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쉬니 이런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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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준 기자]
"아빠, 갔다 올게. 안녕!"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나는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아직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서 현관 앞으로 마중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쓰리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아 보고자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했더니 출퇴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다. 그만큼 14개월 된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에 육아정책연구소는 '평등한 돌봄권 보장을 위한 자녀 돌봄 정책 개선방안 연구' 보고소를 발간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취업자 부모 163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일주일간 평균 노동일수는 4.7일로 나타났으며, 노동시간은 38.3시간이다. 다행히 대부분 주 5일 근무제와 40시간 근무 범위를 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보고서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 부분은 자녀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단 1.3시간뿐이었다.
시간 빈곤자의 하루
시간 빈곤(Time Poverty)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통상 '여가(자유)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즉 실제로 노동하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출퇴근 준비, 소요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하루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지원(2015)의 연구나 신영민(2021)의 연구를 보더라도 시간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비율이 20%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 주 69시간처럼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녀 돌봄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되는데, 그럼 또다시 시간 빈곤 늪에 빠지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내 생활을 돌아봐도 아들을 평일 기준 하루에 1시간도 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들의 하루 스케줄과 내 스케줄이 맞지 않다보니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퇴근하면 아들 방에 설치한 홈카메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는 모습만 보거나 와이프가 찍어둔 아들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 아들의 생활표 |
ⓒ 백세준 |
아들과 나는 아침 6시쯤 기상한다. 비몽사몽한 아들은 와이프가 챙겨 아침밥을 주고, 나는 화장실로 가서 출근 준비를 위해 씻는다. 씻고 나온 후 출근하기 전까지 아들이 아침밥 먹는 모습을 본다. 약 30분 정도 옹알이로 대화를 하고 뽀뽀하고 안아주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다. 아들은 아들대로 와이프와 스케줄을 보내고, 나는 9시부터 6시까지 사무실에 콕 박혀 있는다.
그리고 6시 칼퇴를 해서 집으로 달려가더라도 저녁 7시가 넘으며, 이때는 이미 아들이 꿈나라로 갔을 때다. 아마 대부분 직장인 부모라면 이러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근무시간이 지금보다 줄거나 혁신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시간 복지가 필요하다
빈곤은 필연적으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시간 빈곤도 시간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시간 불평등은 다양한 영역에서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출생률이 0.78인 지금 상황에서는 돌봄 시간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 에스핑-안데르센은 일찍부터 돌봄의 양극화 문제를 강조했다. 돌봄 시간에서도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현대로 오면서 이것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소득과 저소득, 고학력과 저학력 부모 간에 돌봄 시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지금까지 평등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누구에게나 24시간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간 빈곤도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모두 다르다. 쉽게 말해 부유한 사람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여가활동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과정도 모두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독일은 육아휴직제도라는 명칭 자체를 이미 2001년에 '부모시간'으로 변경했다. 그만큼 돌봄을 시간복지 차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육아휴직은 단순히 경제활동 중단의 의미가 아니라 자녀 돌봄 노동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도 물론 육아휴직제도나 단축근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육아휴직 같은 경우는 노동자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조직문화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개선 과제' 보고서를 보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자는 약 31만 명이지만, 실제 쓴 사람은 약 6만 명으로 21.6%에 그쳤다. 이는 OECD 국가 중에 꼴찌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가 크게 화두가 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단순히 '몇 명 낳으면 얼마'와 같은 1차원적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 액수가 1명당 억 단위가 아닌 이상은 많은 부모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합리적인 해결 방법은 일과 가정 양립과 같은 시간 복지 제도다.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
5월은 5월 1일 노동절, 5월 5일 어린이날, 5월 29일 석가탄신일 대체공휴일로 공휴일이 3개가 있다. 사실 노동절은 법정 공휴일이 아닌 '법정 휴일'이라 모든 근로자가 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황금 같은 주말과 월요일 하루를 더 쉬면서 아들을 돌볼 수 있었다.
나는 평일에는 아들을 약 30분 정도 얼굴을 보고, 본격적으로 육아를 함께 하는 날은 바로 주말이다. 이번 주말과 꿀 같은 노동절을 와이프와 함께 육아를 분담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밥,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할 때, 나머지 사람이 아들을 전담마크하면 된다. 함께 하는 육아는 조금이나마 수월해진다.
내 입장에서도 평일에 잠깐 보던 아들의 모습을 오래 보니 좋고, 평일 독박 육아에 지쳐만 있던 와이프가 웃는 얼굴로 변하니 이 얼마나 좋은 시간인가.
어른들은 나보고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지금 곱씹어보니 일만 하느라 시간 빈곤에 빠져 아들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자주 보지 못해 아들의 변화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이번 주말과 노동절 휴일을 통해서 아들이 스스로 서고, 몇 발짝 걸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넘어지려는 아들을 와락 안아주었을 때, 나는 한 달에 아동 수당 10만 원, 부모급여 35만 원보다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참고문헌
국회입법조사처(2021). 육아 패널티의 현실,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개선 과제
신영민(2021).시간빈곤인의 노동시간 특성에 관한 연구.노동정책연구,(),37-68.
서지원(2015). 맞벌이가정의 시간사용 실태와 시간빈곤,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 2015년 추계학술대회자료집, 8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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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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