2012년 시작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국외전출세 폐지를 공언했다. 프랑스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이듬해 국외전출세를 폐지하는 대신 완화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부자들을 감싼다는 내부 여론에 밀린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해외 이주 뒤 15년 이내에 자산을 매각하는 이들에게 국외전출세가 부과됐지만, 이를 ‘2년 이내 매각’으로 시점을 조정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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