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건의 핵심은 부산 저축은행 사태다"
[이영광 기자]
2021년 하반기부터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이다. 초대형 부동산 비리 사건으로 꼽히는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중심에 머니투데이 부국장을 지낸 김만배 씨와 2016년 국정농단 특검을 맡았던 박영수 변호사가 있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 <시사 직격>의 한 장면 |
ⓒ KBS |
- 지난 21일 방송된 KBS 1TV <시사 직격> '대장동 카르텔의 기원-만배 형과 영수 형' 편 <뉴스타파>와 공동 기획해서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마친 소회가 어떠세요?
"뉴스타파에서 최초로 정영학 녹취록 사본을 모두 공개했죠. 분량이 1400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일단 녹취록을 기반으로 초반 50억 클럽에서 유일하게 재판이 진행됐던 곽상도 전 의원과 관련해 취재했는데 무죄 판결이 난 후로 사실 <PD수첩>의 보도도 있었고, 방송일정상 시의성이 떨어져 기획 초반과 취재방향이 많이 바뀌었어요.
게다가 녹취록과 보도된 자료만 가지고 취재하는 건 굉장히 한계가 있더라고요. <뉴스타파>에서 확보한 검찰 수사자료는 녹취록을 검찰이 디테일하게 수사한 버전이에요. 무려 4만 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죠. 저희가 모든 자료를 다 보는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 뉴스타파와 자료협조와 협업을 하게됐고, 기획의도가 일치해 지난 3월 말부터 공동 제작으로 진행어요. 소스를 받은 후에 취재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죠. 기획이 좁혀진 후에 한 3주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50억 클럽 중 그나마 최근 수사가 진전이 되고있는 박영수 전 특검과 관련해서 저희가 어떤 부분들이 검찰수사상 문제가 있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어줄 수 있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김만배 씨와 박영수 특검 문제는 어떻게 취재하게 되었어요?
"구정 때 팀장이 녹취록이 공개됐으니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떤 내용이 있나 궁금하기도 해서 차근차근 읽다 보니까 연휴동안 꼬박 1400장짜리 녹취록을 전부 읽게 된 거예요. 한번 읽고 나니 오기가 생겨 이게 그냥 놓을 수가 없잖아요. 읽은 시간과 공이 아깝기도 하고 해서 뭐라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호기심에 시작했어요.
사실 녹취록이라는 게 저를 포함해 처음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동안 보도됐던 다른 기사와 같이 연관해서 이해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개연성을 맞추는 과정이 초반에 오래 걸렸던 것 같고요. 그렇게 한번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또 곽상도 전 의원 무죄 판결과 연관돼 시작하게 됐습니다."
- 대장동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관련해서 얘기가 많이 되잖아요. 하지만 이 대표 관련해서 방송엔 내용이 없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녹취록이라는 걸 방송에서 전부 다룰 수는 없고 가장 문제가 됐던 사건과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초점 맞췄어요. 팩트에 저희가 기반을 둔 건데 아직 이재명 대표 관련된 건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고 상황들이 계속 바뀌고 있어서 어떤 게 더 팩트인지를 체크하는 게 아직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프롤로그에서 김만배 씨가 17억 시주 했다는 절과 박영수 특검이 자주 갔던 유흥 업소를 보여줬잖아요. 왜 이렇게 시작하셨어요?
"방송특성상 이슈 메이킹이 필요했어요. 녹취록과 제보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을 프롤로그로 만들었고, 만들면서 보니 단순한 흥미 차원이 아니라 이번 두 인물에 대한 상징적인 공간과 인터뷰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사찰 같은 경우에는 녹취록에 총 세 번 언급이 되는데 김만배가 스님과 나눈 대화를 정영학에게 얘기하는 장면이에요. 김만배씨의 표현으로 유추했을때 사찰 스님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거기에 또 돈이 들어갔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김만배가 마지막에 '천하가 다 내 건데'라고 나오는 육성이 김만배의 욕심을 잘 보여주는 포인트라 생각했습니다.
술집 같은 경우 탐문 취재를 했지만, 여 사장님이 굉장히 박영수 전 특검을 잘 기억했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저희가 크로스체크를 통해 인물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만배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김만배는 다양한 면모가 있었는데요. 일단 인적 네트워크를 굉장히 잘 만드는 친밀도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가까운 사람 중 김만배에 대해서 험담 한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고요. 방송에 안 나갔지만 기자 후배들에게 물어보면 굉장히 밥 잘 사고 돈 잘 쓰고 기사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는 좋은 선배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고 또 주변에서 친한 검찰 관계자든지 너무 잘했다는 거죠.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형님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잘 활용해서 이 대장동이라는 개발 사업에 어쨌든 그런 인맥 관리 활용할 면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 김만배 씨는 인맥 관리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지요?
"인맥 관리에 아주 관심이 많았죠. 검찰 고위 관계자분이라는 두 분이 얘기했던 게 끈만 있으면 어쨌든 다 자기편으로 끌어내는 이런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김만배 고향이 수원이니까 수원 출신 인사라든지 성균관대학교 출신 인사라든지 그리고 법조 기자를 하면서 취재원이었던 검·판사들 인맥이라든지 이런 걸 사실 총체적으로 관리해서 그 사람들이 화천대유 고문과 자문 자리에 있었고 50억 클럽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인맥 관리가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지 않았나라고 생각해요."
