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당겨진 기시다 방한…과거사보다 미래 협력 방점 찍을 듯
강제징용 해법 발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등 그동안 한국 정부가 주도해 온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에 일본이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오는 7~8일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이후 50여일 만에 양 정상의 상호 방문이 가동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강제징용 해법 발표 직후 한국 정부가 줄곧 강조해 온 호응 조치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해법을 설계·도출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작업을 이끌어 온 만큼 향후 이어질 협력 강화 프로세스의 단초는 기시다 총리가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기시다 총리는 징용 해법의 완결성을 위해 절반이 비어있는 물컵을 채워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징용 해법을 발표하며 “이제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 성과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지난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발언)는 포괄적 입장을 넘어 더 분명한 과거사 사죄 메시지가 나오는 지에 달려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당초 6~7월로 조율 중이던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이 갑작스럽게 앞당겨지며 한·일 실무 협의는 물론 일본 내부적으로도 방한 보따리를 꾸릴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을 본격 협의해 왔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 등 대형 외교 이벤트가 겹치며 일본 측에서 지난달 갑작스럽게 조기 방한 문제를 타진해 왔다”며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2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정상회담인 만큼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거나 성과를 극대화하기엔 시간이 빠듯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통상 국가 정상의 상대국 방문은 정상회담 주요 의제와 일정·동선 등을 2~3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은 실무 준비 기간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일본의 호응 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 온도차 역시 여전하다.
결과적으로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을 통해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사죄를 표명하는 입장을 내놓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인 사죄 표명이 상승 추세인 내각 지지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일본 국내 정치적 우려가 강한 탓이다.
또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간사장 등 일본 자민당 내부에선 '과거사 사죄 불가론'이 여전히 강경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 측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직접 언급하는 것마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은 일본의 구체적인 호응 조치를 기대하지만 정작 일본은 50%를 돌파한 내각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고 한·미·일 공조의 윤활유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시다 총리 방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조치를 환영하며 협력 확대를 강력 지지한다고 밝힌 만큼 기시다 총리가 방한 때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일 양국은 일단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에서 과거사 문제는 최대한 로우키(low-key)로 나서되 미래 지향적 협력 의제를 발굴·강조하는 데 협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선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일본과 파운드리(위탁 생산)에 특화한 한국 간 반도체 협력 필요성이 강조될 예상이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1일 YTN에 출연해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사과 필요성에 대해 “딱 부러지게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국민들께서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니까 이런 좋은 일도 있구나’라고 느끼실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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