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 고향세, 업무부담은 줄었는데, 기부자와 관계 인구까지 늘어나는 까닭은?
일본의 고향세 성공사례가 한국에 잇달아 소개되면서, 벤치마킹을 해보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시도해보려고 하면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고향세 특성상, 기부 홍보, 세액공제를 위한 행정처리, 답례품 개발, 선정, 발송, 기부자 대응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업무를 공무원 한두명이 담당하여 처리하기에는 업무 부담이 너무 크다. 더욱이 이런 분야에 전문성도 없어 업무는 더 어렵고 성과도 잘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고향세 관련 업무는 기피 업무가 되고 만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향세 담당 공무원이 한두명 정도인 지자체가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 이런 성공사례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걸까? 그 비밀은 적극적인 민관협력에 있다. 일본은 현재 기부홍보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플랫폼이 4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답례품개발이나, 고향세 관련 업무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위탁업무 대행사를 합치면 100여곳이 훌쩍 넘는다. 지역의 답례품들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업자 역할을 하는 지역상사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또, NGO 지정기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들의 경우도 있으니, 다양한 민관협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다양한 민관협력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이다. 다양한 기부자들의 니즈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플랫폼들과 지자체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다. 일본 최초의 민간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가입 지자체수가 전국의 96%를 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지자체가 후루사토초이스와 함께 일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지역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부자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모든 서비스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가현 아리타정(佐賀県有田町)의 고향세 담당자 하라구치 씨는 민간과의 협력 효과를 실감한 공무원 중 한 명이다. 이 지역에서는 지역이주민과 고향세 담당공무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2015년 아리타타운개발공사라는 DMO(지역관광추진조직)를 만들었다. 사가 쇠고기와 아리타 도자기 식기 세트를 고급 답례품으로 개발하여, 4개월 만에 3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았다. 이는 전년 대비 600% 증가한 수치였다. 또한, 기존에 봄에만 있던 도자기 축제를 색다른 테마로 가을에도 신설하는 등, 마을의 문화자산인 도자기를 새롭게 활용했다. 또, 이렇게 열심히 만든 답례품을 홍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민간 홍보전문기업과 연계해, 모금액이 20억 증가하는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다. 종전에 신문, 잡지 등 전통적인 인쇄매체를 활용하던 때보다 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효과였다.
“기존에 고향세 전담 직원은 1명으로, 또 1명의 계약직 직원도 있었지만 다른 업무도 겸임하여 항상 일손이 모자랐다. 당연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향세를 더 모아야, 지자체가 시행해야 할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돈을 투입하는 것이 조금 고민도 되었지만, 막상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니, 풍부한 노하우가 있었고, (내가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21년 9월부터 SNS 광고를 시작했고, 1년 만에 고향세 신청 건수는 1만여건 증가했으며, 기부금 또한 20억 가까이 증가했다. 기대를 뛰어넘은 성과였다. 이러한 성과가 나자, 지역의 답례품 사업체 등도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고향세 담당자가 되었을 때는 답례품은 1300여개였지만, 지금은 2000여개가 훌쩍 넘어설 정도이다.
또, 아리타 상공회의소 또한, 답례품 제공업자를 위한 세미나 개최, 홍보 전문가와의 연계 서비스 제공, 고향세 마케팅 전문팀 구성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마을의 고향세 확보를 위해 더 열심히 협력해주고 있다. 이렇게 마을 내 여러 조직이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도 민간 전문가와 함께하며 생긴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한다.”
아리타정의 사례처럼,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고향사랑기부제도 민간의 우수한 전문가들과 협력한다면,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제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제도 취지도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일본 내에는 40여개의 민간플랫폼이 존재한다. 그 중, 홍보 업무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업무 종합 서포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토후루‘도 지자체와 사업자의 이용 선호도가 높다. 사토후루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부금 접수, 운영, 정산‘의 일련의 과정을 단 하나의 툴로 쉽고 빠르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우편으로 온 기부증서 등 수기로 작성된 자료를 데이터 전산화 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당연히 오류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상에서 기부한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편의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답례품의 등록등과 관련한 사업자와의 협상, 조정 등의 업무도 사토후루에서 담당한다. 중간관리업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지자체 홍보 업무는 물론이고, 플랫폼을 통해 들어온 답례품 주문의 배송 및 재고 관리, 기부자 민원 대응 등도 전부 담당한다. 사실상, 공무원의 일을 혁신적으로 줄여주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AI나, 프로그래밍을 통한 자동화 시스템을 보다 빠르게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이다.
