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팔린 줄도 몰랐다…2조원 CFO, 당국 안일한 대응에 위기 불쏘시개 되나
올 들어 미국에서 PE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구조화금융상품인 CFO(펀드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Fund Obligations)의 판매가 중단된 가운데, 우리 금융 시장에도 이미 2조원가량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최근 북미 시장에서 CFO를 더는 판매하기 힘들게 되자 글로벌 PE는 한국 금융 시장을 대상으로 CFO 판매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이 이렇지만, 금융당국은 CFO의 국내 판매 현황 파악은커녕, 재무건전성 왜곡 우려 등에 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부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KKR 3개 펀드에 1.5조 투자
한국 금융사가 40% 차지
PE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KKR의 3개 PE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CFO에만 한국 시장에서 1조5000억원가량 투자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CFO는 국내 보험사와 공제회가 주축이 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KKR은 북미와 아시아 등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자금을 유치했는데, 총 투자 금액의 40%가량을 한국 금융사들이 출자했다. 금융권에서는 KKR을 포함해 한국 시장에서만 최근 수년간 2조원가량이 CFO에 투자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PE 관계자는 “CFO의 판매 수수료가 높은 편이어서 글로벌 PE에 CFO를 한국에 팔자는 IB의 적극적인 제안이 적지 않은 분위기”라며 “2014년 말 서울 사무소를 개설한 뒤 해외 대체 투자에 주력하는 미국의 IB ‘그린스렛지(GreensLedge)’에서 CFO 마케팅을 다수 맡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CFO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아닌 특화 신용평가사인 크롤본드레이팅(KBRA), 이건존스(Egan-Jones) 등이 주로 A등급을 부여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아닌 곳에서 부여한 A등급을 받아주는 나라는 북미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한국의 보험사나 중소 금융사에서는 특화 신평사의 A등급도 대부분 받아준다”며 “이들 신평사 등급을 인정해주는 나라는 북미 외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CFO를 마케팅할 수 있는 나라는 이제 한국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추적 힘든 ‘그림자 금융’ 확산
가이드라인 없는 당국
사정이 이렇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CFO에 관한 명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1~2월쯤 미국에서 CFO가 세계 금융 시장의 ‘깜깜이 부실’을 확산할 뇌관으로 지목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국내 보험사, 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CFO 현황을 파악해 알려달라’는 메일, 유선 연락 등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금융사들은 ‘해당 사항 없음’ 등으로 회신한 것으로 파악됐다.
운용사를 둔 M금융그룹 관계자는 “올 초쯤 금감원에서 자산운용 쪽으로 ‘업계에서 CFO 관련 상품을 취급하는 회사를 아느냐’고 유선상 연락이 와 ‘알지 못한다’고 회신했다”며 “우리 그룹 계열에서는 CFO 관련 상품을 취급하고 있지 않고 이후 공문 등 추가 질의는 없었다”고 들려줬다. 보험권에서는 금감원이 생손보협회를 경유해 CFO 현황 파악에 나섰지만 적지 않은 보험사가 ‘해당 사항 없음’으로 회신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상당수 보험사가 KKR의 CFO에 이미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금융당국에는 ‘해당 사항 없음’으로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이유로는 몇 가지가 지목된다.
무엇보다 우리 금융 시장에서 CFO에 관한 명확한 정의가 모호한 상황이다. 가령, 미국 시장에서는 주로 상장, 비상장 주식과 그로스 펀드(Growth Funds) 수십 개를 하부 펀드로 담은 CFO가 전형적인 구조로 평가된다. 하지만, CFO는 이를 기반으로 고도의 구조화 금융 기법이 적용되면서 여러 변형(Variations)이 이뤄졌다. 실제 국내에 판매된 CFO는 하부 펀드를 PE의 바이아웃·부동산 등 대체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되 채권 등 크레디트 투자를 절반가량 결합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한 대체 투자 전문가는 “대부분 CFO가 주식 등 위험자산을 편입한 PE 펀드와 크레디트 투자를 섞은 뒤 이를 유동화해 신용등급별로 쪼개 판다”며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PE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구조화채권에 투자했지만 이게 전형적인 CFO의 구조가 아니라고 판단해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기관 투자자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관련 현황을 파악해봤지만 실제 익스포저는 거의 없었고 보험사 담당자들은 CFO의 존재 또는 위험 구조 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투자 관심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들여다보면, 금융당국에서는 이미 시장에 풀린 CFO가 2조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KKR의 PE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CFO에 국내 보험사 10여곳이 투자했다는 점에서 ‘투자 관심이 높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도 우리 금융 시장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PE들이 편입한 자산에 내재돼 있던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그림자 금융(Shadow Bank)’이 시스템 리스크의 뇌관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그림자 금융은 사모펀드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은행 역할을 대신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 것을 일컫는다. 이때, ‘그림자’는 감독당국에 의해 추적, 관리되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림자 금융은 2007년 잭슨홀 미팅에서 처음 사용됐지만 금융 시장에서 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화두가 됐던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부실 대출채권에 우량채권을 섞어 등급별로 나눠 증권화한 CDO가 세계 금융 시장에 위기를 확산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자 그림자 금융이 도마에 올랐다.
