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로 번 돈 500여 만원 두고 남편이 펄펄 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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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기자]
"당신은 이제 일하지 마!"
남편의 말이 내리꽂혔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심정이 들었지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이제 아이도 대학에 보냈으니 용돈도 벌고 이왕이면 가정 경제에도 보태고 싶었다. 일할 시간과 의지가 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세금에 대한 것이었다.
▲ <닥터 차정숙>에서 전업주부 시절의 차정숙(엄정화 분) |
ⓒ JTBC |
올 초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하는 부동산 경매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 한 번은 세무 특강이었다. 이날 강사로 초빙된 세무사의 한 마디가 뇌리에 꽂혔다. 우리나라에서 전업주부는 부동산을 소유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연말 소득정산 시 남편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소득 금액이 100만 원 이하, 순수 근로소득은 연 5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이때 말하는 연간 소득 금액이란 소득총금액-비과세소득-분리과세소득-필요경비를 말한다. 순수 연 근로소득은 매달 급여로 치면 333만 원 이하이다.
연말소득정산의 피부양자 자격 요건과 별개로 또 기억해야 하는 것은 건강보험료 지역가입자 전환 기준이다. 2022년 9월 변경된 법에 의하면 연소득 2000만 원 이상이면 지역가입자가 되어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연소득은 연간소득과 달리 금융소득, 사업소득, 총급여, 연금액, 기타 소득 등을 모두 합친 것을 말한다. 특히 주택임대소득은 1원이라도 있다면 부양가족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 재산 규모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몹시 복잡하게 들리지만, 결론은 하나이다. 세금과 의료보험을 아끼기 위해서는 주부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편이 안전하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주부들이 주로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알바를 하고 싶은데 연말 정산시 남편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될까", "지역 의료보험 대상이 될까"를 묻는 질문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어설프게 일하느니 일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답변이 나와도 쉽게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물론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을 다닐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50세 전후의 무경력 여성에게는 그런 일자리를 얻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 연말정산 기간의 세금 계산은 언제나 복잡하다. |
ⓒ 언스플래쉬 |
그제야 남편과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전화로 연결된 국세청 상담원은 내게 부양가족 자격 기준치를 살짝 넘는 소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그로 인해 남편의 연말소득정산에서 나의 인적공제 금액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한 모든 신용카드와 현금 실적, 보험료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갑자기 닥친 날벼락에 펄펄 뛰는 남편 앞에 나는 한없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 괴로웠던 것은 이제 내 명의의 신용카드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카드는 결혼 전 잠시 직장 생활 시절 발급받았던 것으로, 나의 경제적 자존심이나 다름없었다. 현금영수증 역시 내 전화번호로만 발급받았다. 그럼으로써 집안의 실질적 경제적 주체는 '나'라는 생각할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고 연말 공제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내 소득은 적을수록 좋았다. 남편 신용카드만을 사용하고 남편 전화번호로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경제적 존재로서의 나는 사라지는 편이 가정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어 시작했던 일은 오히려 나의 목을 죄어 왔다.
실생활에서 남편이 아닌 내가 살림의 모든 세세한 것을 챙겨왔건만, 법은 그런 공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4대 보험이 찍힌 명세서가 없다는 이유로 나를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서글프다 못해 화가 났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고 어떻게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을 사회로 이끌어내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의지에 의구심만 들었다.
전업주부도 직업이라며... 현실은?
우리나라 법은 전업주부도 직업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혼 시 전업주부의 재산 기여도는 40~50% 정도를 인정한다. 전업주부의 경제적 가치는 월 250만 원으로 산정하고 있다. 배우자 사이에서 10년간 6억까지는 비과세 증여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경제적 주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전업주부의 경제적 존재감은 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12월 6일, 이혼 소송 기사 하나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다. SK 그룹 회장 최태원씨과 그의 부인 노소영씨의 이혼 기사였다. 두 사람은 34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슬하에 세 자녀가 있었다. 노소영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로서 최고 학부를 나와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을 맡고 있는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그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친 남편의 옥바라지를 감당하면서 그룹 이미지도 관리해 왔다.
그러나 2015년 최 회장은 혼외 관계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노씨에게 이혼을 청구했다. SK그룹 측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작은 섬유 회사인 선경에서 시작한 SK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현재의 대기업, SK그룹은 대통령 집안과의 혼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노소영씨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부친과의 관계가 결정적이었음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며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가진 주식 보유분의 절반, 시가 1조 3천억가량 및 그의 퇴직금, 부동산, SK계열사 주식에 대해서도 분할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법원은 이혼 판결문에서 대통령 집안과의 혼사가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노씨 측의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며 혼인 후 부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한 50%의 분할만을 인정했다. 그 결과 노소영씨에게 인정된 것은 고작 위자료 1억 원과 현금 665억 원이었다.
물론 노씨 측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에 나섰다. 어찌 되었든 일반인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배경, 더구나 남편이 명백한 유책 배우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전업주부가 차지하는 경제적인 위치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전업주부로서 이 사건을 씁쓸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업주부의 경제적 잠재력 키우는 사회 되어야
물론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에 대해 이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법에서 그 기준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자녀 양육을 끝내고 사회 활동을 희망하는 전업주부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는 너무 제한적이다.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혹시라도 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들지는 않는지 고려해야 한다. 물론 많이 벌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결혼 후 집안 생활에 전념한 주부가 그렇게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직업으로 분류만 하면 뭐하나. 현실에서 전업주부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어야 하는 존재일 뿐인 것을. 진정으로 전업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하겠다면 그 경제력, 그리고 경제적 잠재력에 대한 충분한 재고가 필요하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로 잠깐 경제가 부흥했을 당시 인력이 부족하여 집에 있는 전업주부의 노동력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나왔다. 우리 정부도 그런 모습을 참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갈수록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은 부족해지고 있다. 잠재력이 큰 노동력을 사회로 이끌고 싶다면 그에 맞는 정책의 유연한 변화가 필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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