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대낮에 벌어진 납치 살인... 핵심은 이것이었다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지역, 부를 향한 꿈과 욕망이 넘쳐난다는 강남 한복판에서 최근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23년 3월 29일, 서울 강남구에서 한 여성들이 의문 남성들에게 대로에서 납치되어 참혹하게 살해당한 후 시신이 유기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개인의 비도덕적인 일탈이나 원한의 문제가 아닌, 여러 세력들이 관여한 조직적이고 치밀한 '금융범죄'이자 '청부살해'였다는 놀라운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4월 29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다섯 명의 공범들 - 강남 납치 살인 미스터리' 편을 통하여 지난 3월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납치 살인 사건을 조명했다.
피해자 최은미 씨(가명)는 47세로 한 투자회사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밤 11시 42분, 최 씨는 늦게 퇴근하여 귀가하다가 집 근처 길가에서 의문의 남성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납치당했다. 최씨는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며 저항했지만 남성의 거친 완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납치범들은 최씨를 차에 태우고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다. 최씨가 납치당하는 과정은 CCTV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최씨가 납치된 곳은 강남에서도 아파트가 밀집해있고 다량의 CCTV에, 인근에는 파출소까지 위치한 지역이었다. 실제로 사건 당시에도 최씨의 비명을 듣거나 직접 목격한 주민들이 있었다. 대담하게도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범행은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건 발생 이틀뒤인 31일, 납치를 실행한 연지호와 황대한이 잇달아 검거됐다, 이들에게 최씨의 납치와 살해를 지시한 교사범이자 공범인 이경우 역시 체포되었다. 하지만 최씨는 안타깝게도 야산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들은 납치 3시간만에 최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사인은 마취약 과다투약이었고, 최씨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수 없을만큼 참혹한 구타를 당한채 유기된 상태였다.
여기에 경찰은 범인 3명 검거 후 5일만에 또다른 이들의 배후이자 공범으로 황은희와 유상원 부부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 부부가 이경우에게 최 씨를 납치 살해하라고 지시하며 착수금 7천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 범인 5인의 신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건에 대한 피의자들의 진술은 각기 엇갈리고 있다. 황씨 부부는 최씨 납치 살해에 지시도 가담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납치를 직접 실행한 황대한과 연지호는 범행 자체는 인정했지만, 여전히 돈을 받는 댓가로 이경우의 지시를 받아 벌인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경우는 황씨부부의 사주 여부와 본인이 살해 지시 여부에 대하여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현재 황대한과 연지호만이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한 상태. 이경우는 두 사람에게 살해 지시를 한 것과 황 씨 부부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또한 황 씨 부부는 자신들은 억울하다는 말만 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
범인들은 어떤 인물일까. 최씨와 일면식도 없던 황대한- 연지호와 달리, 이경우는 최씨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이경우는 과거 최 씨와 함께 P코인 발행 업체에 투자를 했던 투자자이며 최 씨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처음에는 이경우의 투자손실과 경제적 어려움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이경우는 2천만원을 빌린 이후에도 계속해서 최씨를 찾아와 돈을 더 빌려달라고 요구했고, 부담을 느낀 최씨가 이를 거절하면서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지인들은 이경우가 평소에 돈에 대한 집착과 허영심이 많았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이경우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최씨의 납치 살해를 사주한 교사범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경우는 특수부대, 황대한은 조폭 출신이었고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황대한의 친구이자 역시 조폭출신인 홍씨는 이경우-황대한과 종종 어울리면서 어느날부터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를 찾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황대한은 동네 후배로 친분을 맺은 연지호를 끌어들이며 직접 범행을 모의했다. 당시 연지호는 빚에 쪼들리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사건 당시 범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범행의 대담성이나 3개월이나 사전 준비를 모의했다는 진술과는 별개로, 곳곳에 허술한 점들이 드러나 의아함을 자아낸다. 납치 과정이 행인들에게 목격되고 CCTV에 포착되었고, 범행에 사용한 차량과 흉기 등을 길거리에 그대로 버리고 도주한데다,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시신마저 쉽게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했다. 이경우와 황대한을 잘 아는 제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소 치밀하고 집요한 성격의 두 사람이 이토록 엉성하게 범행을 벌였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전문가들은 계획에 없던 상황들이 생겨나며 벌어진 돌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구속된 황대한과의 접견에서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전해들었다는 제보자의 진술에 따르면, 연지호가 최씨를 납치하는 역할을 맡았고, 황대한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범인들의 차량 뒤에서 택시가 나타나면서 범인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연지호는 원래 계획상 없었던 이경우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고, 범행도구를 다급하게 유기하는 모습들도 해당 지역 CCTV에 포착됐다.
최씨는 납치 과정에서 범인들이 강제주입한 마취제 중독으로 사망했다. 범행에 쓰인 마취제는 성형외과 간호사로 근무하던 이경우의 아내가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들은 피해자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표창원 범죄심리분석전문가는 "납치를 위한 도구와 살해를 위한 흉기, 두 가지 목적이 모두 있어보인다"고 분석하며 처음부터 피해자의 살해를 염두에 둔 범행에 무게를 실었다. 마취제 과다투약으로 인한 살인이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황대한과 연지호가 이경우의 도움을 받아 살해도구까지 미리 준비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황대한은 지인을 통해 실패해도 5백만 원의 금전적 보상을 받기로 약속받았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대한과 이경우의 협박으로 마지못해 범행에 가담했다는 연지호 역시 성공 시에 3억 원 이상을 받기로 했다고 직접 진술했다.
