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앞 "남편 죽었다" 한방 날린 엄정화…6회만에 13% 뚫었다

어환희 2023. 5. 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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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다. 사진 JTBC

20년 만에 신입 레지던트에 도전하는 46살의 전업주부가 자신을 걱정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엄마는 강한 존재다. 단 전제가 있다. 자식과 가정을 지켜야 할 때 엄마는 강해진다.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은 엄마에 대한 이런 편견을 깬다. 왕년에 잘 나가는 엘리트였지만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고 엄마로 살아온 차정숙(엄정화)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강해진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차정숙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달 15일 4.9%(닐슨, 전국)의 시청률로 출발한 드라마는 4회 만에 10%를 돌파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6회 방송분은 13.2%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화제성도 잡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OTT 통합 화제성(4월 3주)에서 '닥터 차정숙'은 드라마 부문 1위, 주연 엄정화는 드라마 부문 출연자 화제성에서 역시 1위에 올랐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공감을 격하게 불러일으켰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육아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된 차정숙은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에게 잘하는 현모양처로 살아간다. 옷 한 벌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처지지만, 화목한 가정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지낸다. 5년 만에 드라마 주인공으로 복귀한 엄정화는 지난달 13일 제작발표회에서 “차정숙의 이야기가 나의 인생과도 닮아있어서 뭉클했고 많이 공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차정숙’ 캐릭터는 '나'의 이야기, 혹은 주변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이라며 “그래서 차정숙을 연기할 때 진정성이 느껴졌으면 했고, 촬영하면서 이 부분을 늘 리마인드했다.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40대 주부가 찾아 나선 인생…"카타르시스 선사"


간 이식 수술 이후 각성한 차정숙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의사의 꿈에 재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사진 JTBC
차정숙의 변신은 간 이식 수술이라는 인생의 고비를 만나면서다. 비로소 내면의 공허함을 직면한 차정숙은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화목한 가정 안에 아내·엄마·며느리만 있었을 뿐, 인간 '차정숙'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잊고 있었던 의사의 꿈을 다시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현실에 치여 꿈을 잊고 살던 전업주부가 각성의 계기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찾는 과정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하게 그려졌다. '닥터 차정숙'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차정숙의 경우 다른 남성이나 우연의 도움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다시 의사에 도전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면서 이야기는 가팔라진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상황과 구도, 인물 관계 등 드라마 속 장치들은 어쩌면 낡았지만 ‘굵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며 “차정숙이 다시 의사가 되는 이야기 전개는, 시청자 입장에선 현실에서 실행하기 힘든 선택이라는 점에서 대리만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참고만 살던 차정숙이 수술 성공 이후 바람피우는 남편, 자신을 가정부처럼 대하는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레지던트에 지원한 병원에서 잘 나가는 외과 과장인 남편의 무시와 편견에도 차정숙은 보란 듯이 시험과 면접에 합격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정주부로서 자신을 억누르던 굴레를 차정숙이라는 인물이 시원하게 뚫고 나간다는 매력이 있다”고 평했다. 40~50대 가정주부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층도 그를 응원하는 이유다. “시청자들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사이다 코드’는 요즘 인기 드라마의 필수 요소”라면서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복수극이 아니더라도 가볍고 코믹스럽게 ‘사이다’를 느낄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 포스터.

5년 만에 복귀한 엄정화 "차정숙, 내 인생과 닮았다"


배우들의 ‘찰떡 캐스팅’도 인기 요인이다. ‘닥터 차정숙’이 기획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다. 김성수 평론가는 “배우를 선택했다기보다 배우들이 살아온 과정이나 필모그래피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캐스팅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당당함과 도도함의 ‘아이콘’인 엄정화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여성으로 나오면서, 거기서 오는 괴리감과 불편함을 영리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차정숙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동료 의사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명세빈의 경우도 “청순하고 참한, 비련의 여주인공과 같은 배우의 이미지를 적절히 이용해 반전의 포인트를 노렸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폭 넓은 시청층을 끌어안았다. 사진 JTBC


무거운 상황도 코믹하게 그리는 특유의 전개 방식 역시 드라마의 강점이다. 차정숙은 끝내 간 이식을 해주지 않은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에게 차진 욕설을 날리는가 하면, 남편은 물론 역시 같은 병원 의사인 아들이 모두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남편이 죽었다”며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병원 안에서 남편과 아들 서정민(송지호), 차정숙이 가족 관계를 숨긴다는 설정 자체에서 잔잔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배우 김병철은 겉으론 잘 나가는 외과 의사지만, 마마보이에 허당끼 있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정덕현 평론가는 “복잡하지 않은 인물 구도 안에서 공감과 유머를 담아내 폭넓은 시청 층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면서 “기획 단계부터 대중적인 코드를 잘 맞춘 작품으로 보인다”고 흥행 요인을 분석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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