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싱가포르]반바지와 콘서트…LIV 골프 들여다보니
확실히 우리가 알던 골프는 아니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만든 ‘논란의 중심’ LIV 골프. 현장에서 닷새간 둘러본 LIV는 예상대로 많이 달랐다. 골프라는 큰 틀에선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대회장 요소요소 어떻게든 다른 투어와 차별을 두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아시아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하는 LIV가 싱가포르 데뷔전을 마쳤다. LIV 골프 싱가포르라는 이름의 이번 5차 대회는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센토사 골프장에서 열렸다. 우승은 직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처음 정상을 밟았던 테일러 구치(32·미국)가 2주 연속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54억 원. 두 대회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122억 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연습일인 26일 마주한 LIV의 첫인상은 여유로움이었다. 익히 알던 골프 특유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를 먼저 반겨준 것은 높은 데시벨의 음악소리였다. 클럽하우스 주변은 물론 홀 곳곳에서 최신 음악이 흘러나왔다. 본경기가 아닌 연습라운드라 앰프가 쩌렁쩌렁 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 대회 1~2라운드 때도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 근처에서 작지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나마 승부가 걸린 마지막 3라운드에선 음악소리가 조금은 줄어드는 눈치였다.
경기시작 풍경도 여느 투어와는 다르다. LIV는 샷건 출발을 원칙으로 한다. 48명의 선수들이 16개의 홀에서 경기를 동시 시작한다(최종라운드 챔피언조만 11분 늦춰 출발). 그래서 코스 전체에서 갤러리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칠 수 있다. 샷건 시간이 되면 대회장 곳곳에서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며 라운드의 출발을 알린다. 다른 투어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를 두고 LIV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미교포 김시환(35)은 “LIV는 콘서트 같다”고 표현했다.
선수들의 차림새도 조금 달랐다. 전체 48명 중 90% 이상이 사흘 내내 반바지를 입고 뛰었다. LIV의 수장인 그렉 노먼(68·호주)은 지난해 9월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반바지 착용 허가를 발표했다. 반대로 이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필드에서 30년 넘게 경기 스코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SMT의 마크 레이몬드 씨는 “LIV의 큰 차별점 중 하나가 부드러움(soft)과 여유로움(relaxed)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골프 전통론자 입장에선 느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반항이다.
LIV는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돈을 대고 있다. 4년간 최소 20억 달러의 운영비를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우리돈으로 2조6800억 원이 넘는 액수다. 그러나 현장에서 중동 출신의 인사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대부분 유럽과 미국 출신의 실무진이 운영을 담당했다. 갤러리들로부터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한 노먼은 필드 안팎에서 선수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LIV는 올 시즌 14개 대회만 치른다. PGA 투어의 44개 대회와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컷 탈락도 없어서 사흘 내내 48명끼리 순위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놓고 불만을 표하는 선수는 없었다.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33)와 김시환은 “1년간 30개 가까운 대회를 뛴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여유롭다. 또, 팬들 입장에서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를 사흘 내내 볼 수 있다는 점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베테랑 세르히오 가르시아(43·스페인)는 “우리는 더 적게 플레이하기 위해 LIV로 왔다”고 했다.
결국 LIV의 현재 초점은 훗날 골프 시장의 핵심이 될 젊은 세대에게 맞춰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평균 10시간 정도 걸리는 다른 투어와 달리 LIV는 5시간이면 한 라운드가 끝났다.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겐 획기적인 변화다. 전통적이지 않은 반바지 착용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새로운 골프를 제시한 LIV는 아시아 공략을 마치고 12일 개막하는 털사 대회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센토사(싱가포르)=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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