이경우 일당 3인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배후에는 '회장님'이라는 의문의 인물이 등장한다. 경찰은 이들이 바로 황은희와 유상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며 본인도 투자자였던 최씨는 2020년 9월경 황씨 부부를 알게 되었다. 코인투자로 재력가가 되었다는 황씨 부부는 최씨와 함께 가상화폐 P코인 발행 회사에 1억 원을 투자해 투자자들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P코인은 친환경을 테마로 한 가상화폐였고, 이를 홍보하는데 가장 앞장선 것이 황씨 부부였다. 그들은 P코인의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설득하여 투자자를 대거 끌어모았다. 하지만 황씨부부는 코인이 상장되고나서 사기성 시세 조종 MM(마켓 마킹, 상품 거래가 원활하도록 인위적으로 조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행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P코인은 해당 코인은 최고가 10,300원을 찍었으나 한 달 만에 1천 원대로 급락했다. 놀란 투자자들은 황 씨 부부를 찾아가 항의했다. 투자자들은 황 씨 부부가 시세조종으로 코인 가격을 높게 올린 후 자신들이 보유한 코인만 모두 팔고 이익을 챙기고 빠져나가는 '먹튀' 행각을 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 씨 부부는 모든 책임을 최 씨의 탓으로 돌렸다. 투자자들과의 통화 녹취록에서 두 사람은 최씨를 비난하며 실제로 고소를 하기도 했다. 이들의 말만 믿고 최씨를 원망한 투자자들도 있었다. 오해가 커지자 최씨도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서며 서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최씨와 황씨 부부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점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경우였다. 그는 갈등 상황에 황 씨 편에 서며 유리한 진술을 해줬다. 이경우는 돈을 더 빌려주지않은 최씨와 결별했고, 황씨 부부는 이경우를 법률사무소에 취직하게 도와주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경우는 범행 전 유상원과 수차례 통화했고 범행 직후에는 직접 두 차례 만남을 가진 사실도 포착됐다. 경찰은 이경우가 최 씨 살해 후 6천만 원을 황씨부부에게 추가로 요구했다고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 부부가 이경우의 배후이며 이경우가 황대한과 연지호를 시켜 최 씨를 살해를 했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분석이다.
그런데 자산가로 알려진 황씨부부가 고작 1억원 때문에 최씨를 그토록 잔혹하게 살해하라고 사주한 것일까. 황대한의 지인인 제보자는 이경우 일당이 독단적으로 최씨를 제거하고 그녀가 원한 관계가 있던 황씨 부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덮어씌웠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황씨부부는 범행 사주를 강하게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경우 일당이 범행을 모의한 진짜 목적은 최씨의 전자지갑이었다. 이경우는 범행전 휴대폰의 전자 지갑 비밀번호만 알게되면 최소 수억에서 수십억에 이르는 코인을 마음껏 빼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비밀번호를 알아내기도 전에 최씨가 사망하면서 범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또한 황대한은 경찰 조사에서 최 씨가 보유한 코인이 수십억이 아닌 700만 원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창원은 "코인 지갑안에 막대한 돈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범인들 사이의 신뢰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고리였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래알처럼 와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최씨의 사망으로 가장 이득을 얻게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서 제작진은 또다른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 제보자는 사건 발생 전, 최씨가 코인 투자 피해자들과 자료를 모으며 P코인 발생 회사를 상대로 단체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했다. 최 씨는 외국에 거주하던 P코인 회사의 내부 고발자, 속칭 '고소미'와 접촉한 상태였고 비밀 접선을 앞둔 시점에 돌연 살해당했다.
이로서 P코인 발행 회사 대표이사인 '이 대표'라는 인물은 결국 최씨의 사망으로 가장 수혜를 본 인물이 됐다. 공교롭게도 그는 최 씨 사망 직후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으 의 요청에 필리핀에서 인터뷰를 약속했던 이 대표는 당일날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제보자들은 이 대표 역시 시세 조종으로 막대한 수익을 봤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버스마스크 사업등 다른 사업체의 사업을 마치 자신이 계약한 것처럼 속이고 홍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조만간 P코인이 대형거래소에서 상장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이 대표의 호언장담은 실현되지 않았고 올해 5월에는 기존에 상장된 거래소에서마저 상장페지를 앞두고 이다.
큰 피해를 입고 막막한 투자 피해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 바로 최 씨였다. 그녀는 투자 피해자들과 함께 이대표와 황씨 부부에 대한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투자 피해자들은 생전 마지막 모임에서 최씨로부터 "내부 고발자 고소미가 살해위협을 받고있다"는 생소한 이야기에 반산반의했으나 약 일주일뒤 정작 "최씨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최 씨가 정말로 사망하면서 내부 고발자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듯,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표창원은 이번 사건이 "과연 7천만 원이라는 착수금과 전자지갑 속 코인, 이것만으로 일어날 수 있는 범행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추가적인 범행 동기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확인한 이대표와 황씨 부부 외에 추가적으로 금전적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범행 성공시의 보수나 국외 도피까지 보장해 주고 지원해 줄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구일지 추적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현재 경찰은 황씨와 이경우중 누가 주범인지 확인되지않은 상태에서 추가 공범의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유족인 최민철 씨는 "돈있는 사람들이 공모해서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안타까워하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다음에 똑같은 피해자가 생기지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송말미에 이 대표가 서면을 통해 제작진에게 밝힌 입장이 공개됐다.그는 "최 씨의 추가 고소 소식을 이번에 들었다. 황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년 전이며 이경우는 누군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동기로 사건 모의했는지 모르며, 코인 관련 이야기도 언론 보도로 알게 되었다"라며 자신은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했다.
최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면에서는 돈과 이익에 매몰된 인간들의 탐욕, 더 구체적으로는 가상화폐 회사들의 무분별한 시세 조작 문제가 걸려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수도 있다. 거짓을 이용해 순식간에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근절하는 것은, 우리가 만든 꼼꼼하고 현명한 제도에 의하여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최 씨를 나오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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