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우린 태평양 국가"…비난받은 마크롱 방중의 속내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이 증거하듯, 외교의 꽃과 열매는 정상 간에 이뤄진다. 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다양한 실무진들의 노력이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줘야 하지만,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고 항상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국가 정상의 외교력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난히 이목을 끈 인물이 있으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5~7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마주앉았다. 유럽연합(EU)의 수장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도 함께였지만, 주인공은 분명 국가지도자인 마크롱 대통령과 시 주석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EU 집행위원장까지 함께 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이후 뚜렷한 축이 사라진 EU의 핵심 인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호재까지 계산한 행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은 국제사회 일각엔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가장 큰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뾰족한 이슈로 각을 세우는 시점에, 미국의 전통 우방인 프랑스의 국가 지도자가 중국으로 직접 날아가 시 주석을 만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크롱 대통령은 귀국 비행기에서 일부 기자들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 이슈를 묻자 "우리(유럽)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유럽은) 미국의 추종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폴리티코 등 일부 미국 매체들 기자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실언으로 회자됐다. 마크롱의 방중 성적표는 이 때문에 초라한 편이다. 포린폴리시(FP) 등은 방중 직후 "마크롱이 시 주석에게 대만을 침공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쥐여줬다"고까지 비판하는 유럽 인사들의 기고문까지 실었다.
마크롱은 왜 그랬을까. 프랑스 외교부 초청으로 지난달 말 파리에서 다양한 정관계 및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물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핵심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번 방중의 방점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에 찍혀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마크롱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에 따르면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 6시간이 넘게 논의를 했으며, 주요 의제가 우크라이나였다고 한다.
한 인사는 "시 주석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정상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말고도 한 명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보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쟁 발발 후 첫 통화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때가 되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연락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통화 직후 "길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럽외교부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역시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프레임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은 프랑스에 중요한 파트너이며,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미국과의) 디커플링이 아니라, (중국과 관련한) 디리스킹(de-risking, 리스크 완화)"라며 "법치 및 (대만 관련) 현상(status quo) 유지 및 다양한 다른 가치들을 그대로 지켜가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방중으로 드러난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관련 스탠스는 미국 또는 중국의 양자택일이 아닌 미국과 중국 모두를 택하겠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문 타이밍은 팬데믹이 끝나길 기다려 이뤄진 것일뿐, 미ㆍ중 갈등이 고조되는 타이밍을 노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따져 묻자 프랑스 관계자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는 입장과, 중국의 대만에 대한 모종의 위협으로 현상이 바뀌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한 외교가 소식통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 유일한 EU 국가는 프랑스"라며 "프랑스 역시 태평양 국가로서 대만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만난 약 10여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프랑스는 태평양 국가"라고 강조했다. 물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 뉴칼레도니아 등 영토적 부분도 있으나, 그만큼 프랑스가 인ㆍ태 전략에 관심을 갖고 방관자가 아닌 핵심 플레이어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프랑스 측이 이번에 초청한 기자단도 한국과 일본ㆍ인도ㆍ호주의 인ㆍ태 지역에서 선발됐다. 파리 엘리제궁과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단에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여러분 국가의 인ㆍ태 전략은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가"였다.
또 하나, 프랑스 측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경제외교의 중요성이었다. 한 소식통은 미국과 중국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실제 여러 동맹국의 경제적 부담으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우려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한국 기업 역시 영향을 받은 것을 꼬집으며,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로선 자국 기업들을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과 동맹은 지키되, 경제 분야에 있어선 눈먼 동맹으로 남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그런 점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프랑스 정부가 마련한 이번 프로그램엔 프랑스 전력청(EDF)의 원자로 수출 담당 관련 설명도 있었다. 핵심 내용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했으나, 한국과의 경쟁관계를 의식한 듯한 발언도 나왔다.
파리=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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