- 김만배 씨 취재원들이 화천대유 고문을 맡은 거잖아요. 고문 맡았다는 거 자체가 문제일까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고문하면서 어떤 일을 했냐가 문제죠. 사실 어떤 직장이든 월급 받은 만큼 일 하는 건데 고문료를 그렇게 받으면 고문료 받은 만큼 대가를 줘야 되는 게 정상 아닐까요. 그게 단지 이름만 그런 유명 인사라고 해서 이름만 올려놓고 고문료를 받았다? 저는 이건 좀 아니라고 봐요. 당연히 그거에 따른 어떤 청탁이나 로비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이 가장 크게 드는 거죠."
- 박영수 특검은 국정농단 수사 이전에도 알려진 인물이었나요?
"이전에도 유명했죠. 어쨌든 대검 중수부장 자리를 했고 서울지검 강력부장 자리를 했고 서울고검장까지 했으니까, 그쪽에서 계통에서는 거의 승승장구하던 케이스지 않았나 해요. 그러다가 나와서 변호사 사무실 열었죠."
- 박영수 특검과 김만배 씨 관계가 왜 중요한가요?
"대표적으로 기자와 검사 간에 있어서는 안 될 그런 청탁이 있었으니까요. 일단 50억 클럽 외 6명 중의 5명이 법조인이었고 그중에 박영수 변호사는 대표적으로 국정농단 특검까지 했던 인물인데 어떻게 이런 화천대유 일을 하게 됐냐는 거죠. 그리고 김만배는 박영수 변호사를 이용해서 어떤 청탁 했을까가 가장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보는데요.
최근 검찰에서 어쨌든 압수 수색을 하는 내용이 그런 거잖아요. '컨소시엄 처음에 사업 공모할 때 우리은행을 넣었다. 부국 증권을 빼라고 했다'라는 디테일한 금융권 개입까지 다뤘을 정도로 사업의 이권에 공모했다면 저는 이 사업의 가장 핵심 인물이라고 보고 있고, 그게 어떻게 그냥 일개 변호사가 알 수 있을까요. 이건 다 박영수 변호사가 우리은행 이사회 일 했더라고요. 그런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 사업에 밀접하게 관여 해서 이 사업 진전시키는데 장애물을 해소하지 않았나라고 저는 생각해서 그 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 부산 저축은행 문제가 나오잖아요. 야당은 대장동 문제에서 부산 저축은행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취재해 보니 어때요?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대장동 사업의 시작이자 해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가장 중요한 포인트죠. 왜냐하면 대장동 초기 사업 자금을 저축은행 돈으로 끌어와 시작했어요. 이른바 종잣돈이죠. 종잣돈 끌어와서 이만한 사업 수익을 거뒀으면 저축은행 자금은 당연히 회수돼야 하지 않을까요. 저축은행 사건이 터진 후에도 대장동 사업은 사업주만 바뀌면서 이어져왔어요.
초기 저축은행 돈을 빌렸을 때 연대 보증인은 사업주인 이강길 씨였고 부산저축은행이 파산된 후 예금보험공사가 파산 관재인으로서 들어가면서 대장동 토지에 대한 근저당권을 포함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어요. 성남시에서 강제로 토지를 매입하기 전에 충분히 토지에 대한 이익환수를 할 수 있었는데 안 한건 예보의 직무유기 소지가 있는거죠. 또한 초기 브로커인 조우형과 사업주인 남욱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에 실제 대장동의 천문학적인 수익이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갔음에도 환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방송에 나온 2011년 대검 중수부의 브로커 조우형 수사와 2013년 서울중앙지검의 조우형과 남욱에 대한 풍동사건 수사였어요."
- 풍동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풍동은 일산의 개발구역인데 대장동 축소판이라 볼 정도로 유사한 개발사업이었고, 대장동 주역인 남욱과 조우형이 깊이 개입된 사업이었죠. 부산저축은행 자금을 끌어온 것도 같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수사들이 무혐의로 나오거나 또 관련자 무죄 판결이 나요. 이걸 왜 이렇게 놔뒀을까 드는 궁금증인 거죠. 예금보험공사는 수사 의뢰는 할 수 있지만 막상 수사는 검찰이 하는거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해서 기소를 안 하면 결국 이 돈들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거죠. 저는 그게 포인트라 보는겁니다. 만약 당시에 회수가 됐더라면 충분히 예보에서는 저축은행 돈을 회수해서 피해자들에게 얼마라도 보상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이렇게 사업이 성공했으면 일정 부분 수익에 대한 보상금을 환수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법조 기자단 문제도 짚었던데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일단 기자 출입처가 문제라는 게 굉장히 폐쇄적이잖아요. 법조뿐만 아니라 어떤 곳이든 출입기자단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정보를 오픈하고 공유한다는 게 사실상 공정하지는 않다고 봐요. 검찰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데 이걸 덮어주거나 아니면 검찰에 말하는 대로 받아 쓰거나 하잖아요. 지금 많은 문제가 그렇게 나는 거잖아요.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써서 여론을 만들거나 혹은 어떤 사건이 중요한데 기사를 안 써서 그런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만들거나 하는 게 문제라고 보거든요.
이번 사건을 취재할 때 느낀 건데 판결문을 하나 받는 것도 직접 요청했을 때도 법조 기자단 통해서 받으라고 하죠. 저는 그런 게 되게 문제라고 봐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판결문도 그렇고 검찰 수사 자료도 그렇고 공익성이 있거나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다고 봤을 때 누구나 열람할 기회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기자들한테만 그런 오픈 소스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중간에 나왔지만, '기자와 검사가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한다'라는 내용도 있는데 그렇게 서로 간에 끈끈한 유대 관계를 지켰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하죠."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취재원이 있어야 되고 그림을 만들어야 되는데 찍을 수 있는 그림도 없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무작정 찾아다녔고 주소 찾아내는 것도 힘든데 막상 가면 또 없거나 아니면 쫓겨나거나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죠. 그게 가장 힘들었던 거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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