고향세는 ’세액공제‘라는 혜택의 특성 때문에, 연말에 기부가 몰린다. 한두 명의 공무원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업무가 부여되기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연말마다 타 부서에서 인원을 차출하거나, 어려울 경우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 속성상, 개인정보를 다뤄야 하며, 제도와 세액공제 시스템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아무나 이 업무를 진행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고향세 업무가 많지 않은 평시에 보조 인력들을 고향세 업무를 위해 교육시키거나 배치하는 것도 자칫 불필요한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런 딜레마는 민간플랫폼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단숨에 해결된다. 민간플랫폼들은 이 업무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 단기간 집중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필요할 경우 관련 인력을 파견하여 공무원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
교토부의 후쿠치야마시(京都府福知山市)의 고향세 담당 공무원도 사토후루를 이용하며 업무경감 효과를 톡톡히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다양한 민간플랫폼이 있지만, 사토후루는 그런 다른 민간 플랫폼의 데이터도 연동이 되기 때문에, 여러 민간플랫폼을 이용하는 데 드는 수고를 덜어 준다. 생산자들도 사토후루에만 답례품을 등록하면, 다른 플랫폼의 답례품 등록이 더 쉬워지기 때문에, 답례품목 등록이나 사이트의 활용에 제약이 없어졌고, 더 다양한 답례품이 생기고, 지역의 매력을 더 많이 홍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기부자 정보 등의 데이터 관리가 정확하고 쉬우며, 기부자 문의 또한 사토후루에서 도와주기 때문에, 기부자 문의에 응대하는 시간이 줄고, 전반적으로 업무 부담이 덜어져, 다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지역 농산물의 판로 개척을 위해 각 지자체마다 지역몰을 많이 만들지만, 사실상 지역몰에 납품하면서도, 동시에 네이버, 카카오 등 민간플랫폼에 입점하는 생산자가 많다. 설령 직영몰보다 민간플랫폼이 수수료가 더 비쌀지라도, 더 많은 대중이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에 상품을 노출하는 것이 적은 노력으로 상품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다. 플랫폼 자체적으로 가진 전문성을 활용하여 더 효과적인 타겟팅 홍보를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자 누구나 쉽게 등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툴을 설계하거나, 데이터 자동화 등을 활용하여 절대적인 업무 시간을 줄여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생산자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업무부담은 절감하면서 높은 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렇듯 공무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업무들을 도와 고향세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지역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민간이 존재했기에 일본의 고향세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는 온라인상에서 기부가 가능하게 되어있지만, 누구도 편하게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 지자체들은 기본적인 소개조차 원하는 형태로 올릴 수 없으며, 기부자들은 휴대폰 기종에 따라, 아예 답례품 화면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답례품을 선택하고 나서도 각종 오류에 시달리고 있다. 단순히 플랫폼의 기술적인 오류 개선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서 기부자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민원도 많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다른 제도들과 성격이 다르다. 지자체가 주도하고, 기부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고, 파급효과도 커질 수 있는 제도이다. 그리고 적절한 홍보를 통해 지자체와 기부자를 이을 수 있도록, 다양한 민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나친 제약이나 통제가 제도의 활성화를 더디게 할 수 있다. 오류나 개인 정보 보호는 기술적으로 보완해야겠지만, 이를 이유로 시작부터 활동을 제약하는 일은 없어야 할 듯하다. 제대로 활성화되기도 전에 사장되지 않도록, 중앙정부 주도가 아니라 지역의 자치와 주도적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 일본의 사례가 부럽지 않은 한국형 고향사랑기부제가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이연경 패어트래블재팬 법인장 celinn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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