CFO와 CDO 같은 그림자 금융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위기가 현실화됐을 때 공적 자금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별문제 없이 리스크 관리가 가능했지만 고금리 국면에서는 하나둘 잠재 부실이 현실화하는 중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3대 PE 중 한 곳인 블랙스톤이 뉴욕 맨해튼 지구에 11개 아파트 빌딩을 담보로 실행한 대출 2억7000만달러가 디폴트에 처할 위험에 놓였다고 무디스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맨해튼 일대 임대료가 오르고 있지만 11개 건물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급등하면서 부채를 모두 커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이 부동산은 변동금리 부채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 급등에 따른 위험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역시 PE가 보유한 부동산 펀드를 유동화해 신용등급별 대출채권을 금융사에 팔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CFO와 그 구조가 다르지 않다.
특히 PE가 보유한 자산의 상당수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이런 비유동성자산은 먼저 파는 사람이 가장 적게 손실을 보기 때문에 위기 국면에서 누군가 팔기 시작하면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담보자산 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져 ‘마진콜(증거금 부족 상환 요구)’이 발생할 경우 시장 전반의 유동성 손상으로 확산될 수 있다. 한편, KKR과 칼라일 서울사무소 측은 ‘CFO를 한국 금융사에 판매한 적 있는지’ ‘본사 차원에서 판매 계획을 논의했는지’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GSB 교수는 “PE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CFO는 CDO와 비슷하게 채권(bond)과 지분증권(equity tranches)으로 투자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데, CDO보다 훨씬 많은 30% 정도까지 지분증권으로 발행이 되는 것이 관행”이라며 “지분증권은 가장 위험이 많은 증권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CFO의 건전성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PE 펀드는 이미 레버리지가 돼 있을 수도 있으며 레버리지가 투입된 자산을 구조화된 상품으로 투자할 경우, 채권트렌치 투자자가 현금 지급을 받기 전 레버리지 때 자금을 빌려준 투자자가 먼저 지급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CDO에 적용이 됐던 규제와 비교해 CFO의 경우 미비점이 없는지 정교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TRS, 키코, 해외 부동산 펀드…CFO까지
1997년 한국을 초유의 경제위기로 몰아넣었던 금융 상품은 이름도 생소한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ap)’라는 파생금융상품이었다. 1997년 초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에 태국 바트화와 연계된 TRS라는 상품을 팔았다. TRS는 쉽게 말해, 계약 상대방이 서로 현금흐름을 교환(스와프)하는 계약이다. 크게 보면, 불확실한 현금흐름(환율, 주식 등)을 고정 현금흐름과 맞바꾸는 구조다. JP모건이 한국 금융 시장에 판 TRS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을 우리 기업이 갖는 상품이었다. 태국 바트화가 오르면 이득을,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식으로 설계됐다. 당시 태국 바트화는 고정환율제였으므로 ‘바트화 폭락’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꾐에 넘어가 위험을 간과했다. 계약 직후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바트화는 폭락했고 국내 기업은 8억600만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봤다.
다음 위기는 키코(KIKO)였다. 2000년대 중반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들이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환율파생상품을 대거 팔았다. 원화 가치가 약정된 범위 사이에서 변동한다면 기업에 유리한 것으로 인식되며 중소기업들이 앞다퉈 가입했지만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봤다. 이때도 복잡한 상품 구조를 우리 기업들은 제대로 이해조차 못했다. 사실상 외국계 금융기관에 농락당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비싼 수업료를 치렀지만 우리 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이 위기를 분별하고 옥석을 가릴 역량을 갖췄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따른다. 외국계 금융기관이 한국 시장을 ‘호구’ 취급하는 분위기는 최근 대체 투자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각종 공제회를 비롯해 생명·손해보험회사들이 앞다퉈 대체 투자를 늘리면서 해외 대체 투자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독일 헤리티지 DLS’ ‘KB 호주부동산펀드’ 등 굵직한 금융 사고가 잇따랐다. 모두 안전하다는 확증 편향에 빠져 위기를 간과한 결과로 지적된다.
위기 검증 과정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령, KB증권의 호주 부동산 펀드 사기 사건은 해외에서 투자자를 찾지 못한 홍콩 브로커의 유혹이 단초가 됐다. 허술한 서류 조작을 KB증권과 JB자산운용은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복잡한 상품 구조를 면밀히 검증할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불확실성에 노출된 상황에서 외국계 금융사의 명성(Reputation)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한국 금융 시장 특유의 ‘쏠림’ 현상이 빚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금융기관은 ‘해외 대도시 오피스 빌딩 = 안전자산’이라는 도식 아래 비슷비슷한 투자처를 찾아다녔지만 최근 금리 급등으로 부실화해 줄줄이 충당금을 쌓는 중이다. 국내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는 “대체 투자 관련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기간에 해외 투자가 많이 이뤄진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에 사무소를 낸 해외 대체 투자기관이 늘어난 배경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출자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7호 (2023.05.03~2023.05.0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